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진을 중심으로 한 내포 지역에는 다른 지역에서 들어보지 못한 독특한 사투리들이 전해진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필자가 인상 깊었던 말은 바로 ‘시절’이다. 시절(時節)은 한자어 그대로 때나 절기를 뜻하는 말이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저 사람 시절이여.’ ‘시절마냥 왜 저려는 겨’ 같은 식으로 사용하곤 한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곧 뉘앙스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시절’은 농사가 중요한 시기에 파종 시기를 비롯해 적절한 때를 못 맞추는, 중요한 계기나 고비에 미숙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바보, 좀 모자란 사람을 표현하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정확한 시각과 일정한 궤도의 준수를 절대 표준으로 삼는다. 정해진 연령대에 맞춰 과업을 ‘초과’ 달성해야 하고, 남들과 동일한 속도로, 혹은 조금 빨리 트랙을 완주해야 비로소 정상적이고, 성공적인 삶이라 평가받는다. 조금이라도 박자가 어긋나거나 제때를 비껴가면 곧장 '실패'라는 비난이 돌아오고, 제 궤도를 놓친 이들은 깊은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속도전의 사회에서 때를 맞추지 못한다는 것은 곧 도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진에서는 이런 상황일 때 “에이, 시절 같으니”라며 허허 웃어넘긴다. 그 속에는 날 선 비난이나 매서운 핀잔이 아닌 넉넉한 품과 여유, 인정이 들어 있다. 때를 맞추지 못해 어수룩해 보이는 사람이나 그러한 상황일지라도, 그 어긋남 자체를 인정하고 품어주는 내포 문화 특유의 여유와 해학이 녹아 있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표를 조금 비껴갔다고 해서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며, 박자가 조금 틀어졌다고 해서 삶의 노래가 끝나지 않는다는 여유와 지혜가 그 한마디에 깃들어 있다.
농작물이 제철에 딱 맞춰 열매를 맺지 못했더라도 햇살과 바람을 품는 일마저 멈춘 것은 아니다. 약간 비껴난 시각에 피어나는 꽃은 남들보다 늦은 만큼 자신만의 속도로 단단해질 수 있다. 정해진 박자에만 맞춰 질주하는 삶에는 예상치 못한 지연이나 장애를 만났을 때 견뎌낼 여백이 부족하지만, 스스로 '시절'이 되어본 이는 갑자기 찾아온 삶의 오차 앞에서도 쉽게 허둥대지 않는다. 남들의 시계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호흡을 다듬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시절이 좋다. 내포 지역 특유의 느슨한 말의 바이브도 좋고, 직접 쏘아붙이지 않고 돌려 말하는 언중유골의 위트와 재치, 여유도 좋다. 이 지역에서 태어나서 자라지 않았지만, 당진 지역 말투와 어법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혹시나 나중에 퇴직하고 카페를 차린다면 붙일 이름도 생각해 두었다. “좋은 시절”, 영어로는 “good season”이다. 가게 안에는 이런 문구도 붙일 거다. “놀고 먹기 좋은 시절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적절한 시기를 놓쳐 '시절'처럼 보일 때가 있다. 적절한 시기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지 못했을 때,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고 뒤늦게 알아차려 수습할 일이 커질 때, 때를 놓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할 때, 남들보다 한발 늦어진 것 같아 조바심이 피어오를 때, 우리 동네의 사투리 ‘시절’을 곱씹어보는 것은 어떨까. 제때를 맞추지 못했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 남들의 박자에서 살짝 비껴난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잠시 숨을 고르며 자신만의 온전한 때를 찾아가는 뜻밖의 여유와 기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