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에 사는 중국교포 2세 쌍동이 자매

우리, 대호지 이웃마을로 시집온 지 6년 됐어요

대호지면김화춘·김춘화

이젠 모두 두아이의 엄마. 언니는 사성리, 동생은 도이리에 살아

국경보다 넘기 어려운 문화장벽 넘으며 어느날 우리의 이웃이 된 여성들

지금은 모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김화춘(28세)·김춘화(28세)씨 자매. 중국교포 2세로 예쁜 쌍동이인 그들이 대호지면으로 함께 시집을 온 지도 6년이 지났다. 동생보다 1분 먼저 세상에 나와 언니가 된 김화춘씨는 사성리로, 동생 김춘화씨는 도이리로 신방을 차려왔다.

당시 최무재 전 농촌지도소장의 주례로 면 복지회관에서 열린 두쌍의 합동결혼식은 대호지면내를 온통 왁자하게 했었다. 아니 면내가 왁자해진 것은 그 훨씬 전부터였다.

사성리 조경철(38세)씨가 중국처녀와 맞선을 보기 위해 MBC 여론광장에 출연했을 때, 그가 ‘테레비에 나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화제였다. 조경철씨는 사성리 ‘스타’가 되었다.

조경철씨와 김화춘씨의 성공적인 만남은 곧 조씨가 이웃마을에 살면서 눈여겨 보아둔 남문선(35세)씨와 동생 김춘화씨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이왕이면 한국사람과 결혼해 살기를 바랬던 부모님의 뜻대로, 허나 서로 너무 외롭지 않도록 하기 위한 거였다.

요사이 농사일이 너무 바빠서 자매는 이웃동네인데도 만날 겨를이 없다. 할 수 없이 바쁘다는 집을 불쑥 찾아가 언니 따로, 동생 따로 만났다. 도이리와 사성리는 말이 이웃이지 꽤 멀었다. 사성리가 워낙 기다란 마을인데다 언니네 집은 사성리1구 끝자락인 산위에 오두마니 얹혀 있었다.

농사일에, 시부모 봉양에, 아이들 돌보기에 바쁘기만 할 그들일텐데 아직도 얼굴은 고운 그대로였다.

사성리 언니는 추워지기 전에 조그맣게 지은 별채에 보일러를 까느라고 공사중이었고, 도이리 동생은 손님들이 막 다녀가셨다고 치우는 중이었다.

“이젠 한국말 잘해요. 심양에 살 때 부모님들이야 한국말 하셨지만 우린 안썼거든요. 거꾸로 이제는 중국말 잊어버리겠어요.”

북한 억양이 섞인 높은 목소리로 귀염성 있는 춘화씨가 말했다.

도시인 심양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자유를 누렸던 그녀들은 시부모님 모시고, 도시도 아닌 농촌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한국을 배워가며 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엔 좀 실망스럽기도 했죠. 하지만 인젠 괜찮아요. 적응도 됐고요.”

윤동(6세)·윤정(4세) 남매를 둔 춘화씨는 남편이 하는대로 남편과 논일을 할 때 즐겁다고 한다.

‘김치를 몇번 담았는데 가족들이 왜 안먹는지 몰라요’ 투정하는 춘화씨가 붙임성있어 보인다. 한국요리를 제대로 배우는 게 춘화씨의 숙제다.

언니 화춘씨는 더 바빴다. 논일, 밭일에 가축도 돌보아야 한다. 시멘트를 개기 위해 쌓아 놓은 젖은 모래더미에서 개구장이 항기(6세)·항선(4세) 형제가 흙투성이가 되어 놀고 있었다.

언니다운 조신함이 있는 화춘씨는 집이 너무 외진 곳에 있어 면소재지에 나가기도 어렵고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아야 할 아이들을 적적한 집에만 있게 하는 게 저으기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사성리 1구 끝마을은 마치 방치된 곳처럼 쓸쓸해 보이고 길도 꼬불꼬불 꽤나 길었다. 큰아이 항기는 끝내 카메라 앞에 서려 들지 않았다.

하지만 늘상 이렇게 바쁜 것만은 아니다. 농한기에는 남편들의 도움으로 읍내에 나가 보기도 한다. 지난 해에는 가정복지회관에서 열린 강좌에서 생활양재를 배워 옷도 만들어 보았다.

시골 농촌에서 깎듯이 시부모를 모시며 고된 농사일을 해가며 잡음없이 순하게 살아가고 있는 중국 색시들. 도시와 농촌의 차이, 더구나 가사노동의 많은 부분을 남자가 책임지는 탈가부장적인 중국사회와 그렇지 않은 한국사회의 차이를 피부로 느끼면서 순하게 적응해가며 사는 그녀들이 조금은 고맙고 조금은 안쓰럽다. 우리사회에 살아가는 모든 여성에 대해 그렇듯이 왠지 콧잔등이 찡하다. 당진에만도 시집온 중국여성이 서른명쯤 된단다.

적응해가고 노력하는 그녀들 만큼 그들의 가족도, 그들의 이웃인 우리도 그녀들의 말 못하는 소망에 귀기울이고 도닥여 주어야 하리라.

김태숙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