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2일 일요일 아침, 나는 파랑치마에 노랑저고리, 언니는 다홍치마에 노랑저고리, 동생은 초록치마에 다홍저고리를 곱게 입었다.

케이크, 사과, 배, 바나나, 떡, 지짐이, 술 등을 한 상 가득 차려놓고 언니네 식구가 먼저 아버지께 절을 했다. 그 다음은 우리 네식구가 절을 하고, 막내네가 하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남동생 둘이서 절을 하고 술을 한잔씩 따라드렸다.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손주들 넷이서 축하노래를 부른 다음 촛불을 끄고, 사진 촬영을 했다. 환갑 잔치를 친구분들과 여행가시는 것으로 하시겠다고 하셔서 간소하게 생신상을 차려 드렸는데 30여년 자식들을 위하여 고생하신 수고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는 생신상이었다는 생각을 지금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큰 애가 학교를 하루 쉬게 되었는데 마침 어린이 도서연구회의 월례강좌 날자와 겹치게 되었다. 어린이도서 연구회가 대학로 안에 있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볼거리가 있을 것 같아 몇몇 엄마와 이야기를 모아 서울로 가기로 했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서울로 가는 동안에 필독서 현덕의 동화 「나비를 잡는 아버지」와 그림책 「개구쟁이 노마와 현덕 동화나라」를 읽었다.

어린이 도서 연구회에 도착하니 10시가 조금 넘어 강의 도중에 강의실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앉아서 강의를 듣는 사람과 서서 듣는 사람수가 비슷할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다. 책을 이미 읽어둔 덕분에 편안히 강의를 듣고 나서 7개조로 나누어 독후활동을 했는데, 내가 속한 조는 5조 ‘자세히 그리기’였다. 10분 정도 현덕 동화를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 주의할 점과 덧붙여 이야기하면 좋은 것들을 듣고 나서 자세히 그리기로 들어갔다. 아버지에 대한 설문지를 돌린 다음 아버지가 가장 약해 보일 때가 언제인지 돌아가면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한 사람 두 사람 이야기를 시작할 때, 작년 친정 식구들과 민속촌에 갔을 때 오른쪽 발 봉숭아 뼈가 부어 올라 걸음을 걷지 못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눈물만 하염없이 나오고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진행하시는 분이 다른 분한테 이야기를 넘기고 나서야 간신히 눈물을 수습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서 자세히 그리기를 시작했다.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무서웠던 것 같다.

내가 그린 그림 속의 아버지는 코와 귀는 나를 닮았고, 주름은 그리다가 많이 지웠고, 머리카락은 조금 없지만 무성한 것으로 그리고, 예쁜 꽃무늬 티셔츠를 입혀드렸다. 조금이라도 젊어지셔서 마음이 흐뭇했다.

아버지 건강하세요.

둘째딸 은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