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도관으로 일하는 동안 재소자와 찍은 사진.
▲ 교도관으로 일하는 동안 재소자와 찍은 사진.

왜목마을 가는 길에 못미쳐서 보면 길가에 여러 개의 간판들이 매달려 있는 기둥 하나를 볼 수 있다. 이 기둥에는 인근의 민박집, 모텔, 펜션, 음식점 등 다양한 종류의 간판들이 매달려 있다. 그 중엔 다른 간판보다 작은 ‘보람선교회’라는 간판도 함께 있다.

보람선교회는 지난 2003년 민수선(69) 전도사와 민씨의 평생 동반자인 배선관(70) 목사가 문을 연 작은 모임이다. 모임이라고 해도 사실은 이 두 사람 뿐이지만.

민 전도사와 배 목사는 18년 동안 전국의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교화활동을 벌이고 있다. 보람선교회는 이 두 사람이 만든 자그마한 모임이다. 사무실은 서울이지만 이 두 사람은 당진에 내려와서 머물고 있다. 그 이유는 민수선 전도사의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 요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교도관 생활만 23년

민수선 전도사는 지난 1985년 명예퇴임할 때까지 무려 28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재소자가 아닌 교도관으로 28년을 보냈다. 여자 감방에서 근무하면서 여러가지 일을 겪었다. 임신한 채로 교도소에 들어와 아이를 낳은 재소자들을 돌보고 사형수가 사형을 당하는 날 보여주는 허무한 표정을 보기도 했다. 항상 자신이 당직을 서는 날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민씨는 “교도소에 들어왔다가 형을 다 채우고 나가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로 들어오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민씨는 이런 이들을 위해 남몰래 도움을 주었다. 각별히 신경을 쓰면서 친구처럼, 부모처럼 대했다. 심지어는 교도소에서 낳은 아이를 남편 몰래 집에 데려오기도 했다. 이렇게 정성을 다했으니 재소자들이 출감한 후에도 찾아와 감사의 말을 전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민씨는 교도관 생활 중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차○○씨 사건’을 떠올렸다. 교도관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다고. 차씨는 세간의 화제였다. 차씨를 유혹한 뒤 버린 남자는 유부남이면서도 잘생긴 외모로 숱한 여자들을 울렸고 차씨 역시 그 여자들 중의 하나였다. 남자의 배신에 분노한 차씨는 결국 남자를 살해하고 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사형 전까지 차씨를 맡은 사람이 바로 민씨였다. 민씨는 삶을 포기한 차씨를 설득해 진술서를 받고 갖은 방법으로 보살펴주었다. 민씨가 받아낸 진술서가 세상에 알려지자 세상의 동정을 받게 된 차씨는 결국 사형에서 감형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고 한다.

18년 동안 교도소를 ‘순회 중’

민씨가 교도소를 순회하기 시작한 지 벌써 18년째다. 45세에 교도관을 그만두고 잠시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이 바뀌게 되는 계기를 맞았다.

18년 전 남편 배씨와 함께 충북의 실로암 교회에서 본 사람들은 민씨의 삶을 바꾸었다. 진정한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도우며 ‘자신이 앞으로 할 일은 이것’이라고 결심했다.

그때 이후 전국의 교도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28년 동안이나 교도관으로 근무한 민씨를 홀대할 수 있는 교도소장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이미 성인이 된 자녀들은 부모를 극구 말렸다.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냐고. 자동차도 없어 타지로 갈 때는 항상 버스를 타고 다녔다. 왜목에서 홍성까지 가려면 차를 네 번 갈아타야 한다. 왜목에서 당진, 당진에서 예산, 예산에서 홍성. 홍성에 도착하면 거기서는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너무나 어렵게 교도소를 방문하는 대선배가 안타까워 교도소장이 차를 보내겠다고 해도 민씨는 극구 거절했다. 자신이 무슨 대단한 인물이냐는 생각 때문이다.

이같은 생활이 계속되자 결국 자녀들이 손을 들고 말았다. 부모님이 교도소를 찾지 못하도록 현금을 보내지 않고 현물로 보내던 자녀들도 결국 올해 부모님을 위해 자가용을 마련해 주었다.

“자녀들과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

민수선 전도사는 지금 장애 판정을 받을만큼 눈이 안 좋아졌다. 어두운 감방만을 찾아다녀서인지 어두운 곳에서는 전혀 볼 수가 없다. 눈과 함께 건강도 점점 나빠져갔다. 그 때문에 요양할 곳을 찾던 중 왜목마을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때가 지난 2000년. 그러나 민씨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일을 아직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자녀들에게 자랑스러운 본보기가 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그 때문에 민씨는 오늘도 전국의 교도소를 찾아가 재소자들을 돌본다. 그들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교화를 시키며, 말동무가 되어준다.

민씨가 뿌리는 씨앗은 작지 않다. 작지 않은만큼 언젠가는 더 큰 열매를 맺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