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새벽잠을 설친 채 부랴부랴 병원에 다다른 저와 아내에게 영롱한 낯으로 인사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수술실에 들어선 ‘왕덩치’ 우집사님이 건넨 인사였습니다. 수술실 입구에서 만난 부인 권사님의 설명이 ‘심장 주변의 혈관을 확장하는 한시간 정도 소요되는 간단한 시술이니, 아까운 시간 허비하지 말고 교회로 돌아가시라’ 더군요.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품고 교회로 돌아와서 전화로 시술경과를 묻기를 한 번, 두 번, 여섯 번, 일곱 번….

이른 아침에 시작된 시술은 수술이 되고, 간단한 시술은 위급한 상황으로 돌변하여 결국엔 중증중환자실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해가 서산으로 뉘엿할 무렵이었습니다.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 채 기도를 요청하는 부인 권사님의 목소리는 사십대 중년 여인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즉각 전교우들에게 우집사님의 상황소식을 알리며 긴급기도를 당부하였고, 교회의 중보기도대원들은 물론 어린아이들까지 집사님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를 수십여 일이 지나도 우집사님의 회생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한참 후 간신히 중환자실에 계신 집사님을 면회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집사님은 전혀 의식이 없이 시체처럼 누워 있었고, 그의 몸덩이에는 얼마나 많은 의료장치들이 복잡하게 설치되어 있는지 마치 몸의 내장과 혈관들을 모두 꺼내놓은 듯 보였습니다. 게다가 의료진들은 가족들에게 장례 준비를 종용한 상태였습니다.

그날 밤이 깊어지기 전에 얇은 홑이불을 끌어안은 채 부랴부랴 다다른 곳은 예배당 전면에 달려 있는 십자가 바로 밑이였습니다. 거기야말로 제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시내산의 모세처럼 앉은 채로 펄쩍펄쩍 뛰면서, 갈멜산의 엘리야처럼 허리를 꺾어가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그저 “주님!”을 연거푸 불렀습니다. 그리고 띄엄띄엄 제 입에서 쏟아진 말은 “제발!”이었습니다. 어느새 몸은 불덩이, 옷은 땀범벅, 낯은 눈물로….

아마도 그 즈음일 겁니다. ‘하나님, 저의 심장이든, 전의 간이든, 저의 콩팥이든 얼마든지 드릴 테니, 우집사님을 제발 살려주십시오!’라며 간절(懇 切)하게 애태운 때가.

이윽고 집사님의 의식이 돌아왔고, 몸상태가 점차로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마침내 우집사님은 가녀린 몸이지만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과 약속한대로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와 연결되어 신장을 기증하기로 하고 절차들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집사님은 상태가 악화되어 서울 삼성병원에 급히 입원한 채, 심장기증자를 애타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서너차례 병원들을 다니면서 신장상태 등을 점검하는 검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150여 일 되던 어느 날 아내 가 “목사님, 목사님 신장기증이 결정되어야 우집사님도 심장기증을 받게 될 거 같아요!”라고 하더군요. 거짓말처럼 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저의 신장을 이식받을 환우분이 결정되었다는 전화가 오고 채 열두 시간이 지나지 않은 다음 날 아침, 우집사님에게서 ‘목사님, 기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심장기증자가 나타나서 오늘 제가 이식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순간 저희 부부는 하나님 앞에서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우집사님은 심장이식수술을 받았고, 저도 하나님과의 약속대로 2016년 5월9일에 生面不知 청년에게 우측신장을 기증하였습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우집사님은 건강한 몸으로 직장생활을 활발하게 하고 있고, 저 또한 매우 건강하게 목회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이미 많이 희미해진 복부에 있는 네 개의 흉터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전율하곤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뭉클한 가슴을 제어하기 힘들 만큼 하나님께 감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나이 쉰 한 살이 되어서야 겨우 ‘간절함(懇切喊)’을 겪은 제가 이제는 ‘간절함(懇切函)’이 되기를!

✽ 喊(소리지를 함), 函(상자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