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많은 연구와 경험을 갖고 집필
..「문화재」편을 전면 재수정해야 한다
주간 「당진시대」에 「군지 인물편 전면 수정논란」 기사에 대하여 집필 당사자로서 다음과 같이 반박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당진군지는 역사, 지리, 행정, 문화재, 문화, 교육, 성씨·인물, 지명등 12개 분야 약 1만4천매가 넘는 방대한 원고에 달하는데 그 내용을 전면 열람·검토한 결과 각 분야별로 미흡한 점을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그중에 특히 「인물편」 원고는 이런 점이 보완돼야겠다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고 공정성있는 위치에서 지적하지 않고 12개 전체 분야중에서 다른 11개 분야는 미비점이 전혀없고 오직 「인물편」만이 미비점 투성이인냥 전면 재수정해야 한다는 침소봉대적 발상에 대하여 환멸을 느낀다.
더구나 12개 분야중 「인물편」 한 분야에 대한 비판으로 신문 2면을 가득 채웠고, 그것도 무엇이 부족한지 「월요논단」(편집국장 최종길)에서 다시 똑같은 내용으로 꼬집었고, 그것도 부족했던지 「당진시대 그림판(만평)」에서도 야유를 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중대한 과오가 있었단 말인가. 비뚤어지고 편협한 어느 누구의 배후조종이나 사주가 아니고는 「당진시대」가 이렇듯 비이성적 기사와 만평을 게재할 수 없다고 본다.
필자가 집필한 것이 100%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바 아니고 그동안 그 보완을 위해 계속 노력해오고 있는 중이다.
옥에도 티가 있다는데 「당진시대」는 어떤 사소한 단점을 침소봉대식으로 과장된 보도만 하고 있으니 그저 한심스러울 뿐이다. 숲은 못보고 나무가지만 보는 미시적, 편협적, 옹색한 안목에 그저 재삼 실망할 뿐이다.
필자는 지난 1983년 발간 군지에서도 「인물편」을 집필했으며 또한 1988년 당진문화원 발행의 「당나루의 맥락」(인물편)을 저술하였고, 1994년부터 금년 1월까지 「당진뉴스」에도 「당진인물사」를 2개성상이 넘도록 1주 1~2명의 인물을 연재하였었다.
국내의 어떤 사람이 당진의 인물에 대하여 연속적으로 3회이상 수십회 더 깊은 연구를 했는지는 모르나 본인 나름대로는 많은 연구와 경험을 가지고 집필하였다고 자부하고 싶은데 군지 12개 전체분야중 오직 인물편만이 결함투성이인냥 과장 또는 허위보도에 대하여 또 한번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다른 11개 분야는 완벽한가. 그 중 「문화재」편만 살펴보기로 하자. 「문화재」 분야 원고속엔 「도요지」와 「야철지」는 제목조차 없고 한마디 언급도 없다. 그러나 전공학자들이 쓴 「충남지역의 문화유적」에 의하면 사기소리, 장고항리, 장정리 요지, 사관리 야철지등 요지 15개소, 야철지 2개소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인물편」에선 쪽집개처럼 결점을 수십개 적발하고 「문화재」편 원고는 이래도 100% 완벽하다고 강변할 수 있겠는가.
그뿐인가. 「고분」에 관하여도 역시 원고는 커녕 일언반구도 없으나 그 책엔 통정리, 대치리, 도곡리등에 무려 16개소나 수록돼 있다. 또한 「절터」도 11개소만 썼는데 거기엔 오사지, 남산리사지, 매곡리사지, 불영사지등 무려 45개소에 「절터」가 있는데 겨우 그 4분의 1도 안된단 말인가.
그래도 인물편만이 논란인가. 이성적 판단을 바란다. 그리고 관방유적으로 성곽이 17개밖에 없으나 그 문헌엔 원치리 토성, 창리 토성, 창택산성등 5개 성곽이 더 조사 기록돼 있다. 왜 빠졌는가.
「당진시대」에선 문화재편 집필자가 5명이나 배당되어 완벽하다고 찬양했는데 왜 이런 '엄청난 결점'이 만천하에 나타났는가. 「문화재」 분야야말로 '전면 재수정'이 불가피하지 않은가. 명확한 답변을 바란다. 그래도 할말이 또 있는가.
「당진시대」는 특정인, 특정세력의 옹호에만 힘쓰지 말고 당진군민의 공기(公器)로서 언론의 사명을 다해주기 바라며 진정한 학문적 토론문화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군민의 신문으로 거듭나기를 당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