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문화제 /Sangnok Culture Festival

2천년맞이 제23회 상록문화제

환호와 아쉬움 속에 막내려

서기 2천년의 문을 열며 천년대를 마감하는 제23회 상록문화제가 심훈 추모제를 비롯해 4일간의 막을 내렸다. 행사 초반 이틀을 압도해버린 비로 곳곳마다 쓰러진 벼에 대한 걱정을 마음 한쪽에 안고 문화제는 진행되었다.

예고됐던대로 이번 행사는 두 천년의 아픔과 희망을 담은 조형물 ‘폐선’이 문화제의 의미를 상징하는 가운데 최근 수년간 서서히 시도된 문화제의 성격변화를 집중적으로 담아낸 결정판이었다.

심훈의 상록수 정신에 대한 적극적인 재해석 아래 창의적인 시민문화를 표방하며 거리축제 어울마당이 대대적으로 확대되었다. 줄타기, 관악합주, 째즈피아노, 최백호 공연이 거리에서 과감하게 이루어져 색다르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환호를 받았다. 소장 예술품 전시판매가 비 때문에 차질을 빚었으나 사진전시회 등 일부 행사는 비 속에서 강행되었다. 올해 처음 시도된 사진 찍어주기와 함께 도자기 시연, 인물스케치, 가훈쓰기 등은 여전히 인기였다.

야외에서 이루어져야 할 학생 창작행사 일부가 비 때문에 실내에서 치러지기도 했다. 노인잔치와 가족노래자랑은 올해 처음 치러졌다는 서툰 점에도 불구하고 화목한 분위기를 자아내 발전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이다.

또 3년째 접어든 에 수준 높은 많은 작품들이 응모해 그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번 문화제는 민속행사 대부분을 과감하게 기지시줄다리기로 이관·생략하고, 현대적인 시민문화제쪽으로 성큼 다가서 변화를 실감하게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갑작스런 문화제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해 거부감과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본행사 첫째날

♣가벼워져야 건너는 인생도 외줄타기

- 빗속에 강행 ‘줄타기 시연’

어울마당의 길놀이와 줄타기 시연은 비가 퍼붓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17세의 가냘픈 소년이 빗속에서 버선발로 미끄러운 줄을 탈 때 저마다 우산을 하나씩 받쳐든 주민 관객들은 아슬아슬함에 마음을 졸였다. 우리 인생도 저렇게 가벼워야 잘 건널 수 있는 외줄과 같은 것일까?

쏟아지는 비에다 왠지 서글퍼지는 심사. 저 외줄 하나를 타기 위해 소년은 독한 수련을 거쳤을텐데, 줄 위에서 농 섞어 던지는 웃음 속에는 필시 선조들로부터 피에 섞여 내려온 ‘한’이 담겼을텐데.

♣대중성 위한 파격적인 시도 - 음악의 밤

당진음악동호회(회장 최현준)에서 주관한 ‘음악의 밤’ 행사 「베드신보기」가 군민회관에서 펼쳐졌다. 베이스 기타와 드럼, 신디사이저, 보컬, 기타의 약칭인 「베드신보기」. 하루종일 내린 비로 관람석은 곳곳에 빈자리가 보였지만 열기만은 그 어느 행사 못지 않게 뜨거웠다.

이번 공연에는 지역의 락그룹인 ‘아미산’과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즈그룹 ‘모닝’이 출연하여 화려한 연주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청중들을 매료시켰다.

공연 중간에는 풍물패 ‘꾼’의 공연도 함께 해서 동서양 음악의 묘한 어우러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비(?)입은 사진작품들 - 사진전시회

학동인회의 미술전시회가 '갤러리 전람회의 그림'에서 전시된 것을 비롯해 사진·서예전이 시작되었다.

사진은 예정대로 백악관 앞 어울마당에 전시하느라 각 작품마다 투명우비(?)를 입혀 이색적이었다.

심훈 육필원고와 서예전시회는 막 문을 연 감리교신협(전 충청은행자리 지하) 건물에서 열렸다.

■본행사 둘째날

♣김병로씨 심훈문학상에 - 개막행사

개막행사는 2일 오전10시 비가 오는 가운데 군민회관에서 열렸다.

이 자리의 하일라이트는 역시 심훈문학상 당선작 시상. 올해 총 17편의 응모작 중 마지막 결심까지 다른 작품과 경쟁을 벌인 의 작가 김병로(40세)씨가 부인과 두자녀, 가족들과 참석해 상금 5백만원과 함께 영예로운 상을 받았다.

♣'고장사랑', '우리가족' 주제 - 학생글짓기

당진교육청에서 주관한 학생글짓기대회. 아침부터 내린 비로 장소를 호서중 강당으로 옮겼다.

글감은 중·고생의 경우 ‘고장사랑’, 초등학생은 ‘우리집 가족’으로 정했다. 강당 마루에 옹기종기 자리를 펴고 앉은 어린 학생들은 연습장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기도 하고 직접 원고지에 써내려가기도 하면서 글솜씨를 발휘했다.

♣대상에 호서고 최영록군 - 학생서예잔치

오전10시 당진중학교 체육관에서는 당진서예인협회(회장 허영상) 주관으로 학생서예대회가 열렸다. 이날 대회에는 군내 초·중·고등학교에서 학생 90여명이 참가했다.

주최측에서는 수상자 선정에 좀더 심사숙고하기 위해 현장에서 시상했던 전과 달리 대회 후 학교로 수상결과를 통보해주기로 했다. 심사결과 대상은 호서고등학교 1학년 최영록 학생이 차지했다.

♣학생미술대회 5백여명 참가

학동인회(회장 박기술)가 주관한 학생미술대회는 5백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호서고등학교 체육관에서 펼쳐졌다.

특히 풍경화의 경우 비로 인해 실내에서 작업하느라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체육관 출입구 주변에 모여 문밖으로 보이는 학교 풍경을 그림에 담는 등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한복바르게입기 34명 경선

당진군 새마을부녀회(회장 이영희) 주관으로 오전11시 당진군민회관에서 열린 한복바르게입기대회에는 각 읍·면에서 여성 34명이 출연해 맵시를 겨뤘다.

올해 10회째로 상록문화제의 장수 프로그램이기도 한 이 행사는 현대사회에서 점차 잊혀져가는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우리 고유의 예절을 교육하는 산교육장으로서의 역할도 함께 해왔다.

권부선 한국전례원 대전지원 부원장과 당진정보고 윤선미·당진고 정경혜 교사가 심사를 맡은 가운데 이날 가장 맵시있고 예절과 태도·격식을 잘 갖춰 한복의 우아함을 한껏 발휘한 이정휘(당진읍 계성리)씨가 1등상인 꽃가마상을 수상했다.

♣영화음악 '대부'를 거리에서 - 관악합주

어울마당의 관악합주는 다행히 날씨가 맑게 갠 가운데 열렸다.

대전에서 활동중인 웅진브라스밴드와 서해윈드앙상블의 당진단원들로 구성된 악단은 이정호씨의 지휘아래 영화음악 '대부'와 '모정', '마이웨이',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 명곡들을 선사했다. 단원 중에는 당진중학교 윤동학군도 끼어 있었다.

클라리넷과 플롯, 섹스폰 등 관악기로 품위 넘치는 선율이 울려 퍼졌다.

♣가족의 따뜻한 모습 보여 - 가족노래자랑

올해 상록문화제 행사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추억만들기 제1회 가족노래자랑」에는 10팀의 가족이 참가하여 가족간의 화목과 함께 뛰어난 노래실력을 선보였다.

이민선 새마을지회 사무국장이 사회를 보는 가운데 첫번째 팀으로 부부와 어린 두아들이 참가한 윤성수씨 가족이 ‘사랑으로’를 열창해 박수를 받았다. 딸 둘과 함께 출전한 이정자씨는 처음 반주를 못맞추어 애를 먹다가 나중에 음을 맞추면서 ‘저 꽃속에 찬란한 빛이’를 열창해 대기만성형의 노래실력을 선보였다. 고지훈씨 가족은 마침 이날이 큰아들 생일이어서 더 뜻깊은 자리였다.

이날 행사의 입상에는 ‘종이접기’를 부른 서정규씨 가족이 영예의 금상을 차지했으며, 출전한 가족 모두에게 각종 상장과 푸짐한 상품이 전달됐다.

♣당진고로 장소 옮겨 개최 - 풍물경연대회

당진군 국악협회에서 주관한 풍물대회가 당진고등학교 강당에서 펼쳐졌다.

장소가 협소하여 실력을 모두 발휘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참가팀 모두 평소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선보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틀간 대회를 치를 예정이었으나 문화제 기간 이틀동안 내린 비로 많은 지역에서 벼가 도복되어 일손을 필요로 하는 바람에 부득이 하루만 실시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고대농협 풍물팀이 장원을 차지했으며, 우강농협팀이 우정상을, 면천면팀이 화합상을 수상했다.

■본행사 셋째날

♣주부 문인 사색의 시간 가져 - 주부백일장

상록문화제 마지막날인 3일 오전10시 우강 제일가든 야외에서 열린 주부백일장에는 평소 가정일과 농사일 틈틈이 글솜씨를 닦아온 주부문인 24명이 참가해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합덕청년연합회(회장 한광희) 주최로 5회째 치러진 이날 대회는 전날 궂었던 날씨가 활짝 개어 참가자 모두에게 축복이었으나 바쁜 농번기에다 일요일이어서인지 97년 대회 때보다 참가자가 크게 줄어 아쉬움을 남겼다.

김규환(당진고 교장) 시인이 심사를 맡은 이날 백일장에서는 합덕읍 운산리 장동화 주부(시부문)가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장씨는 첫 대회 때부터 5회 연속 빠짐없이 참가한 주부로 알려졌다.

♣시조경창 실력 선뵈 - 경노위안잔치

당진군청년연합회(회장 정봉근)에서 주관한 제5회 경노위안잔치가 1백여명의 노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일예식장에서 열렸다.

행사를 주관한 청년연합회 회원들은 할아버지·할머니들이 행여 계단을 오르내릴 때 다칠까 부축을 하는 등 공손하면서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할아버지·할머니들은 푸짐한 점심식사와 함께 시조경창과 노래자랑도 펼쳤다.

♣피아노 선율 도시에 물결 - 째즈피아노 연주

일요일 도심거리에 물결치는 유충식씨의 피아노 선율에 사람들은 잠시 넋을 놓았다.

골목길을 가린 응달, 그러나 거리 한쪽에 놓인 작은 무대에는 조명처럼 햇살이 내리쬐었다. 어울마당을 알리는 긴 깃발들이 가을바람을 싣고 흩어지며 째즈피아노의 불규칙하고 싱싱한 음율을 거리거리에 뿌려댔다.

대중가요 '그 겨울의 찻집'과 '초우', '예스터데이', '썬 플라워',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심지어 '목포의 눈물'에 이르기까지 감미롭고 열정적인 피아노 연주가 이어졌다.

♣아줌마 '오빠부대' 열성 또 열성 - 최백호 콘서트

한때 낭만의 대명사였던 허스키 보이스 최백호. 가수 최백호가 통기타를 들고 어울마당 거리에 나서자 '오빠부대' 아줌마들이 열광했다. 반백이 된 가수와 초로의 오빠부대 아줌마들. 이 또한 아름답고 정겨운 풍경이었다.

'가을에 떠나지 말아요', '영일만 친구', '낭만에 대하여'... 그러다 '앵두나무 우물가에~'를 부를 땐 할머니들까지 가세해 박수치고 어깨 들썩이고 신명이 났다.

거리를 꽉 매운 최백호 공연은 째즈피아노와 함께 이날의 압권이었다.

♣도자기·사진아저씨 ‘내 코 어딨나’

♣천상병 시집 품절 - 어울마당

70년대 가장 촉망받는 시인이요, 평론가였던 천상병은 동백림사건에 연루, 고문과 행방불명 끝에 전혀 딴 사람이 되어 정신병원에 나타난다. 그는 세수조차 제 손으로 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라는 '귀천' 같은 시를 다시 썼다. 미망인 목순옥 여사는 3일내내 거리좌판에 천 시인의 시집들과 자신의 문집을 내놓았다. 품절이었다.

어울마당에서는 도자기 만들기와 사진찍어주기가 너무 인기가 좋아서 비명이었다. 인물스케치와 가훈써주기도 줄을 늘어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 소장품 전시판매는 초반 이틀간 쏟아진 비로 차질을 빚었다.

♣동강 사진전시회 - 당진환경운동연합

당진환경운동연합(공동의장 김대희·장덕기·김순동)에서 주관한 동강 사진전시회가 상록문화제 기간 동안 군민회관과 어울마당 부근에서 열렸다.

굽이굽이 이어진 동강의 아름다운 모습과 각종 동·식물의 모습을 생동감있는 사진으로 담아낸 이번 전시회는 많은 주민들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환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이다.

♣타 지역에 상록문화제 알려 - 무선통신

아마추어 무선회(회장 심영준)에서는 문화제 기간 중 꼬박 이틀간을 군민회관 앞에 천막을 치고 무선통신 홍보와 함께 행사를 타 지역에 알리는데 최선을 다했다. 행사 첫날부터 비가 쏟아지는데도 천막안에 난로를 갖다놓고 교대로 밤을 새우며 강행군을 했다.

행사기간 회원들은 전국의 동호인 1,500∼2,000명과 교신을 하며 당진홍보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직장인들 ‘거기서 쐬주나 한잔’ - 향토야시장

야시장은 문화제의 '취지와 목적'을 논할 때마다 늘 떠오르는 논란거리. 대부분 낮 동안에 이루어지는 행사라 직장인들은 분위기조차 접할 기회가 없어 그나마 야시장에서 동네잔치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북적북적대는 발길 속에 어쩌다 한동안 못보던 지인을 만나는 행운을 잡을 수도 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기분좋게 쐬주나 한잔... 이날만은 스트레스 털면서 술을 마실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 초대형 외지 야시장이 가지가지 사행성 오락물을 끼고 들어오면서 문화제 의미 퇴색, 사행심 조장 등 말이 많다. 하지만 아이들 주머니 단속 잘하고 어른들도 괜히 한탕 하고 싶은 마음만 자제한다면 1년에 한번 눈요기감으로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