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의 심성이 날로 강퍅해지고, 나약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 갖게 되는 의문이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다. 그 욕망이라는 것이 좋게 말하면 자아실현(自我實現)과 성공이라는 말도 될 것이다. 오늘날 필자의 세대는 물론이고, 후학들도 학교교육을 통하여 거기에 이르는 과정으로써 기술을 배우고 품성을 닦고, 학문을 연구하여 취득한 재화를 통하여 인간의 삶의 편리성에 동참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극대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금전이고, 금전의 많고 적음은 바로 그 사람의 성공을 판단하는 표준이 되었다. 그러한 기성세대의 사회적 현상은 바로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 반성 없이 반영되어, 오늘날 사회적 병리현상처럼 우후죽순 자고나면 신문지상이나 언론에 끔찍한 사건으로 우리에게 경고음을 주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무차별 살해하는 패륜적(悖倫的)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그동안 기성세대가 우리가 살아가야할 사회의 기둥이 될 젊은 세대에게 잘못된 교육을 통하여, 우리 교육이 품성이 올바르지 못한 기술적이고 기계화된 인간만을 양산해 내는 공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우리조상들은 어려서부터 충효(忠孝)교육을 통하여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를 먼저 다하게 하는 인간으로서의 갖춰야할 소양교육을 시켰다. 사회에 나아가서는 장유유서(長幼有序)를 통한 철저한 질서의식과 예의범절을 심어주는 교육을 시켰다. 유교사회의 본받을 점은 바로 한사람의 인생을 통하여 수기치인(修己治人) 바로 자기 몸을 평생 닦아가는 정신, 그런 다음에 남을 다스리는 정신이었다.
얼마나 우리조상들이 자식교육을 시킬 때, 먼저 사람으로서 사람노릇을 할 수 있도록 인성교육(人性敎育)에 철저하였는지를 옛날 서당교과서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빠른 시간 안에 세계 여러 국가 중에서 경제부흥과 문명화된 선진 사회가 올 수 있도록 한 그 밑바탕에는 결코 우연히 아니라 인문적 소양을 갖춘 인간을 길러낸 유교적 인자가 우리 몸에 내재되어있기 때문이 아닌가 필자는 생각해본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할아버지 세대로부터 먼저 인간교육을 철저히 받았기 때문에 오늘날 빠른 시일에 발전된 사회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선진사회의 정점에 올라가기도 전에 우리 사회가 쇠락의 조짐을 보이는 것은 기성세대로서 자식교육의 방향에 대한 새로운 선택의 무거운 책무를 강요받고 있는 기로에 서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옛 부터 “ 길을 잃으면 먼저 온 길로 되돌아 가라”는 말이 있다. 공자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도 있고 연암 박지원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도 있다. 즉, 옛 것을 배워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
오늘날 발달된 인터넷과 미디어의 홍보 속에 우리아이들을 각자 금전적 이익만 좇는 경제동물과 산업화된 전사로만 만들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바른 품성을 길러내는 교육을 오늘날에 접목하여, 예의(禮義)를 알고 하늘의 성정(性情)을 찾아가는 인간으로 길러내는 근본적 변화의 때가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