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네 영혼이 / 내 가슴에 와 앉는 날은 / 훌훌 옷을 벗고 / 마음껏 바보가 된다/ 한발짝 물러나 앉아서 안경도 벗어보고. / 그래, 자주자주 바보가 되고 싶다...」" 「네 영혼이 내 가슴에 와 앉는 날」 중에서 "

짙은 짝사랑의 향기

사람을 만난 후 한동안 그 사람의 향기를 되새겨보곤 한다. 때로 그 향기는 물동이에 떨어지는 빗물처럼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기도 하고 혹은, 한 여름 밤의 모기처럼 맑지 못한 내 마음의 한 곳을 책망이라도 하듯 따갑게 꼬집기도 한다.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 같은 사람도 있었고 투명한 밤 창가에 속살거리는 별빛 같은 이도 있었다.

윤성의 시인을 만났을 때, 그는 현관을 활짝 열고 거리낌없이 나를 반겨주었다. 멀쑥하게 서 있다가 그의 뒤를 따라 거실로 들어갔는데, 조그만 탁상을 가운데 두고 그와 마주하는 내내 나는 터벅터벅 거실로 들어갔던 것처럼 그의 내면의 은밀한 곳까지 이르고 싶었다. 그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그 무엇과 조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근원적인 힘에 닿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의 짙은 향기를 맡았다. 그리고, 지금 그의 향기에 기대어 조심스럽게 가늠해본다. 시에 대한 그의 짙은 짝사랑, 그 안타까움이 그에게 살아가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고.

누군들 짝사랑으로 속을 앓아봤다면 그 가슴저밈을 알 것이다. 혼자 하는 사랑이기에 서럽기 그지없다는 걸. 만날 수도, 그렇다고 고백할 수도 없으므로 가이없는 고통이란 걸. 더욱이 쉬이 꺼지거나 시들지 않으니 고목이 타듯 바짝바짝 탄 가슴만 덩그렇게 검은 재로 남는다는 걸…… “문학은, 특히 시조는 저에게 있어서 짝사랑의 대상입니다. 죽으라고 쫓아가나 끝내 잡히지는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시조입니다. 만남이 없는 그리움은 고통이라지만 기다림이라도 없다면 이 세상은 또 얼마나 삭막할 것입니까. 언제까지나 그 애타는 그리움을 즐겨 기다릴 겁니다. 시조가 저를 사랑하지 않아도 저는 시조를 사랑하니까요.” 이만큼 오면 저만치 가버리는 것이 짝사랑이다. 휑하니 멀어질 줄만 알지, 그리움을 부풀릴 줄만 알지, 멀리서라도 손 한번 흔들어주지 않는 것이 짝사랑이다. 마치 바다와 육지 사이에 놓인 섬처럼 그 숙명적인 괴리의 공간에 그는 스스로를 기꺼이 유배시켰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거나 시조에 대한 동경을 꺾지 않는다. 다만, 짝사랑이 언제나 상처를 품고 있듯 그만큼의 고독은 있을 터이다. 탈대로 다 탔는가 싶다가도 검은 재 위에 다시금 화산 같은 불이 번지는 것이 짝사랑의 속성이 아니던가.

그가 본격적으로 시조를 쓰기 시작한 것은 나루문학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1981년이다. 그동안 끊임없이 습작해온 시조들이 나루문학회 동인지를 통해 활자화되어 지면에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990년 농민문학에 응모한 시조가 당선되어 그의 이름 앞에 정식으로 ‘시인’이란 두 글자가 따라붙게 되었다. 1938년 당진에서 태어나 머리에 서리가 내려도 단단히 내린 그의 나이 오십을 훌쩍 넘어버린 때였다. 그러나 그는 ‘시인’이란 호칭을 달게 여기지 않는다. 진정한 시를 쓸 수 있는 자질이 있는 것인지, 자신이 쓴 시조의 문학적 가치가 과연 얼마나 깊을 것인지에 대한 갈등을 그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짧은 글로 표현한다고 생각할 뿐 시를 쓴다고는 여기지 않는다는 말로 덤덤히 토로했다.

시조의 영혼이 속삭이는 전언

그의 시, ‘네 영혼이 내 가슴에 와 앉는 날’에서 읊었듯 가끔씩 시조의 영혼이 그의 가슴에 앉는 날 그는 바보의 잣대로, 그 순한 눈으로 시조를 쓴다. 버스의 털컹거림 속에서도, 깊은 잠에 들었다가도 시조의 영혼이 그의 가슴에 빛으로 스치면 그 일각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는 종이와 펜을 찾는다. 그리곤 아무 것도 없는 하얀 백지 위해 마음이 가는 대로, 그 마음이 가는 곳에 손을 움직여 한편의 시의 모태가 되는 짤막한 구절을 적는다.

“‘시의 첫 구절은 신이 써주는 것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시조의 영혼이 짤막한 글이나 단어를 전해주기는 합니다만 그것이 하나의 시조로 거듭나기 위해선 많은 공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이유로 한편의 시조를 쓰는데 더러 2~3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영 다듬어지지 않으면 시작노트에 적어놓은 그대로 묵혀두곤 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묵혀둔 글이 눈에 띄면 고치고, 또 고치고, 그리고……또다시 고치는 거죠.” 창작이란 아무 것도 아닌 헛것에서 의미 있는 어떤 것을 이끌어내는 고통의 과정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조의 영혼의 전언을 제대로 옮기기까지 그는 몇 년 동안이나 창작의 고통과 맞대거리한다. 그 휘청거리지 않음이 끝내는 산고와도 같은 고통과 수많은 시간이 녹아있는 시조를 지어내는 것이다.

“시조는 우리민족이 창안해낸 고유한 문학형태입니다. 시조의 정형화된 구조로 현대의 복잡한 사상이나 감정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가 하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그건 자유시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시조는 우리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 민족의 정서를 더 잘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한참 얘기가 깊어지던 중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시조는 어떤 것이냐고. 농부에게 논의 벼 중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느냐고 묻는 것처럼 어처구니없는 질문임을 모르지 않았으나 그저 알고 싶었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을 것이다.

“글쎄요. 굳이 그렇게 물으시니 ‘꽃잎 지는 날에’를 꼽지 않을 수 없군요. 언젠가 한 청년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꽃잎 지는 날에’를 읽고 쓴 편지더군요. 죽음까지 생각했다던 청년이 그 시조를 읽고 마음을 돌렸다고 썼죠. 시인으로써, 아니 글을 쓰는 사람으로써 그보다 더한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쨌든 평생동안 단 한 명의 독자는 확보한 셈이죠.”

하얀 시를 쓸 당신의 몫

사실 그를 만나기 전 그의 시집 「꽃은 지기 위해 피느니」를 들춰봤다. 시인을 만남에 있어 미리 갖춰야 할 예우라고 생각하고 단순히 책장을 넘겼던 것뿐인데 한 편의 시조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가슴을 말갛게 / 지워 두리다 / 영원히 / 못채운 / 공백의 생을 마친다 해도 / 어느 날 / 하얀 시를 쓸 / 당진의 몫으로」 " ‘당신의 몫으로’ 전문 "

어느 누가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시를 그는 하얀 시라고 일컫는다. 어떤 색을 덧칠해도 본래의 색을 오염시키는 않는 것이 하얀 색이 아니던가.

외딴 섬의 바위틈에 가까스로 자리를 튼 씨앗이 끝내 푸른 잎을 틔우는 것처럼 맨 처음 한 편의 시조가 그의 아픔 속에서 잉태됐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 백여 편의 시조가 그 외딴 섬에 단아한 숲을 이루었음을 그의 시집 속에서 발견했다. 그러니 시조를 짝사랑한다 해도 그는 최소한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시조에 대한 그리움이 그에겐 힘이 되고 더러 그의 시조를 아끼는 독자들의 아득한 메아리가 외딴 섬을 위로할 것이니.

꽃잎 지는 날에

뚝뚝 떨군다

뒤돌아 보지 않고

" 눈물처럼

영롱한

죽음으로

사는 삶 "

육신을

소지로 사르며

내일을 심고 간다.

※약력

1938년 당진 출생

고남·천의·면천·중흥 우체국장을 역임

1990년 농민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당진지부 지부장(현재)

도서출판 글방 대표(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현재)

저서 : 『당나루의 脈絡11』, 『꽃은 지기 위해 피느니』 등

이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