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사연, “올해는 봄이 우리네 인생살이만큼 힘겹게 오는 것 같다”는 그 말이 딱 맞다 싶다. 봄의 문턱으로 들어선다는 춘분도 지났는데 정작 봄의 발걸음은 무겁고 더디다.
봄을 시샘이라도 하는 걸까, 걸핏하면 눈과 비가 쏟아진다. 덕분에 요즘 농부들은 걱정이다. 본디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고 하던데, 분주한 농부의 마음을 몰라주는 하늘이 참 무심도 하다.
지난 17일 만난 부지런한 농부들은 모처럼 날씨가 푹해진 틈을 놓치지 않고 한해 농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밭에서는 3월 초에 폭설이 내려 때를 놓친 농부들이 부랴부랴 감자를 심느라 바빴다.
박정숙(78, 우강 송산리)씨도 괭이를 들고 텃밭에 나왔다. 또 비가 온다고 하니 그 전에 미뤄뒀던 보리감자를 심을 참이다. 박 씨의 밭은 텃밭치고는 제법 넓어 한 쪽에는 마늘을 심고 한 쪽에는 감자를 심는다. 한 켠에는 지난 가을 김장할 때 심어 놓은 시금치가 여태 파릇파릇하다.
“진작 심었어야 했는데 비가 오고 눈이 쌓이니까 밭을 일굴 수가 있어야지. 농사는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내가 하고 싶은대로 못해.
수확한 마늘이며 감자는 아들 셋에게 나눠주고 남는 건은 내다 판다.
채운들판에서 만난 윤기태(75, 고대 진관1리) 씨도 아들 윤석우(48) 씨와 함께 감자를 심고 있었다.
“2주정도 늦었어. 늦게 심은 만큼 늦게 출하해야 하니까 가격이 그만큼 떨어지겠지. 논에는 아직 볏짚도 못 걷었어. 날이 궂어서 논에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 계속 비가 오니까 정말 어려워.”
과수농가가 많은 아찬리 일대 농민들은 사과나무 가지치기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순성 중방리에서 과수원을 하는 맹은섭(광명농장) 씨는 집일을 마치고 아찬리 과수원으로 일을 나왔다.
“원래 12월에서 1월 사이에 가지치기를 다 끝냈어야 하는데 좀 늦었죠. 겨울에 날씨가 안 좋아서 대부분 일이 조금씩 밀렸어요. 변덕스런 날씨 덕분에 바빠졌죠.”
봄철 새 순이 돋기 전 튼튼한 나무로 자라게 하기 위한 가지치기는 안정적인 개화와 착과를 유도하고 고품질의 과실생산을 위한 작업이다.
“가지가 너무 많으면 사과가 크고 튼실하게 안 열려요. 적당량의 사과가 열려 튼실하게 자라게 해주기 위해서 가지를 쳐내는 거예요. 그늘이 지는 것도 막아주고, 통풍도 잘 되서 빨갛고 맛 좋은 사과가 열리죠.”
사과밭을 돌아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한 농부는 논에서 물꼬를 트고 있었다. 그동안 내린 눈이 녹고 또 비가 내려 논에는 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모내기에 앞 서 논을 갈고 거름도 줘야 하는데 논이 질어 기계가 들어갈 수 없게 된 것. 마음이 분주한 농부는 삽 한 자루를 들고 논으로 나와 물길을 내고 있었다.
그 옆 밭에서는 밭일을 하다 잠시 숨을 고르는 농민들이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거름을 뿌려놓은 밭이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기에 무엇을 심었냐고 물었더니, 그냥 잡풀들이란다. 그 중에서도 봄나물의 대표 격인 냉이가 잔뜩 자라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저녁에 냉이 국을 끓여 먹을 심상으로 냉이를 캐 다듬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냉이나 쑥도 마트에 가서 돈 주고 사먹지만 시골에서는 조금만 부지런하면 죄다 먹을 거지. 이 것 좀 보소, 이게 다 냉이여.”
냉이 하나를 집어 들자 향긋한 봄 냄새가 물씬 풍긴다.
건너편 밭주인인 임수정(71) 씨는 새로 돋은 밭에서 돌을 고르던 참이었다.
“올해 농사지어먹기 골치 아프게 됐어. 예전하고 일기가 많이 달라졌어. 비도 적당히 와야 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눈이 오니. 논일도 하나도 못하고 밭도 이제야 고르기 시작하니 원.”
3월 들어 지금까지 비가 온 날만 12일. 궂은 날씨 탓에 2~3주씩 늦어진 농사일에 농민들은 애를 태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