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시대적 상황속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에 대해서 좋지않은 감정으로만 대하는 것에 빗대어 볼 때 태극기 휘날리며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해야할지를 말해주는 영화이다.

우연치 않은 기회로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보게 됐다. 이 영화에 대해 나는 다른 전쟁영화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무척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다른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 지금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에 대한 열쇠를 제공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장동건과 원빈은 한 핏줄에서 태어난 형제로 등장한다. 부득이하게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한국전쟁은 전쟁의 소용돌이 안으로 두 형제를 밀어 넣고 만다. 피난 과정에서 동생 원빈이 학도병으로 차출 당하자 구두닦기를 하며 가족을 돌봐온 형 장동건은 함께 군대에 들어가게 된다. ‘주객이 전도됐다’고나 할까?

형 장동건은 동생을 보호할 목적으로 군대에 입대했지만 전쟁에서 전훈이 쌓여가면서 그 태도가 바뀌게 되고 전쟁을 즐기는 전쟁의 노예로 변해간다. 이런 형의 모습을 동생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동생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는 장동건은 적장이 되어 그 분노를 푼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적장이 된 형과 동생이 전장에서 조우하는 장면일 것이다. 포성이 오가는 위급한 전장에서 동생을 보고도 동생인 줄 모른 형(영화에서 형 장동건은 동생이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동생의 존재를 부정한다)과 이를 지켜보는 동생. 그러나 형 장동건이 동생을 기억하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형은 동생의 후퇴를 돕는데 목숨을 건다. 그리고 시간이 경과한다.

수 십 년이 지난 전장 발굴현장에서 형의 존재를 알리는 유품들은 형을 마음에 담고 있는 동생에게 형의 존재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첫째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불행을 말해준다. 그리고 곧 그 국가를 보호하는 것은 결국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군 입대를 기피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병역비리가 계층을 망라하고 일어나는 이 현실에서 과연 젊은 세대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를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본 뒤 영화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장면 곳곳에 많은 의미들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본 사람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깃발을 휘날리는 것처럼 좋은 일이 많지 않은 세상에 태극기 휘날릴 좋은 일이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영화감독의 인터뷰도 생각난다.

영화제목처럼 결말에서 태극기 휘날릴 것 같은 해피엔딩은 없다. 어쩌면 감독은 행복한 결말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려운 농촌에서도, 박봉의 직장인들도, 그리고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태극기 휘날리는 것 같은 행복들이 가득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