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어떻게 합니까?

노정길

석문면 초락교회 담임목사

“요즘 잘 안 읽습니다. 더구나 목사의 글을 누가 읽어요?”

당진시대 종교칼럼을 쓰게 되었다 하니 어느 아는 분이 하는 말입니다. 그 소리가 그 소리지 아예 제목만 보고 관심 안둔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몇 년전에 제가 시무하는 교회 목회 자료를 위해 주민 설문조사를 한 일이 있는데 ‘관심없다’ ‘무응답’이 59%여서 조금은 부끄럽고 창피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거창하게 예언자적인 사명 운운은 덮어두더라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의미와 방향만은 얘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할 수 있다면 선한 일에 참여까지 하는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참된 모습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하비콕스라는 학자는 좥세속도시좦에서 교회의 선포적 기능(케리그마)은, 교회는 지금 무슨 싸움을 싸우고 있으며 무엇이 다가오고 무엇이 오고야 만다는, 즉 혁명이 진행중이고 결정적인 전투가 이미 벌어졌다는 사실을 방송하는 하나님의 아방가르(전위대)라고 지적했습니다. 종소리(챠임벨)가 울리듯 세상에 대해 참소리를 말과 글과 소리와 행동으로 방송하는 기관이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불꺼진 방송국, 말 못하는 아나운서,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짓지 못하는 개, 짖어도 소리 안나는 개, 구실을 못하는 게 아닙니까. 목사의 소리가 교회당 안에서만 울리면 어쩝니까. 처음에는 듣지 않더라도 참소리는 듣는 사람이 생긴답니다. 세상을 향해 바른소리를 해야 할 사람들인데 바른소리가 없었습니다.

옛날 얘기해서 미안합니다만 그 어떤 정부시절에 전 공무원들을 동원해 그것도 학교 선생님들까지 끌어내 부정선거 저질러도, 군사독재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누명쓰고 죽어가도 교회는, 우리네 목사들까지 꿀먹은 벙어리 되어 말 한마디 안했습니다. 역사를 몰라서, 역사의식이 없어서라고 이해도 됩니다만 신앙노선에 위배된다고 생각이 들어서인지 철저히 현실을 외면하고 하늘나라만 얘기했다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입니다.

베스비우스 화산재에 폼베이가 파묻혔듯이 머지 않아 당진땅은 연기와 그을음으로 파묻힐 때가 오고 있음을 소리쳐도 귀기울이는 사람 없습니다. 바다가 죽고 하늘이 죽어가고 땅이 죽어가는데 천혜의 땅 당진? 축복받은 당진? 아, 신라의 달밤이여 옛날 노랫가락이 될 것입니다. 저 아랫녘 높은 굴뚝 아래 옹기종기 모여 살던 우리동네가 사람 살 곳 못된다고 뿔뿔이 흩어져 갔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이주명령이 내릴 날은 안 올런지... “그래도 사람은 다 살아유” 하겠지요.

내가 사는 땅을 사랑하고 못나서 남아 있다는 우리네들 한숨소리, 때로는 소문내고 싶은 정겨운 얘기들을 주어 섬기려고 주제넘게 나섰습니다. 좋은 일에 박수라도 쳐주시고 손이라도 들어주십시오. 세상 일에 참여하고 사는 제게 하나님은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죄가 됩니다.” (야고보서 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