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진의 화훼농업을 이끌었던 선도농가 이희양씨. 폭설피해와 손목절단 손가락까지 잃는 시련을 연거푸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일들을 벌이며 ‘즐겁게’ 살고있다.
▲ 당진의 화훼농업을 이끌었던 선도농가 이희양씨. 폭설피해와 손목절단 손가락까지 잃는 시련을 연거푸 겪으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일들을 벌이며 ‘즐겁게’ 살고있다.

그를보면 잘 산다는 것, 그것은 곧 낙천적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하룻저녁 폭설로 수년간 가꾸어 온 화훼농장이 일순간 무너져 내렸어도, 콤바인에 손목을 잘리고 반대편 손가락마저 잃었어도 그의 삶에 쉼표는 없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면서 사는 그에게 시련은 그를 담금질 하는 쇳물에 불과 했을 뿐 그를 집어 삼키진 못했다.

송산면 서정리 이희양씨(45), 사람들의 기억속에 그는 당진의 화훼농업을 이끌었던 선도농가로 남아있다. 93년도 당진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장미재배 농원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컴퓨터 양액재배라는 첨단기술을 화훼에 처음으로 도입해 각종 매스컴에 등장하는 등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었다. 그가 재배한 장미꽃 만큼이나 화려했던 모습으로 주변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그의 비닐 하우스엔 그러나 지금 장미꽃 한송이 남아있지 않다. 대신 곧 물이 담긴 논으로 바로 들어갈 수천개의 모 묘판이 1200여평의 하우스를 가득 메우고 있다. 2001년 새해벽두를 강타했던 폭설로 하우스가 폭삭 주저앉으면서 애써 재배해 온 수만여본의 장미를 일시에 잃어버린 뒤 화훼에서 손을 떼고 육묘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IMF 경제위기를 맞아 소비가 둔화되는 와중에도 첨단시설에 억대의 투자를 감행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했던 그는 폭설피해로 빚만 고스란히 떠 안고 화훼를 접어야 했을 때 차라리 하우스가 넘어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첨단시설로 훌륭한 농산물을 생산하고도 제값을 못받아 기름값도 건지기 어려운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폭설피해의 시름을 채 잊기도 전인 바로 이듬해, 그는 벼수확작업중 콤바인에 왼쪽 손목이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잘려나간 손은 콤바인속으로 녹아 들어가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됐다.

그런데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불행의 속성인지, 그 이듬해 그는 사료 믹서기에 오른쪽 손가락 3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또 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엄지와 검지손가락은 접합수술을 해서 되찾았지만 중지는 끝내 잘린채로 남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연거푸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겪은 그는 그러나 처지를 비관할 새도 없이 일에 매달렸다. 모육묘는 봄한철 작업으로 한해동안 먹고 살 만큼의 수익을 보장해 줄 정도로 짭짤한 일이었음에도 나머지 계절을 놀면서 보낼 수 없어 버섯재배도 하고 개 사육도 집단으로 했다. 장수풍뎅이가 애완용이나 아이들 학교교육용으로 판매된다는 정보를 접하고 한때 장수풍뎅이 사육에도 뛰어 들었다. 모두 큰재미를 보지 못하고 접었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할때에도 또 그 일을 포기할때에도 망설임 없이 빠르게 결정하는 그이기에 큰 손해를 보지도 않았다고.

“새로운 일을 벌이길 원래 좋아해요, 벌여도 아주 크게 벌이죠. 주위에서  한결같이 간이 크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선 책임을 지니까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어요.”

일벌이기 좋아하는 남편덕에 덩달아 일복이 터진 부인 박종선씨의 말이다.

비록 한손잡이가 되었지만 그는 한손으로 모든 일을 다한다. 자동차도, 농기계도 운전하고 고깃집에 가서 상추쌈을 싸 먹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자신을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을 느낄 때 가슴이 아리다. 모른척 해주었으면 차라리 좋을 터인데... 그러면서도 동정심을 일으키는 자신의 처지가 오히려 여자동창들을 꼬이는데는 유리하다며 농을 던진다.

“이렇게 웃으면서도 늘 생각은 잃어버린 왼손에 있습니다. 왜 있잖습니까.돌이킬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미련이 남는거...”

돌이킬 수 없다면 잊는 것이 능사다. 그러나 잊는 것 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을땐 주문을 왼다.

즐겁게 살자, 즐겁게 살자, 즐겁게 살자...

“항상 일을 벌이는 것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원래 낮잠이라는 걸 자본 적이 없어요. 그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죠.”

그는 지금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갖고있는 1200여평의 농장을 도시소비자들에게 주말농장으로 빌려주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을 농장으로 불러들인 다음 그들이 즐겁게 구경하고, 즐기고, 먹고 갈 수 있는 식물원 같은 시설을 설립해보고 싶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돈을 벌어들이기위한 목적이 아니라 이제는 자신도, 또 남도 아무런 부담없이 그냥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 그것이 아마 자신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