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보다 소중한 내 인생, 그래서 여행 떠나요”

대학원 특수교육 전공이 꿈인

방송대 교육학과 최미현씨.

그녀가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훌쩍 여행을 떠나는 이유

저지르고 싶은 일

저지를 수 있는 게 바로 20대

가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나 자신이 내 인생을 후회없이 사는 게 중요하니까요.”

최미현(25세)씨는 이달 말이면 5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여행의 이름은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만나고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다. 여행기간으로 잡은 시간은 약 5개월.

“맨 먼저 버스여행을 하고 싶어요. 몇시까지 어디를 가야 한다거나, 몇시까지 어디로 돌아와야 한다는, 누가 정해준 시간과 장소없이 그저 평화롭게 종점까지 다녀와보고 싶어요.”

그러고 나서는 그동안 멀리서 편지로밖에 안부를 전할 수 없었던 소중한 친구들과 좋아했던 선생님들도 찾아다닐 생각이다. 많은 친구들이 고향을 떠났고 더구나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아기들까지 낳아 사는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들을 찾아 먼길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번 스승의 날에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이셨던 좥신용순좦 선생님이 유난히 생각났다. 선생님께서는 그때 평균점수 10점이 오른 착실한 아이 10명과 함께 버스를 타고 당진읍내에 나와서 맛있는 빵집 빵을 사주신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읍내에 나와본 일이라곤 다섯손가락 꼽을 만큼밖에 안되는 어린 미현이에게 읍내 빵집에서 먹은 빵의 맛은 각별하게 달콤했다. 그때 선생님은 아마도 초임발령을 받아 아이들에게 각별히 사랑과 관심을 베풀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인터넷 사이트 좥그리운 사람찾기좦를 통해 선생님을 찾고 싶다는 미현씨. 신 선생님은 이번 여행에서 미현씨가 만나고 싶은 사람 중의 하나다.

이렇게 보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을 만난 뒤에는 정말 여행을 떠날 것이다. 국내여행이 좋을지, 해외여행이 좋을지 요즘 한참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미현씨가 바쁘디 바쁜 직장생활을 접고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은 일과 직장, 그 자체보다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다닌 ‘당진신협’은 직장으로서 꽤 괜찮은 곳이었다. 하지만 일은 인생의 한 부분이다. 일을 그만두는 게 당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안겨주겠지만 휴식과 충전을 거쳐 ‘나’를 찾아가며 새출발한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다.

무엇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평생을 두고 하고 싶은 일’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발견했을 때 미현씨는 더이상 지체하는 게 단지 ‘미련’과 ‘눈치’일 뿐이라는 걸 알았다. 그것은 타당치 않았다. ‘내 삶은 나만이 책임질 수 있으므로 결단도 내가 한다.’

이규형씨의 책 좥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좦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 저지를 일을 과감히 저지르도록 미현씨를 격려했다. 옷 사는 데 쓰는 돈보다 책 사는 데 쓰는 돈이 훨씬 더 많은 미현씨는 가끔 영풍문고나 교보문고 같은 데서 하루종일 책을 뒤적이며 지치도록 서있는 날이 행복하다. 하지만 그런 행복조차 한달에 한번, 두달에 한번밖에 맛볼 수 없었다.

“돈요? 제가 직장을 그만둔다고 했더니 다들 돈 많이 벌었냐고 물어요. 돈은 꼭 필요한 만큼만 저축해 뒀어요. 부모님께 손벌리기 싫어서 결혼자금하고 여행자금은 마련해 놨구요. 대학등록금도 남겨 놓았어요.”

미현씨는 방송통신대학 4학년째에 다니고 있다. 우연히 고르게 된 ‘교육학과’ 수업은 흥미롭고도 유익했다. 어렸을 때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잘 몰랐고, 두 오빠가 대학을 다니는 바람에 집안여유도 없고 해서 실업계고등학교를 진학한 미현씨에게 뒤늦게 시작한 방송대 수업은 학문에 대한 매력을 느끼도록 해 주었다.

미현씨는 내년초 교육학과를 졸업하면 대학원에 진학해 ‘특수교육’을 전공할 야무진 생각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농아와 그 가족,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마련된 좥수화(手話)좦를 배우기 위해 수원을 오가는 번거로움도 이겨내고 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좥인생에 정답은 없다좦고 하셨을 때에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왜 정답이 없을까 공부 잘하고, 모범적으로 살고, 쓰레기 안버리고... 이런 것들이 정답이 아닐까. 정답이 없다면 무엇에 기준해서 살아가야 하는 거지? 의아했었죠. 하지만 이제는 좀 알 것 같아요. 그 정답은 각자에게 있기 때문에 정답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걸요.”

미현씨는 계속해 말을 잇는다.

“사실은 조금 두렵기도 해요. 내가 지나친 꿈을 꾸는 건 아닐까 하구요. 하지만 전 마음이 설레요. 내가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들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에요. 전에는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가다가 중단하면 아니간만 못하다구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가다가 중단하더라도 그것에 최선을 다했고 거기서 기쁨을 맛보았다면 그만큼 인생에 득이 되는 게 아니겠어요?.”

미현씨는 이제 곧 떠난다. 5월31일 마지막 근무를 끝내고 6월1일 아침, 출발 전에 실업자 등록신청을 낸다. 4개월간 실업연금을 받을 수도 있고 여행을 끝내고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다시 취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가난한 여행자의 현명한 판단이다).

“5개월쯤 뒤면 다시 돌아올 거예요. 그리고 다시 열심히 일해야죠.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야 제꿈에도 한발 한발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김태숙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