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진시가 지난 2023년 국비 등 총 70억 원 규모로 추진하다 실패한 장고항 수산물 청정위판장 사업을 이번에는 시비 15억 원을 투입해 재추진하면서 의회와 수산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거 사업 실패의 핵심 원인이었던 수심 문제, 위판물량 확보 문제, 적자 운영 우려 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 규모만 축소해 재추진하는 것에 대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해당 시설의 운영주체가 어촌계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기업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지속적인 시비투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비 70억, 끝내 반납
당진시는 2022년 해양수산부 공모사업인 ‘청정위판장 및 수산물 처리저장시설 구축 사업’에 선정되며 장고항 국가어항 활성화에 나섰다.
총 사업비 69억5000만 원(국비 14억2500만 원, 도비 15억9000만 원, 시비 13억4000만 원, 당진수협 자부담 25억9500만 원)을 투입해 2023년까지 연면적 860㎡ 규모의 수산 물 위판시설과 670㎡ 규모의 처리저장시설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시설은 저온경매장, 선별장, 포장실, 출하장 등을 갖춘 폐쇄형으로 상시 5℃ 이하의 저온을 유지해 위생·품질관리에 최적화된 청정위판장으로 설계됐다. 당진시는 신선한 수산물 공급, 어업인 소득 증대, 관광객 유입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했다.
하지만 사업자로 지정된 당진수협은 장고항의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장고항 수심이 2m에 불과해 오징어를 실은 대형선박접안이 어렵고, 준설을 통해 수심을 3m까지 확보해도 조수간만의 차가 클경우 근해어선 및 어획물 운반선 접안과 작업 여건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당진수협은 위판 물량도 불안정해 수익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당진수협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경인·충청·전북권역 수협 중 2개를 제외한 10개 수협이 위판장 사업을 포함한 경제사업 부문에서 만성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진수협 자부담 25억9500만 원을 포함해 막대한 운영비와 인건비가 소요되는 상황에서 적자는 불가피하다는 판단이었다.
당진시는 수협을 설득에 나섰지만 결국 핵심 문제인 수심 확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당진수협은 2023년 7월 대의원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사업 추진이 어렵다는 의견을 모았고, 같은 해 8월 4일 대산지방해양수산청은 당진시와 당진수협에 사업시행 허가 취소를 통보했다.
2년 만에 시비로 재추진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당진시는 다시 장고항 위판장 사업을 꺼내 들었다. 지난 15일 당진시는 당진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 예산 예비심사에서 장고항 선어위판장 조성사업 추진계획을 보고한 것이다.
이번 계획에 따르면 2026년 1월부터 12월까지 시비 100% 15억 원을 투입해 연면적 약 990㎡ 규모의 선어위판장 1식을 조성한다. 냉동·냉장설비, 해수유입 및 여과설비, 제빙설비, 가공설비 등을 갖출 예정이다.
가장 큰 변화는 운영 주체다. 과거 당진수협 대신 이번에는 장고항어촌계가 마을법인(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위판장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당진시 항만수산과 수산팀장은 “태안·보령 등 인근 위판장에서 수산물을 확보해 장고항에서 유통·판매하는 ‘임시 수산물 시장’ 형태로 운영하겠다”라며 “안흥항 위판장을 모델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비 70억은 반납하고”
당진시의회 윤명수 산업건설위원장은 2026년 예산 예비심사에서 과거 위판장 건립이 무산된 경위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윤 위원장은 “가장 큰 문제가 위탁 운영이었다”며 “수협이 구조적으로 적자가 예상돼 생존 위기까지 언급하며 포기했는데, 이번에는 누가 운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당진시는 어촌계가 법인을 설립해 운영하겠다고 답했다.
윤 위원장은 “사회적 기업 형태라고 하는데 이 부분이 공론화됐느냐”며 “수협이나 어촌계, 시가 긴밀하게 협의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협도 사전에 몰랐고, 장고항 어촌계도 현재 위판장을 운영할 여건이 안 돼 우려가 크다”며 “수협마저 생존 위기를 들며 포기한 사업을 과연 어촌계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윤 위원장은 “적자가 발생하면 결국 당진시가 책임져야 한다”며 “70억 원 규모 사업을 반납하고 시비 100%로 15억 원을 투입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2024년 1월 제107회 임시회에서 조상연 의원도 “청정위판장 사업은 어획량과 위판량 등 사업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하는데 용역마다 결과가 달라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공모사업 추진 전 사업성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 바있다.
추가 예산 투입 불가피
당진시 항만수산과는 중장기 계획으로 △수산식품 클러스터 연계 얼음 공급체계 확충 △어촌신활력사업 연계 관광레저 기능 활성화△선어위판장 확장 및 활어위판장 추가 조성 등을 제시했다.
당진시 자료에 따르면 전국 폐쇄형 위생위판장은 19개소다. △수산물산지거점유통센터(100억 원) 8개소 △대형 청정위판장(60억 원) 6개소 △소형 청정위판장(30억 원) 5개소로 구성됐다.
하지만 15억 원으로 조성한 시설을 향후 확장하고 활어위판장까지 추가하려면 상당한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 시비 100%로 사업을 추진하는 만큼 증축과 확장 재원도 모두 시비로 부담해야 한다.
전국 214개 위판장 중 상당수가 적자 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과거 당진수협이 제시한 자료에서도 경인·충청·전북권역 12개 수협 중 10개 수협이 위판장 사업을 포함한 경제사업 부문에서 만성 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70억 원 규모 사업을 포기한 지 2년 만에 15억 원으로 축소해 재추진하면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과거 실패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심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위판 물량 확보 방안도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운영 주체만 당진수협에서 어촌계 마을법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