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강호엄마 박미자씨, 차강호, 강호할머니 이순희씨
▲ (왼쪽부터 강호엄마 박미자씨, 차강호, 강호할머니 이순희씨

절인배추 한 박스 꾸리고 돌아서니 그새 저녁어스름이 뒷산에서 허겁지게 내려와 앉았다.

시곡리 이순희(77)네도 겨울농사 ‘김장’을 하기위해 서울서 큰며느리 네가 막 다녀간 모양이다. 열일곱에 시집 와 이 집에서 60년을 사는 동안 남편을 먼저 보내고, 7년 전에는 둘째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아린 가슴 보듬어주는 착한 둘째며느리 박미자(47)씨와 눈에 넣고 다니는 손자 차강호(기지초6)가 순희 씨의 사는 이유다. 지난번 행복나눔센터를 통해서 도움 받은 것이 두고두고 고마웠던게다.

“화장실이 멀고 추워서 여태 울 애기 고생시켰는디 이번에 와 보고 선 다들 좋다고 그려유. 장판도 새로 두꺼운 놈으로 깔아줘서 냉기도 덜한 것이 이렇게 겨울이 가까우니 더 요긴하고 고맙지유.”

여든을 바라보는 이씨는 몇 년 전 나무를 하다가 전기톱에 왼손 엄지를 다쳤고, 미자 씨는 식당에서 일하다가 오른 팔을 다쳤는데 아픈 손을 마음같이 아끼지 못해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 혼자 세월을 낚아야 겨우 단추가 끼워지는 이씨에게 며느리의 성한 왼손이 있고, 기꺼이 미자 씨의 오른팔이 되어 주는 시어머니가 있어 한 해 한 해를 매듭짓고 또 푸는 가 보다. 아버지를 쏘옥 빼 닮은 강호는 할머니가 넝쿨손으로 막아 키워 낸 마냥 순하고 여린 것이고, 엄마에게 강호는 서둘러 떠난 아빠의 못 다 준 사랑이 눈물앙금 되어 한 뼘씩 자라는 결 고운 한 그루 나무다. 강호는 요리사가 꿈이란다. “카레와 제육볶음도 곧 잘한다”며 말수 적은 미자 씨가 얼른 거드는 것을 보니 솜씨가 제법인가 보다.

강호가 버스 정류장 까지는 한참 걸어야 하는데 아침마다 가까이 사는 원호엄마가 태워줘서 “참 고맙다”며 등굣길을 돕는 이웃들을 일일이 꼽아가며 이름을 불러주시는 할머니.

얼마 전까지 동네전화번호도 다 외웠는데 지금은 문지방만 넘어도 잊어버리니, 고마운 인사 행여 놓칠까 이참에 하고 싶으신 게다. 무엇보다 “고부간에 너무 장하다 격려해 준 거 힘이 된다”는 할머니. 강호가 곧게 자라 사랑의 빚을 갚고, 할머니와 어머니를 흐뭇하게 하는 아들로 자랐으면 좋겠단다. /이윤미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