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15호 태풍 「루사」가 남기고 간 흔적을 볼 때마다 답답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농촌을 지키고 있는 농업인들이 자연재해로 애 태우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많은 국민들이 수해복구에 동참하고 정부에서도 신속한 복구를 위해 재해특별지역을 선포했지만 그것으로 농업인들의 상심을 달랠 수는 없을 것이다. 수해는 단지 우리에게 농촌의 아픈 현실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농업인의 아픔을 덜어주고자 한다면 농촌이 갖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 농촌은 보리고개를 넘긴지 30여년만에 농산물 가격 정체, 농가부채, 열악한 생활환경, 확대되는 도농소득격차 등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거기에 더하여 세계화라는 이름아래 개방을 재촉하는 획일적 경제논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빼앗아 버렸다. 과거에는 그래도 「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농경사회의 전통이 자긍심을 지켜 주었다. 농촌 고유문화에 대한 이해와 유대감은 농촌을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었으며, 지금은 어렵지만 잘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하였다. 그 결과 녹색혁명을 달성했고 주곡의 안정적 자급기반 위에서 산업화를 이룩하는 遠因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쌀값 하락이라는, 그야말로 농업인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물론 수요에 비해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이 내려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쌀값은 단순한 지표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옛날에는 「쌀을 주고 돈을 산다」는 의미로 쌀을 시장에 내다 팔 때 「쌀 사러 간다」고 할 만큼 금과 함께 우리의 경제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만큼 쌀값 하락이 농촌사회에 주는 파장은 매우 컸다. UR에 이어 2004년까지 진행되는 WTO 뉴라운드 협상이 가져 올 농산물시장 추가 개방도 농업인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엄청난 수해를 당했으니 그 슬픔이 어떠하겠는가. 1년동안 땀흘리며 정성을 다한 자취가 하루아침에 없어진다는 것은 단장(斷腸)의 슬픔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농업은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의 먹거리를 공급하는 생명의 원천이자 환경적으로는 허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사회안전판으로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기도 한다. 선진국이 농촌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안방이 편안해야 바깥일도 잘된다는 말과 같이 농촌과 농업인이 편안해야 국가의 안녕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곡식이 자라야 할 들판에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라고 정겨움이 넘쳐야 할 마을이 비어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아마존의 밀림을 걱정하기 전에 우리의 농촌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할 때다. 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농촌에 대해 호의를 갖고 마음으로부터 걱정을 하면 그 혜택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오히려 우리가 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되돌려 받게 된다. 지금 겪고 있는 수해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애정을 갖고 지켜줘야 하는 계속성이 있어야 한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농업인들이 정성들여 생산한 농산물을 애용하는 것, 농촌의 깨끗한 자연환경을 사랑하고 체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금 농촌현장에서도 개방의 파고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신토불이라는 쇼비니즘에 호소하지 않고, 안전하면서도 질 좋은 농산물로 국민의 사랑을 받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모두가 마음과 정성을 기울이면 농촌과 농업은 생명산업으로서 새로운 희망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