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직한 성품 감사관 임명 배경돼” “신의성실 원칙 지켜온 청빈한 공무원” 자부 한장석 후보는 합덕읍 도곡리에서 부친 한원교(작고)씨와 모친 박영종 씨의 5남4녀중 맏이로 태어났다. 중농으로 ‘먹고사는데 큰 지장이 없었던’ 그의 가계는 부친이 일찍 작고하는 바람에 부친이 물려준 재산을 분배해 살림을 꾸려 나갔다. 해군제대후 스물일곱살 때 우강면사무소에서 면서기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공직생활의 초입을 '새마을운동'으로 보냈다.

합덕면을 거쳐 공직입문 4년만에 당진군청 새마을계로 발탁된 배경도 “새마을 운동을 제대로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욕심은 없었어도 승진에 대한 욕심은 많았다고 한다. 그는 1979년도 당진군청에서 계장으로 승진한 지 한달도 채 안돼 전입시험을 치러 충남도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마을운동 공로로 발탁 승진욕심에 대해 그는 일을 하겠다는 공무원이라면 당연히 품을 수 있는 욕심이라며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충남도청에서 민방위과 운영계장, 사회과 노정계장, 민원실 여권계장, 회계과 용도계장, 총무과 관리계장, 지방과 행정계장 민원담당관, 청소년과장, 지역경제과장 등을 지낸 그는 청소년과장을 맡았을 때 기금통합을 한 것과 여권계장 시절 여권민원편람을 만들어 외무부로부터 정부가 할 일을 대신 했다는 평을 들었던 일 등을 거론하며 주민을 위한 작은 개혁을 드러내지 않고 실천해 왔다고 자부했다. 그는 자신을 성실하고 청빈하며 강직한 공무원이었다고 소개했다.

“누군가 공직생활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다음 두가지 중 한가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하나는 성실하게 일해서 승진하는 것, 다른 하나는 직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 저는 전자를 택했습니다.

이재엔 밝지가 못했어요. 평생 제 손으로 땅을 사서 되판적이 없었으니까요. 주식을 사서 절단난 적은 있습니다.

(웃음)” “성실하게 일하는 공무원 길 선택” 1998년 충남도 감사관으로 발령을 받은 그는 자신의 강직한 성품이 감사관 임명의 배경이었다고 말했다. 평소 심대평지사로부터 ‘한과장은 대가 너무 세다’는 말을 들어왔다는 그는 도청 간부급 전 직원이 모이는 공개토론회 자리에서 학맥과 인맥이 작용하는 도청 인사시스템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등 직언을 서슴지 않았음을 예로 들었다. 2000년 당진군 부군수로 발령을 받아 20여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부군수 재직시 평택과의 도계분쟁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자고 발의해 군수 결심을 받아 신청했고 결국 승소에 이르게 됐다며 자신의 역할이 밖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가장 보람있었던 일로 꼽았다.

행정경력 알려지면서 자신감 생겨 그는 자신의 공직생활 철학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거짓말을 전혀 할 줄 모르고 콩심은데 콩나는, 곧이 곧대로의 고지식한 공무원이었다는 그는 정치판에 뛰어든 지금에 와서 돌이켜볼때 오히려 후회되는 점이 많다고 한다. 다양한 사회활동을 했더라면 사회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며 자신에 대한 취약한 인지도를 극복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자신이 당진군 부군수를 역임했다는 사실과 오랜 행정경력이 알려지면서 노년층을 중심으로 ‘한장석’이라는 상품이 홍보가 되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한장석 후보는 부인 김순임씨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으며 취미는 등산과 낚시다. 걸어온 길 1942년 합덕읍 도곡리 출생(만 64세) 합덕초, 중학교, 예산농고 졸 1969년 우강면사무소에서 면서기로 공직입문 충남도 감사관, 지역경제과장, 청소년과장 등 역임 2000년 당진군 부군수 2002년 명예퇴임(3급 서기관) 현재 당진군 공직윤리위원, 정보공개심의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