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회에서 있었던 일
장덕기
발 행 인
지금부터 15년전 동문회에서 있었던 부끄러운 추억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초년병 시절 이야기입니다. 불과 20여명이 참석한 조촐한 모임이었습니다. 자리에는 머리 희끗희끗한 노년층부터 나처럼 새파란 애숭이도 있었습니다.
동문과 만나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길게는 수십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꿈 많은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가슴 벅찬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술이 돌면서 분위기는 고조되고 선후배 사이 벽이 무너지며 화기애애함이 점점 더해 갔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참석한 동문 중에 연로한 고교 교장선생님이 있었고 나와 비슷한 연배의 젊은 검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교장선생님이 검사에게 영감님이라고 호칭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처음에 농담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처음 검사는 당황하면서 선배에게 말을 놓으라고 했지만 선배는 계속 진지하게 영감님 대접을 하고 후배도 점차 익숙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더 이상 분위기에 휩싸일 수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연거푸 술을 마시는 일 뿐이었습니다.
차라리 당당하게 교육자로서, 인생 선배로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데 앞장서달라고 당부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후 나는 가끔 그때를 회상하며 쓴웃음을 짓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힘앞에 까닭없이 비굴해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사는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 계층입니다. 출발은 순수했지만 주위에서 그를 추켜세우는데 이상하게 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점차 선민의식에 빠지고 스스로 더 높은 신분을 유지하려고 정의에 어긋나는 일도 할 수 있는 때묻은 사람으로 변모합니다.
김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검찰이 서야 나라가 선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누가 검찰을 세웁니까? 정치인이 세우겠습니까? 정치인은 밑이 너무 구려서 못합니다. 시민단체가 합니까?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순수한 농민에게도 약점이 있답니다. 지게 받치는 작대기가 산림법 위반이랍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권력앞에 무기력하고 두려움을 표현하는 자조 섞인 말입니다. 검찰 스스로 개혁해야 하는데 몸집이 너무 비대해져서 당장은 힘들 겁니다.
그런데 이런 부끄러운 모습이 권력이나 이권이 있는 곳이라면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점입니다. 정치인 주변은 어떻습니까. 국회의원, 하다못해 지방의원들 보십시오. 주민들에게 봉사한다고 떠들지만 으시대기 좋아하고 먹을 것 없나 두눈을 번득이는 몹쓸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타락한 정치인에게 모리배가 모여듭니다. 잠시 굽신대는 거짓 동작에 황감해서 분별없이 표 찍으면 안됩니다. 선거 때마다 훌륭한 사람 뽑아 나라 살리고 지역 살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정신 차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