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회사 동료인 차장님과 식사를 하다 고민을 하나 들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 딸이 반항이 심해 한동안 통제를 하지 않았더니, 몇 달째 밤새 휴대폰 게임에만 매달린다는 것이었다. 학교도 자주 결석하는데, 더 심각한 건 게임 채팅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돈까지 보내고 부모 말도 듣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외에 별다른 해결책을 드리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다.
이후 관련 자료를 찾아보다가, 이것이 한 가정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사 자료를 살펴보니, 게임을 통해 청소년에게 접근한 불특정 인물이 채팅으로 신뢰를 쌓은 뒤 부모의 카드와 돈에 손을 대도록 유도하는 수법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해야 한다”는 식의 정신적 지배로 부모와의 갈등을 부추기며, 결국 가정을 파괴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만든다.
뒤로멈춤앞으로
이렇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청소년들은 범죄에 연루되거나 인신매매에 노출되는 등 끔찍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문제는 이 단계에 이르면 본인이 뒤늦게 후회해도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이 벌어져 있다는 점이다.
최근 방영된 시리즈 드라마 ‘참교육’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이 모바일 도박을 통해 불법 사채에 빠져 학생과 부모 모두 위험에 처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드라마 방영 이후 경찰 당국이 심각성을 인지하고 전국적으로 자진신고 기간을 운영했는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강원도의 한 고등학교에서만 48명의 학생이 스스로 도박 사실을 털어놓았고, 이들의 평균 도박 기간은 1년, 게임에 입금한 금액은 최소 300만원에서 최대 6000만원에 달했다. 성인도 감당하기 힘든 액수가 미성년자들 사이에서 오간 것이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학생들이 이런 거액을 어떻게 마련했을까. 조사해 보니 부모의 계좌와 카드, 친구 돈, 용돈은 물론 불법 대출, 심지어 범죄를 통해 마련한 돈까지 포함돼 있었다.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를 폭행하거나 차량을 절도하고, 또래·어린 학생들을 위협해 갈취하는 경우도 있었다. 도박이 또 다른 범죄를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더 나아가 불법 사금융을 이용한 청소년이 돈을 갚지 못하면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불법 대부업 관계자가 직접 부모를 찾아가 협박하고 폭행하는 사건까지 벌어지고 있어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부모들이 이런 위험을 알면서도 예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간단하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심지어 부모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든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도박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겉으로는 친구와 채팅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부모가 이상 징후를 알아차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대부분의 경우 불법 대부업체의 협박을 받거나, 자녀가 불법적인 돈을 마련한 사실이 수사기관을 통해 드러나고 나서야 뒤늦게 알게 된다.
만약 자녀가 도박에 빠진 사실을 알게 됐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명심할 것은, 충격과 분노에 휩쓸려 자녀의 휴대폰을 빼앗거나 무작정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몰아붙일수록 자녀는 거짓말을 하거나 증거를 숨기려 할 가능성이 커진다.
대신 도박 기간, 불법 금융 이용 금액과 기간 등을 차분히 확인하며 자녀가 안정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런 다음 학교전담경찰관(SPO),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등 전문기관에 즉시 상담을 연계해 자문을 구하고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기 자녀가 예민하게 반응하고 화를 많이 내더라도, 부모의 적절한 통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갈등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자유와 방임을 택한 대가는, 한 가정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심각한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