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울하게 죽은 처와 딸위해 무엇이든 하겠다"

교통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은 한 주민이 가해자 누명을 벗기위해 3년간 ‘고투’를 벌였으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에 방영됐음에도 불구, 끝내 실패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송산면 상거리에 거주하는 김경동(36세)씨가 그 장본인.

김씨는 대천 청라우체국에 근무하던 1992년 10월 4일 오후 4시반경, 휴일을 처가인 서산에서 보내고 근무를 위해 대천으로 가던중 홍성군 구함 공리정류소 앞길에서 큰사고를 당했다. 마주오던 충남교통 소속 차량과 부딪혀 그자리에서 부인 이난용(당시 27세)씨와 딸 초롱(당시 2세)이가 숨지고 아들 준희(당시 4세)와 자신은 의식불명에 빠지게 됐던 것이다.

김씨는 당시 마주오던 버스가 앞차를 추월하다 자신의 티코자가용과 부딪친 기억이 또렷하고 주장하지만 사고로 의식을 잃고 한달만에 깨어보니 자신은 이미 ‘중앙선을 침범한 가해자’로 사건이 종결되고 난 뒤였다.

남은 것은 부러진 갈비뼈와 부러진 양다리, 머리수술을 받은 아들 준희, 그리고 부인과 딸의 시신 뿐이었다. 거기에다 이러한 정상(?)을 참작해 기소유예를 내린다는 검찰의 통보였다.

그때부터 김씨는 이 억울한 누명을 벗는 길이 죽은 가족의 혼을 달래는 길이라 생각하고 힘겨운 사투에 들어갔다. 청와대, 감사원, 법원, 경찰청등 민원을 보낼 수 있는 모든 기관에 하소연했고, 그 서류가 한 박스는 족히 되었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고 1994년 11월 17일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에 ‘누명으로 잘못처리된 교통사고’로 1시간동안 전국에 방영까지 되었다. 이것으로 일단 그의 누명은 80% 벗겨졌다.

그러나 93년 4월부터 3년간 계속된 싸움은 96년 1월 26일 대법원의 기각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제 주위에서도 ‘잊고 새출발하라’는 권유가 한결같다.

“하지만 꽃다운 처와 딸을 죽게하고 제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겠습니까? 진실을 밝히기위해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우리사회의 마지막 양심과 정의를 믿는다는 김씨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어딘가에 호소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