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글로 맹자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올리게 된 것은 금년 총선이 40여일로 다가오면서 신문에 각 정당에 공천을 신청한 사람들이 소개됨에 따라 그 분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여민동락이라 함은 “정치라는 것은 자기 혼자 즐거워하려고 해도 결코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백성들과 함께 한가지로 즐거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경에 보면 잃었던 아들의 비유가 나온다. 요약하면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작은 아들이 제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아버지께 분배해달라고 하여 챙겨 먼 곳으로 가서 살았다. 그 아들은 그 곳에서 재산을 마구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고 가진 돈을 다 탕진해 알거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먹고 살아남기 위해 남의 농장에서 돼지치는 막일꾼으로 들어가 일을 하였지만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도록 아무도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제 정신이 든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며 아버지께 불경했다고 자기반성하면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을 맞으며 포옹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그가 돌아왔음을 축하했으며 좋은 옷도 내려준다. 그리나 이것을 본 큰 아들은 불만투성이다. 재산을 탕진하고 집으로 온 아들을 그렇게 융숭하게 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또 재산을 탕진한 아우도 미운 것이었다. 큰 아들은 아버지께 순종하면서 농사를 짓던 나에게는 베푼 것이 없었다며 불평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총선출마 채비를 갖추고 있는 얼굴들을 마주하는 당진 유권자들 마음가짐은 작은 아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심정일까, 아니면 아버지께 푸대접 받았다고 불만하는 형의 마음일까?

출정 준비를 갖추고 있는 사람들은 예(禮)를 배우지 않고서는 남 앞에 나설 수 없는 것이다. 예는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근간이 됨으로 예를 배우지 않고서는 사람으로서의 행세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출전에 임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무치(無恥)한 사람처럼 무서운 것도 없다. 화가가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 먼저 캔버스를 준비하고 거기에 흰 칠을 고르게 잘 칠해야 한다. 색칠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런데 캔버스의 흰 칠 작업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업이다. 아름답고 작품성이 뛰어난 그림을 그리려면 그 흰 바탕(캔버스)이 잘 손질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물며 인간이 자기의 몸을 꾸미는데 있어 남 앞에 나서기 전에 먼저 자기 마음의 수양을 닦아야 하고 성심으로 자기의 근본으로 삼아야 될 것이다. 처음 3년 배우면 세상 무서울 것이 없지만 다시 3년을 배우면 발걸음 하나 움직이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고사가 있다.

우리는 이번 총선에서 장부다운 대장부(大丈夫)를 원하고 바라고 있는 것이다. “부귀하여도 능히 방탕하지 않으며 비천하여도 능히 지절(志節)을 옮기지 않으며 위엄과 무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사람을 대장부라고 이르는 것이다”(맹자님 말씀). 작은 이익만 범하다가 큰 손실을 보아서는 안되므로 자연스럽게 민심을 얻게 되고, 민심을 잃게 되면 나라를 잃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작은 물고기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기슭에 나와 노닐지만 큰 고기는 사람에게 보이지 않게 깊은 물 속에 잠겨 있는 것이다. 우리 유권자들은 깊은 물 속에 숨어있는 큰 물고기를 찾아내서 참일꾼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여민동락 “정치는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