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란 심슨 씨(37)는 어린시절 온라인을 통해 한국을 처음 접한 이후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왔다. 유학 생활을 거쳐 현재는 당진에서 초등학교 영어 전담 교사로 근무하며 교육자로 자리 잡은 그는 한국을 ‘두 번째 집’이라고 표현하며 정착을 희망하고 있다.

한국을 좋아한 스코틀랜드 소년
알란 심슨 씨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작은 섬마을 스카이섬에서 나고 자랐다. 그가 한국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3살 무렵 온라인을 통해 한국인 친구를 사귀면서다. 그는 “당시 스카이프 메신저와 펜팔, 메이플스토리 게임을 통해 한국인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며 “영상통화를 하거나 한글 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한국을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만난 친구 중 한 명과는 지금까지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고, 영국에 방문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한국에 대한 관심은 점차 깊어졌다. 그는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과 예능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 등 한국 콘텐츠를 즐겨보며 한국 문화를 접했고 특히 한국문학에 큰 흥미를 느꼈다. 학부 시절에는 기형도의 시집을 주제로 논문을 작성했으며, 박사 과정에서는 김혜나 소설가를 연구 주제로 삼기도 했다.

교환학생으로 시작한 첫 한국 생활
대학 진학을 앞둔 그는 한국어 전공을 희망했지만 당시 영국에서 한국어를 전공할 수 있는 대학은 두 곳에 불과했다. 그는 그중 ʻSOAS 런던대학교 한국어학과ʼ에 진학했고 교환학생으로 고려대학교에 다녔다.
알란 씨는 “영국에서는 외국어 전공자의 경우 일정 기간 해당 국가에 교환학생을 다녀오는 것이 필수였다”며 “2010년에 고려대학교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지냈다”고 설명했다.
교환학생 시절은 그의 한국 경험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당시 중앙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한국인 학생과 서울시 흑석동에서 함께 생활하며 다양한 한국인 친구들을 만났다. “사실 공부보다 노는 게 더 재미있었다”며 “같이 살던 형을 통해 많은 친구들을 소개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부터 한국인 친구들과 교류하며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던 터라 생활에 큰 어려움이나 문화적 충격은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예상과 정반대의 교직생활
현재 알란 씨는 송산초와 송악초를 오가며 영어 전담 원어민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에 오기 전 영국에서는 성인을 대상으로 초급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었기에 고등학생을 지도하길 희망했다. 그러나 바람과는 다르게 초등학교에 발령 받았다. 잘 가르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달리, 현장에서 마주한 아이들은 그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그는 “아이들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특히 3~4학년 시기에 아이들이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보여주는 열정적인 눈빛이 가장 예쁘다”고 말했다. 이달로 교직 생활 3년 차를 맞은 그는 “처음 가르쳤던 학생들이 이제 6학년이 돼 졸업을 앞두고 있어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전했다.

게임과 함께하는 영어 시간
그의 수업은 놀이와 참여 중심으 로 운영된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해 수강하는 성인반 수업과 달리, 학교 수업은 흥미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교과서 활용을 최소화하고 대부분의 수업자료를 직접 제작한다. 처음에는 학년별, 주차별 자료를 모두 만들어야 해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때 만든 자료를 수정하며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로 게임과 노래를 활용한 활동 수업을 진행하며 수업 참여도나 숙제, 단어시험 성적 등에 따라 보상 스티커를 제공한다. 5개의 스티커를 모은 학생은 게임 선택권이나 포켓몬 카드로 교환할 수 있다. 알란 씨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게임을 고르기 위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스티커를 모은다”고 전했다.
알란 씨의 제자였던 이주원(송악중2) 학생은 “중학교 영어 수업은 대부분 강의만 하는데, 알란 선생님께 배울 때는 활동 수업이 많아 재밌었다”며 “영어 시험이 끝난 뒤 선생님에게 시험 성적을 자랑하기 위해 찾아뵙기도 한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만난 은인
과거부터 한국인 친구를 사귀며 비교적 무리 없이 한국 생활을 이어 온 알란 심슨 씨에게도 정착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은인이 있다. 그는 “당시 송악초등학교 추성훈 영어 전담 교사와 사이가 좋았다”며 “휴대폰 개통부터 집 가구 마련, 외국인 신분증 발급 전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후 추 교사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때 집들이를 가고 결혼식에도 참석하는 등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한국 시민으로 정착 예정”
그는 “교환학생 당시 서울에서 생활할 때는 빽빽한 도시 경관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며 “반면 당진은 초록빛 자연이 펼쳐져 있어 고향처럼 편안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당진으로 간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한국인 친구들은 ‘왜 하필 당진 시골로 가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고향인 스카이섬과 비교하면 당진은 도시”라며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읍내동에 거주하면서 송악읍과 송산면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타 지역으로 이주를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면서 자차로 출퇴근이 가능해졌고, 이를 계기로 계속 당진에서 지내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한국은 저와 잘 맞는 나라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제게 두 번째 집 같은 곳이 됐어요. 기회가 된다면 한국 시민권을 취득해 이곳에서 쭉 살아가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