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과 같은 경영마인드

그리고 끊임없는 배움

출퇴근시간을 지키는 막둥이 농사꾼

아침 여덟시, 모자를 꾹 눌러쓴 그는 농기구를 챙겨들고 논과 밭으로 출근한다. 그리고 저녁 여섯시가 되면 하루 일을 정리하고 집으로 퇴근한다.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여느 직장과 다를 것 없는 하루 여덟시간의 근무시간이다. 일손이 바쁜 농번기엔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시간외 근무를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평상시엔 나름대로 정한 근무시간과 퇴근시간을 어김없이 지킨다. 동 터 오는 새벽녘에 나갔다가 해가 지고서도 흙 묻은 발길을 쉽게 거두지 못하는 예사로운 농부들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대호지면 송전리의 정재일(만 25)씨는 청년 농사꾼이다. 아니,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확하게 말해서 전문 농업경영인이다. 거기에다가 ‘막내’라는 수식어를 하나 더 붙여야 할 것 같다. 올해 만 스물 다섯살로 20대 중반에 가까스로 접어든 그, 예상했겠지만 대호지면에서 가장 젊은 농업인이 되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나이다. 당진군 전체를 통틀어도 농업인으로 치자면 그는 맨 끝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어쩌면 당진군 전체에서도 ‘막둥이’라는 신세를 면치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꿈이 흙으로 향한 까닭

그는 정익환(부, 61)씨와 손명월(모, 63)씨 사이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흙에서 태어나 흙을 일구며 지낸 부모의 검은 손이 그의 유년시절의 지울 수 없는 기억이다. 어떤 부모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굽은 허리 펴질 날 없었던 농부로서의 지난한 삶을 보고자란 그. 그러나 그의 꿈은 반평생 부모의 삶이 사무친 흙으로 뻗어나갔다.

고등학교 시절, 동년배들의 꿈이 찬란한 도시를 향해 속살거릴 때 그의 마음은 이미 땅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농부가 되겠다는 그 앞에서 간혹 고개를 갸웃거리는 친구가 있었지만 그의 꿈은 방향선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암석처럼 단단한 상태였다.

1995년 신구대학 축산과에 입학한 그는 졸업하자마자 고향으로 돌아와 오랜 시간 삭혀두었던 꿈을 이루었다. 소위 말하는 농사꾼, 그가 말하는 전문 농업경영인이 그것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농부가 된 이유요? 물론 취직자리가 없거나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남들은 다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농업에서 비전을 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농업이라는 거, 이젠 모두들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국가의 기초산업인 농업이 끝났다는 것은 나라의 존립기반이 무너졌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선진국치고 농업이 발전하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WTO로 인한 수입개방, 좁은 국토로 인한 영세농 위주의 농업 등 우리나라의 농업이 어려운 현실에 처해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농업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죠. 비전이 없다면 찾아야죠. 그리고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21C 한국 농·축산업의 비전

1998년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해 이제 농업인으로 다섯 살에 접어든 그는 그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에 입학해 학사학위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작년에는 공주대 대학원 식물자원학과에 입학해 현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출퇴근시간을 어김없이 지키는 것도 이러한 배움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다. 배움을 통해 시야를 넓히고 그것으로 농업의 비전을 찾고자했기 때문이다.

그가 찾아낸 21세기 한국농축산업의 비전은 해외진출로 집약될 수 있다. 정부보조금을 받고 일찍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로 진출한 일본 축산인들의 성공을 그는 눈여겨보았다. 해외로 진출한 이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광활한 토지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이는 곧 농업의 규모화로 이어져 생산단가를 낮추고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더욱이 일본에 수입되는 축산물의 많은 비중을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비록 다른 나라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해외 진출 축산인들은 생산품을 자국에 수출하고 자국은 이들의 저렴하고 품질 좋은 생산품을 수입하는 상부상조의 시스템을 이룬 것이다.

“WTO의 강한 수입개방 압력을 막아내고는 있지만 좀 더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라고 왜 앉아서 당해야 합니까. 우리도 해외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중국의 광활한 벌판이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공업분야만 진출할 것이 아니라 농축산업분야도 중국을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중국어를 배우려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그의 가슴속엔 마치 오래 전 중국대륙으로 향했던 고구려의 강한 기상처럼 만주 방면의 비옥한 땅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농업인도 중소기업 경영인이 되어야 한다”

해외 진출에 앞서 갖춰야 할 것을 그는 ‘경영’이라고 말한다. 지난 1998년 고향으로 내려와 처음으로 자신의 땀이 스민 농산물을 수확한 그는 많은 것을 느꼈다. 농업인들이 오랜 시간 터득한 기술은 갖추고 있으나 경영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즉, 기술자는 있으나 경영자는 없기 때문에 농업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주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경영학을 전공하려 하는 것도 농업에 전문적인 경영을 가미하기 위해서다.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농업에 대한 재투자다. 농업에서 올린 수익이 다른 산업으로 누수되기 때문에 농촌공동화 현상이 더욱 가중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농촌을 고사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어떤 산업이라도 재투자 없이는 발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제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농업인들 스스로가 농업에 대한 재투자를 꺼려한다는 것입니다. 농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농업에서 올린 수익의 50%만 재투자해도 충분히 수익을 늘릴 수 있습니다. 농업인은 중소기업의 경영자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기업이나 그렇겠지만 경영마인드 없이는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 수 없죠.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농업경영인이라고 일컫지만 그에 걸맞은 경영을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현재 1만5천여평의 논과 3백평의 비닐하우스에서 꽈리고추와 일반 채소, 1천5백평의 밭을 경영하고 있는 그는 농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그 누구에 못지 않다. 농업은 가장 진실하고 순수한 흙에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인간의 산업, 그것이 농업이라고. 자연과 하나되어 조화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농업인이라고. 청년 전문 농업경영인으로서 농업의 비전을 찾는 그의 노력은 잠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농업은 바로 그 나라의 비전, 그 자체이기에.

이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