[당진시대 시론] 작년 종합검진 때 「혈변」이 체크되어 직장(直腸)내 1,5㎝ 혹을 수술로 떼어냈다.
악성이 아니어서 한시름 놓았으나 왜 이런 병이 생겼을까? 앞으로 다른 곳에서도 이런 혹덩어리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내게 친구한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앞으로가 문제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먹는 지에 따라 혹이 생길 수도 있고 안생길 수도 있다. 알아서 해라.”
나는 많이 회개하고 고쳐먹기로 했었다.
오늘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와중에서 우리까지도 테러의 공포에 떨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테러를 막을 수 있을까? 극악무도한 빈라덴만 죽으면,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정권만 무너지면 세계는 테러없는 세상이 될까?
마음을 바꿔먹고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떼낸 혹말고 또 다른 혹이 생길 수도 있듯이 ‘테러와의 전쟁’만으로는 정녕 테러없는 세상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어떤 종류의 테러리즘에도 반대하나 테러 응징의 대상은 명확해야 하며 더구나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은 없어야 하며 더이상 확전은 용납할 수 없다. 가능한 빨리 평화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천명한 중국의 입장에 동의한다. 물론 군대의 파병이나 물자의 지원도 유보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위대한 미국식의 교만은 얼마 오래 못간다. 옛 독일이 망했고 구 소련이 해체되었다. 작금 위대한 나라의 슬픈 종말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제 우리는 자중해야 한다. 누구의 편을 들어서는 안된다.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테러와의 전쟁 이면에 테러가 성숙한 불행한 토양이 있었음을 생각하고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보복 전쟁을 거부해야 한다.
전쟁은 전쟁을 불러온다. 피는 피를 보고 더 많은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보복의 악순환만 계속될 뿐이다. 우리는 이쯤에서 왜 테러가 일어나고 있나? 무슨 원한이 있길래 죽음을 무릅쓰고 테러하고 반미구호를 외치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파병이나 그 어떤 수준의 아프칸 전쟁지원을 반대하며 정부는 자중해 줄 것을 간곡히 권고하는 바이다.
테러를 배양한 토양은 무엇인가? 토양연구가 더욱 중요하고 급선무가 아닐까? 적국의 난민들에게 구호품을 보내는 이상한 전쟁에서 이 구호품을 전쟁이 일어나기 전, 테러가 있기 전에 가난한 나라와 나누고 서로 인정하고 존경했다면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미국의 패권주의는 세계의 경찰국가임을 자부하는 미국의 두 얼굴이다. 미국식으로 생각하고 미국이 원하는대로 세계 질서가 짜지는 소위 ‘세계화’는 작은 나라들, 경제적으로 빈곤하나 자기 방식대로 살아온, 오랜 전통을 가진 나라들에게는 강요해선 안될 이념과 질서인 것이다. 모두가 미국과 같을 수는 없다.
같아질 수도 없고 같아어도 안된다. 다양한 인종, 문화, 역사를 그대로 존중하고 상호협력해 함께 더불어 살아갈 생각이 있었고 행동으로 실천했었더라면 오늘날 인류의 삼분의 일이 반미구호를 외치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어쩌다가 우리나라도 테러 위험국의 대열에 들었는가?
이로인해 경제는 더 얼어붙고 우리나라를 찾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뚝 끊어졌다니 맹방 한번 잘 두어서 함께 몸살을 앓고 있는 꼴이 아닌가? 우리에게는 이스라엘이나 아랍은 공(共)히 동일하다. 모두 지구촌의 이웃이요, 그들에게도 역사와 전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