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대시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권건오 / 당진축협 기획실장, 국립공주문화대학 강사
한병태는 공무원인 아버지가 지방으로 좌천되면서 시골로 이사를 오게 된다. 공부도 잘하고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한병태는 전학 온 학급의 반장 엄석대가 아이들 위에 군림하여 전횡을 하는 것에 도전을 한다. 그러나 철저한 독재자인 엄석대의 배후에는 그의 효율적인 통치에 덕을 보고 있는 담임선생이 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반장 엄석대의 나쁜 짓을 담임에게 고발하지만 담임선생의 신임은 더욱 굳어만 가고 모든 현실은 엄석대에 의해서 장악되고 만다. 한병태의 도전 역시 제2인자의 위치를 수혜받음으로써 그 질서에 순응하고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주인공들이 5학년에서 6학년으로 진급을 하면서 사범학교를 졸업한 새로운 담임교사를 맞게된다. 새로 담임을 맡은 교사는 반장 엄석대의 강압적인 학급 운영을 비판하고 구성원의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엄석대는 전교 1등까지 조작하는데 그 부정이 발각되면서 학교를 떠나게 된다. 이때 담임선생은 엄석대와 그 공모자들을 때리면서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들의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반체제적인 젊은 교사는 반장의 권력을 무참히 꺾어 버리고 교실의 부정부패를 일소하지만 그 또한 독선과 폭력을 행사한다. 아이들은 젊은 새 담임선생에게 복종하고 교실은 또 다른 형태의 억압과 독재로 이어진다.
이것은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줄거리이다. 이 소설을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한낱 어린이들의 세계를 묘사한 사건쯤으로 넘겨 버리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가슴이 아프도록 애통한 우리 한국사회의 현실을 보게 된다.
인간의 역사는 항상 반복된다. 반장 엄석대는 소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끊임없이 재창조되어진다. 반장 엄석대는 정치권력의 구조를 노련하게 조정하는 권력자이거나 지역사회나 조그만 조직에서 권력에 맛들인 타락한 유지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개혁을 주창하면서 등장하여 결국에는 정치에 입문한 젊은 담임선생에게서 시민운동을 발판으로 정치판에 합류하는 패거리나 전임자의 비리를 들추고 무능을 외치면서 나서는 지역선거의 출마자나 당선자가 또 다른 독재자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엄석대가 몰락한 뒤 반 아이들의 권력에 대한 두려움에 또 다른 억압과 독재에 비겁하게 순응하는 형태를 통해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 현실에서 어리석은 군중으로 표나게 드러난다. 우리들은 현실에서 반장 엄석대일 수도, 한병태일 수도 있고, 젊은 담임교사일 수도 있으며, 학급 아이들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시대의 영웅은 누구인가? 한병태, 반장 엄석대, 젊은 담임교사 각각 다른 의미에서 영웅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일 뿐이다.
또 그렇다면 우리의 자리는 최소한 우리들의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모르고 불의한 힘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거나 권력에 대한 은밀한 두려움으로 비겁하게 현실에 순응하는 그런 모습은 아니어야 하지 않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