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김대경

기지시감리교회 담임목사

현대는 통신수단의 눈부신 발전으로 옛날의 훌륭한 통신수단이었던 편지는 이제 구식으로 밀려났다. 전화 한통이면 국내건 외국이건 간단히 용무를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편지를 쓰는 일이 거의 없다. 집배원을 통해 전달되는 봉투나 그 속의 내용들은 모두 컴퓨터 활자화 된 공문 같은 글뿐, 연필이나 볼펜으로 쓴 정이 서려있는 편지글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옛날의 다정다감했던 편지글이 그리워진다. 사실 전화로나 만나서 상대방에게 의사전달을 할 때 할 수 없는 감정의 표현들을 편지로는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전달자의 속마음을 보다 구체적으로, 그리고 더 깊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편지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편지글과는 멀어져가는 요즘 세태가 무언가 삭막함을 느끼게 한다. 멀리 떨어진 가족이나 친구에게 받은 편지에서 “친애하는... 에게”, “사랑하는... 에게”란 서두와 문안인사로 시작되는 편지글에서 인간의 끈끈한 정과 훈훈한 인간애를 느끼지 않았던가. 지금도 어느 엄마는 자녀의 도시락 속에 “맛있게 먹어라. 사랑하는 엄마가”라는 짧은 메세지 쪽지를 넣어준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지금도 나는 옛날 군시절에 편지 한통으로 큰 덕을 본 일을 기억하고 있다. 병과가 적성에 잘 맞지 않아 군생활이 무척 힘들었을 때 마침 육군병원에 입원해서 정양생활을 하던 중 인사담당 선임하사에게 나의 사정과 형편을 진지하게 써서 편지글로 보냈다. 그런데 크게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나의 편지내용에 마음이 갔던지 퇴원과 더불어 적성에 맞는 좋은 자리로 보직명령을 내려준 것이다. 그 덕분으로 나머지의 병영생활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한번은 제주도 여행 중 대학에 들어가 갓 신입생이 된 아들녀석에게 그림엽서에 간단한 글귀를 넣어 보냈다. 그 내용은 대충 이렇다. “남국의 분위기 물씬 풍기는 이곳 제주도에 와보니 몇번 와 본 곳이지만 새로운 느낌을 주는구나. 너도 언젠가는 이곳에 올 기회가 있을텐데 그때 너도 지금 나와 같은 기분이 되겠지...” 학교에 날아온 이 엽서를 전달해주기 위해 엽서를 들고 집에 가져갔다가 자기 엄마에게 엽서를 보여준 여자친구가 훗날에 우리아이와 결혼하여 자부가 되었다. 그때 그녀의 엄마는 그 엽서를 보고 “세상에 이렇게 자상한 아빠도 있구나. 그 아들도 역시 좋은 아들이겠구나”라고 생각하였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편지의 위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 바울사도는 이방지역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가 세워지면 그 교회 또는 성도들에게 꼭 편지를 써서 보냈다. 이 편지들은 소위 바울서신으로 불려지며 지금 신약성서에 10여편의 책으로 들어있다.

이 편지에는 당시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구원의 여망이 구구절절에 배어있어 읽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그러면서 바울사도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고후3:3)라고 말씀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품성과 인격과 정신을 세상에 전하는 편지로서의 사명을 다 해야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