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정지 내의 건곤일초정 모습.
▲ 골정지 내의 건곤일초정 모습.

편집자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문화유산과 문화유적, 그리고 후손에 전해주어야 할 가치를 가진 무형문화재가 많이 있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명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없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같은 문제의식 아래 본지는 지난해 7회에 걸쳐 연재했으며 올해에도 지역의 숨어있는 명물과 문화유산을 보도해 넓게는 당진의 관광산업 발전을, 단기적으로는 지역의 문화유산 보존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 취재는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이뤄졌습니다.

하늘이 내려앉은 연못 가운데 떠 있는 초정, 그 위를 나르는 왜가리들의 풍경이 아늑하다. 210년 전 조선시대 실학자인 박지원이 군수로 있을 당시 만들어 졌다는 골정지는 이제 주민과 관광객들의 편안한 휴식처로 자리 잡았다.

실학자 박지원의 면천군수 시절

‘열하일기’로 널리 알려진 조선시대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1797년에 면천군수로 부임했다. 그는 군수로 면천에 3년간 머무르며 버려져 있던 지금의 골정지를 정비하고 농업용수로 쓰도록 했으며 지금의 순성면 양유리의 ‘양제’도 준설했다.

이용후생의 기반 위에서 정덕이 실현된다고 보아 물질의 풍요로움을 긍정하고 기술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올 수단으로 생각해 벽돌과 기계사용을 강조해 온 박지원은 면천군수로 지내면서 마을의 곳곳을 정비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가 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며 보고 겪은 내용을 수록한 과정록에서도 박지원의 면천군수 시절을 엿볼 수 있다.

‘면천군 남쪽에 양제라는 제방이 있었는데 (중략) 장마를 겪으면 곧 허물어져 백성들이 피해를 보았다. 아버지는 부임하신 초기에 그곳에 가 이리저리 살펴보신 후 봇물이 터지는 원래의 수로를 막고 따로 제방 왼쪽의 바위가 많은 곳을 뚫어 물을 가두고 내보내는 수문으로 삼게 했다.’

옛 제방이 주민들의 휴식처로

골정지 가운데에 작은 돌섬이 있다.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지내면서 연못에 인공섬을 만들고 돌다리로 연결해 그 위에 건곤일초정을 지었다. 두보의 시에서 따왔다고 알려진 ‘건곤일초정’은 천지 사이의 한 초정이라는 뜻이다.

건곤일초정에 오르면 면천향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박지원이 옛시절 유생들을 거느리고 정자에 올랐을 때를 떠올린다. 연못 가득 심어진 연꽃들이 만발하면 그 향기가 옛 선비들의 기품을 머금고 있을 듯하다.

이곳은 옛부터 향교와 가깝고 주역의 태괘형상으로 되어 있어 향교 유생들이 자주 머물며 시를 읊고 학문을 익혔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일제시대에 소멸되어 그동안 저수지로 활용되어 오던 것을 지난 1999년 주변을 정비하고 편의시설을 설치해 주민쉼터로 조성했다.

2000년 우연한 기회에 과정록을 접한 뒤 건곤일초정을 복원하게 됐다는 고경수 전 면천면장은 “관리가 되지 않아 황폐했던 곳이 이제는 주민과 관광객의 휴식처로 거듭나 면천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복원 당시에는 주춧돌로 보이는 돌 몇 석만이 남아있어 그 위치와 문헌에 전해 내려오는 당시의 모습을 단서로 해 지금의 건곤일초정을 복원했다.

골정지에는 봄이면 벚꽃과 진달래꽃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에서 연못에 핀 연꽃을 감상하러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