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에서 80세 며느리가 100세 넘으신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요양원에 가지 않겠다고 보퉁이를 끌어안고 버티는 100세 할머니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자신의 건강이 안 좋아 더 이상 시어머니를 돌볼 수 없어 요양원에 보낼 수밖에 없는 며느리의 애틋한 심정이 전해져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릿한 아픔을 느끼게 했다.
인간이 그토록 소망했던 장수의 꿈이 이루어 졌는데 오래 산다는 것이 과연 축복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내 집에서 건강하게 나이 들기를 소원한다. 또한 자신이 살아온 익숙한 곳에서 낯익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사회구조와 생활양식이 변화하고 핵가족화와 부양주체에 대한 의식의 변화는 내 집에서 나이 들기를 어렵게 하고 있다.
더구나 자식들과 동거하기를 원하지 않는 노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노인 돌봄이 국가의 몫이 되어야 한다는 공론화가 이뤄지고 있다. 질병·고독·가난·무위로 점철된 장수는 축복이 아닌 불행일 수밖에 없다. 핵가족이 대다수인 우리사회에서 노후에 찾아오는 질병은 가족들의 돌봄으로는 감당할 수없는 현실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평균수명 연장이 저 출산과 함께 진행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고 출산율은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노년부양비율 증가 속도도 세계최고 수준이다 .
노년부양비율이란 생산인구대비 65세 이상 노인인구수를 말한다.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기를 위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많이 미흡한 상황이다. 자녀들의 교육에 모든 것을 바친 우리의 어머니·아버지들은 정작 자신들의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다.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노인들은 자녀들에게 자신의 노후를 맡겨야 하는 데 이로 인한 갈등이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부모를 돌보는 일 뿐 아니라 가사와 육아 또한 여성들에게만 전가시킬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어느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맞벌이 부부 아이에겐 국가가 엄마가 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의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래 국가의 발전이 달려 있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가족의 돌봄을 여성들이 전적으로 책임질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혼여성들의 취업률 증가는 기존의 가족 돌봄 문화의 변화를 가져왔다.
예전 어머니들이 가사와 육아 그리고 웃어른 봉양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가족을 위해 뼈가 닳도록 희생하며 돌봄을 책임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돌봄을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국가에서 보육정책과 장기요양서비스, 노인돌봄 서비스 등 어린 자녀와 노인들에 대한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많이 미흡한 상황이다. 당진시 또한 어린이와 노인들에 대한 돌봄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 정책을 수행하는 선에서 복지사업을 시행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어서 자체 특수시책 사업 등은 하기 힘든 상황이다. 하루속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나라 복지 정책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역할을 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