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호의숙은 조선 말 충청도 해미현 서면 도촌(현재 대호지면 도이리 일원)에 설립되어 16세기 이후 세거하는 충장공 남이흥 장군의 후손들이 교육을 받던 곳이다. 도호의숙은 문중 후손들을 가르치는 종숙으로 시작된 후 다른 성씨에게도 개방하여 의숙(공익을 위하여 의연금을 모아 세운 교육 기관)으로 발전했다.
남이흥 장군의 일대기
남이흥 장군은 1624년 중군대장 시절 ‘이괄의 난’을 맞아 4000명의 관군으로 1만2000명의 반란군을 진압하는 공을 세운다. 이로 인해 종일품에 제수됐다.
1627년 삼도부원수 시절 3만6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청나라가 침공한 정묘호란 당시 마지막 전장이던 안주성 싸움에서 3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분투했으나 전세가 밀리자 성문을 열어 적군을 유인하여 보관하던 화약을 터트려 적과 함께 자폭 순절했다.
인조 임금은 순절한 남이흥 장군을 국장으로 장례토록 하고 곤룡포를 벗어 장군의 관 위에 덮어주며 애도했다. 그 때의 곤룡포가 모충관에 보존되어 있다. 우호국이었던 명나라 황제도 남이흥 장군의 애국충절을 기념해 특전을 열기도 했다.
이후 대호지면 도이리에 충장사를 건립해 장군의 애국충절을 기리며 제사토록 해 400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음력 1월21일 12시에 14대 종손을 중심으로 제사를 이어가고 있다.
도호의숙의 역사
남이흥 장군의 큰 아들 두극 공이 어머니를 모시고 도이리에 정착해 후손들의 서당 향교 교육에 치중하다 조선 말 종숙을 개설했다. 충장사에서 500여m 떨어진 곳으로 오늘날 이곳을 강당골이라 부른다. 이곳이 1860년대 초 7대손 영장 남석구 선생과 8대손 승지 남보영 선생, 7대손 유학자 남계옥 선생이 설치한 자손 교육기관이다.
1871년 고종 신미무과에 급제한 청파 남규희 선생은 벼슬길을 단념하고 후진 양성을 위해 30년간 교수하며 많은 후학과 여러 명의 등과자를 배출했다. 1901년 종숙을 도호의숙으로 변경한 후 1902년 청파 선생은 타계했다.
고종 기축무과에 급제한 동생 백파 남택희 선생이 형의 뒤를 이어 의숙운영과 발전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도호의숙은 교육 발전을 위해 외부 교수 초빙을 위해 힘써 존재 유문양 선생과 용암 심원성 선생, 성균관 박사 직암 이철승 선생이 이어 가르쳤다.
소개자당진군문화관광해설사 남기은
참고 문헌극재유고, 해강유집, 선고부군 유사,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명·청사기
남이흥장군 홈페이지www.chungjanggo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