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탁 할머니의 쓸쓸한 가을
“미주알 고주알 말 걸을데도 없다우”
춥거나 누추한 것 보다도 몸이 아픈 것 보다도
견디기 힘든 건 외롭고 쓸쓸한 심사였다.
어느날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그만인 것을...
할머니는 올 추석에도 툇마루에 나와 감나무를
바라볼 것이다. 이제는 밥공기만한 돋보기로
성경책을 보는 일도 너무 힘들다.
당진읍에 혼자 사시는 손석희(76세) 할머니 집을 찾아 나섰다. 빈손으로 가기가 미안해 만두집에서 만두 1인분을 샀다. 한참을 찾아다니다 할머니를 만난 것을 골목끝에 있는 감나무집에서였다.
집주인은 큰 도시로 떠나고 안채와 바깥채 모두 사람들이 세들어 살고 있다. 손석희 할머니가 사는 곳은 그중 바깥채다. 작은 방 하나, 부엌 하나가 있다. 할머니는 낯선 방문객을 경계하기는 사뭇 반가워하며 툇마루에 앉기를 청하셨다.
나이 일흔하고도 여섯이지만 아직 정정해 보여서 다행히었다. 총총히 부엌으로 가시더니 끓여서 식힌 보리차로 한 잔 내다 권하신다. 방금 이웃 이웃에 사는 할머니들이 다녀가셨지만 젊은 사람 만난 것이 여간 반가운 게 아닌 듯 싶다. 외진 곳에, 나드는 이웃도 없이 지내고 있었다면 처량해 보였을텐데 할머니 사시는 모습이 퍽이나 마음이 놓였다.
만두를 하나씩 입에 넣으며 할머니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애들 있수? 보기엔 꼭 아가씨 같구먼.”
“할머닌 흰머리가 멋있네요. 아직 건강해 보여서 참 다행이예요.”
말해놓고 보니 할머니는 보청기를 하고 계셨다. 치아에 해넣은 보철도 앞의 부분이 이빨과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할머니의 두눈도 백내장 때문에 수술한 눈이라고 했다.
“아직은 그냥 걸을 만혀. 죽을 때까지 궂은 꼴 안뵈고 넘헌티 폐나 끼치지 말아야 헐틴디. 너무 오래 살었어.”
앞으로 30~40년? 그때는 우리도 저렇게 늙어있을텐데...
눈은 흐려지고, 이는 빠지고, 소화는 안되고, 걸음걷기가 힘들고. 살아있는 게 꼭 남한테 짐되는 것 같은 때가... 우리에게도 올 터인데...
게다가 등비빌 영감도 없고, 슬하에 자식 하나 남기지 못한 할머니는 가끔씩 지독히도 서러울 때가 있다.
어려서부터 귀가 잘 안들렸던 할머니는 2년 전에야 간신히 보청기를 해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금새 고장이 났는지 다시 통 들리지 않더라는 것. 그런 채로 한참을 견디다가 읍사무소 사회복지사 조금영씨의 도움으로 새 보청기를 해넣었다. 다시 소리를 듣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곧 낙담이 되었다. 세상의 소리를 들으며 들떠서 집으로 돌아올 때, 돌아와 방문을 열 때, 자신의 옆에 아무도 없음을 깨닫고 할머니는 그날밤 베갯잇을 적시며 울었다. 이처럼 즐거울 때도 미주알 고주알 일러바칠 누군가가 자신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춥거나 누추한 것 보다도, 몸이 아픈 것 보다도 견디기 힘든 건 외롭고 쓸쓸한 심사였다. ‘이렇게 있다가 어느날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그만인 것을’.
그런 할머니에게 유일한 의지처가 되는 것은 교회였다. 사람들 속에 섞여서 편안히 있다 올 수 있는 곳이 교회였다.
“그래도 난 아직 하느님 앞에 부끄러운 걸. 내가 지은 죄가 얼마나 많으면 이렇게 살겠나 생각하면...”
하지만 할머니는 죄가 없어 보였다. 아이를 못 낳아 결혼생활을 포기한 것이 죄가 될 순 없었다. 할머니 때의 생각대로 남의 집 손을 끊어 놓을 순 없었으니까.
실패한 딸 때문에 죽어도 편안히 눈감지 못하겠다는 친정어머니의 성화로 재가한 곳이 5남매나 있는 집인 줄도 몰랐다. 그 아이들 다 여의었건만 영감이 세상을 뜨고 나니 거기마저도 있을 처지가 못되었다.
할머니는 10년전 그렇게 훌훌 고향동네로 돌아왔다. 아는 사람들도 있고, 낯익기도 한 곳으로 돌아온 것은 잘한 일이었다.
작년에는 적십자에서 도배와 장판을 싹 갈아주었다. 사회복지사의 도움도 받는다. 요사이는 한달에 한번 김치를 담아다가 갖다주는 자원봉사자도 있다. 그리고 매달 한번 근처 신성아파트 노인정에서 음식도 대접해준다.
“여름에는 그 더운디 젊은 부인들이 음식 장만하는거 보니까 참 딱하고 고맙더라”고 할머니는 도리어 그분들 걱정이다.
“이렇게 늙고 의지할 데 없으니까 사람노릇도 제대로 못혀.”
할머니는 이래저래 주위의 작은 도움이 고맙긴 하면서도 자신이 정작 아무에게도 베풀 수 없다는 게 속이 상한다.
“할머닌 죄가 많으신 게 아니네요. 오히려 언젠가 남한테 베푼 덕이 있어서 지금 이렇게 어려울 때 도움을 받고 계신 거 같은데요? 그러니 미안해 하실 거 하나 없어요.”
이런 말이 위안이 될지 모른다.
할머니는 올 추석에도 툇마루에 나와 감나무를 바라볼 것이다. 이제는 밥공기만한 돋보기로 성경책을 들여다 보는 일도 너무 힘들다.
김태숙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