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 “세상도 어수선하고 경제도 엉망인 때에 정말 이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죽하면 살림하는 주부들이 차를 막겠다고 나서겠습니니까? 이 집 한채 사느라 평생 모은 돈 다 쏟아 부었는데...”

송악면 기지시리, 삼화빌라라는 조그만 연립주택에 사는 한영자씨에게 올 한해는 정말 지옥과 같았다. 조금만 이상한 소리가 나도 집이 무너지는 징조같아 밤잠을 설쳐야 했고 비라도 내리는 날엔 벽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을 막기 위해 곤욕을 치러야 했다. 벽면 구석구석 금이 간 베란다와 안방에선 찬바람이 새어 들어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비단 한영자씨만이 그런 고통에 시달리는 건 아니었다. 5년전에 지어진 이 주택에 입주한 16세대의 전 주민이 그러했다.

주택이 애초부터 부실하게 지어져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입주하고 2~3년은 벽지 들뜸현상이나 습기가 차는 등의 흔한 하자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괜찮게’ 지어진 집이었다고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주범은 다름아닌 한보로 들어가는 대형화물차들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삼화빌라는 대형차가 다니는 도로와 불과 2m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한보로 고철을 싣고 들어가고 철근을 싣고 나오는 차량들은 하나같이 이 도로를 통과하고 있었다.

게다가 당초 소방도로였던 이곳 도로(현재 군도 5호)는 언덕배기에 위치한 삼화빌라를 중심으로 오르막과 내리막 길로 이어져 무거운 철근과 고철을 실은 화물차들이 주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2~3년전 한보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이후 소음과 시커먼 배기가스로 인한 피해는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하겠다고 마음 먹은 터였다.

그러나 평생 일해서 모은 돈으로도 부족해 융자까지 얻어 마련한 주택이 균열이 가고 창틀이 어긋나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고 난데없이 누수현상이 발생하는 사태에 대해서는 묵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부분 맞벌이로 어렵게 살림을 꾸려가는 처지여서 아직까지 이자를 치르고 있는 집도 있다.

참다 못한 주민들은 지난해 각계에 진정서를 내었고 당진군에서도 현장조사를 나와 주택에 균열이 생긴 것을 확인하고 원인이 한보의 대형차량으로 인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보에서는 비용을 반반씩 부담해 안전진단을 받자고 했고 주택보수비용으로 2천만원을 내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원인제공자가 명확한데 왜 자신들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 안전진단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러는동안 한보는 부도를 맞았다. 그리고 주민들의 요구는 하루 아침에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의 회생을 막는 집단이기주의쯤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지난달 다시한번 진정서를 낸 주민들 앞으로 한보는 지난 1일 “반드시 우리회사 차량으로 발생된 피해라 볼 수 없으며 회사의 갱생에 어려움을 주는 민원은 자제해달라”는 얼음장 같이 차가운 답변을 보내왔다.

당진군에서는 대형차량의 과적단속을 철저히 해 피해를 최소화 시키도록 하겠다는 지극히 ‘당연한 일’을 답변으로 보내왔다.

“도대체 주민들은 누구에게 호소해야 합니까? 우리들은 당장 집이 무너져 내리는 악몽에 매일같이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급한 일이 무엇입니까. 시원스럽고 믿을만한 답변이라도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도로를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종일 오가는 대형차량들을 내다보는 삼화빌라 주민들의 가슴엔 부도덕했던 대기업의 몰락이 부메랑이 되어 엉뚱하게 자신들에게 꽂히는 고통을 맛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