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1월 30일 당진시대 창간호를 발행한 이래 20년 동안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희노애락을 같이 해오며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창간 초기에 당진의 주력산업은 농업이었으나 지금은 현대제철, 동부제철, 동국제강 등 대규모 철강업체들이 입주해 철강산업이 주력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서해대교 개통으로 수도권과의 거리가 1시간 내로 앞 당겨지면서 물류도시, 관광산업 도시로도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당진시승격, 당진항 지정은 당진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한편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보철강 부도로 지역경제가 파탄 났을 뿐 아니라 국가부도 사태로 이어져 국회청문회가 진행되기도 했다.

김현욱 국회의원, 송영진 국회의원, 민종기 군수 등 지역의 지도자들이 줄줄이 구속돼 그들을 선출했던 지역민들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중부권 특정폐기물 처리장, 석문공단 유공입주 반대운동은 지역의 첫 환경운동으로 기록되는 사건이었다. 그동안 당진시대가 현장을 누비며 기록해 온 생생한 역사의 흔적들을 선정해 10대 뉴스에 담았다.

20년간 10대 뉴스

1. 당진시로 승격, 지역발전 계기 마련

2. 서해대교 개통, 수도권과 1시간 대로 거리 앞 당겨져

3. 당진항 지정, 항만도시의 기틀 마련

4. 한보철강 부도,  지역경제 파탄… 국가부도로 이어져

5. 현대제철 입주, 철강산업의 중심도시로 성장

6. 사상 최악의 폭우,  932억 원 피해와 주민 7명 사망

7. 지방자치의 시작,  첫 민선군수 선출

8. 민종기 군수 해외도피 시도, 전국적 망신

9. 김현욱, 송영진 국회의원 구속, 김 의원은 옥중 당선되기도

10. 중부권 특정폐기물 처리장·석문공단 유공입주 반대운동,

지역의 첫 환경운동

1. 당진시승격

2012년 1월 1일부터 당진군이 ‘당진시’로 불리게 됐다. 지난 2012년 6월 29일 ‘충청남도 당진시 도농복합형태의 시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2005년부터 6년여에 걸친 시승격 추진운동이 결실을 맺었다. 당진시승격은 개군(開郡) 이래 117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당진이 농촌지역에서 도시지역으로 이미지가 변화하는 계기가 되면서 발전성장지역이라는 홍보로 대외투자가 늘어나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일었다. 특히 ‘전국 최고 발전지역’으로서 당진을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한편 당진군이 시승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법 위장전입을 했던 사실이 2008년 KBS를 통해 보도되면서 지역사회가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2. 서해대교 개통

2010년 11월 10일 서해대교가 개통돼 수도권과의 거리가 1시간으로 앞 당겨지게 됐다. 이로 인해 서해대교는 당진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했으며 유통·물류산업은 물론 당진의 관광산업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당진항 지정

당진시대와 지역의 항만 전문가들의 문제제기를 시작으로 주민운동으로 확산된 당진항 지정운동은 주민운동의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다.

당진항 지정을 통해서 당진의 브랜드 가치를 높였을 뿐 아니라 항만도시로서 기틀을 마련하고 중부권 물류 거점지역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2000년 9월 범군민추진위원회의 결성하면서 본격화된 당진항 지정운동은 5만여 군민들이 참여한 서명운동과 2001년 12월, 지난해 11월의 두 번에 걸친 대규모 상경 시위 등 범군민운동으로 확산됐다.

당진항 지정과 더불어 도계분쟁이 불거지면서 장기간 공방 끝에 당진군은 평택시와의 권한쟁의 심판 소송에서 승소, 2004년 12월 30일 ‘평택·당진항’ 항명 사용을 내용으로 하는 항만법 시행령 개정안이 공표됐고 6년여 간의 당진항 지정운동의 결실을 맺었다. 한편 당진시대는 당진항 지정 문제와 관련해 당시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 인터뷰를 통해 중앙정부로부터 처음으로 당진항 지정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전달받아 보도하기도 했다.

4. 한보철강 부도

국가경제 전체를 뒤흔들었던 1997년 1월의 한보철강 부도사태는 당진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일주일 사이에 피해액이 960억 원에 육박하는 등 한보 부도의 여파는 협력업체를 넘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지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지역경제는 단숨에 얼어붙었고 관련 업체들을 비롯해 식당 등이 줄지어 문을 닫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 사태는 지역경제가 한보철강에 얼마나 기대어 왔는지를 엿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후 2004년 INI스틸(현대제철)이 한보철강 경영권을 인수했다.

5. 현대제철 가동

한보철강 경영권을 인수한 INI스틸이 당진에 일관제철소를 착공함에 따라 침체됐던 지역경제가 다시 활기를 찾는 계기가 마련됐다. INI스틸은 현대제철(주)로 사명을 변경했고, 이후 관련 산업체가 활발하게 공장을 가동하면서 당진의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한편 현대제철로 인한 환경피해와 주민들의 고통호소도 이어지고 있다. 고로3기 밀실추진 논란, 제철소 석면사문석 사용 등 환경문제가 대두된 바 있으며 노동자 산재 사망사고 등이 잇따르는 것도 현대제철의 문제로 지적된다.

6. 폭우로 7명사망, 932억 피해

1998년 8월 8일부터 9일까지 단 이틀동안 쏟아진 폭우로 당진 전역이 홍수와 침수피해를 겪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하루 평균 349mm의 기록적인 물폭탄으로 인해 당진천 제방이 넘쳐 당진읍 시가지가 물에 잠기고, 산사태까지 일어나 주민 7명이 사망하는 등 최대의 물난리를 겪었다.

당시 당진군이 집계한 피해액은 932억 원으로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몰고 온 사건으로 기록됐다.

사상 최악의 폭우는 한보부도와 IMF 한파로 얼어붙은 당진지역경제를 더욱 침체시킨 원인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7. 첫 민선군수 선출

1995년 6월27일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김낙성 후보가 첫 민선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되면서 실질적인 지방자치시대를 맞게 됐다. 30여 년 만에 부활된 지방자치제도는 민주주의와 자치의식을 향상시키고 자치단체의 행정서비스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반면 민선단체장이 지역발전을 위한 창의적 기획과 과감한 사업추진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선거를 의식한 경조사 챙기기와 잦은 민간단체 행사 참석 등은 민선 자치단체장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8. 전국 이슈된 현직 군수의 비리와 해외 도피시도

2010년 3월 민종기 전 군수는 비리 파문에 이어 위조 여권을 이용한 해외 도피까지 시도하다 검찰에 검거되면서 전국적인 망신을 샀다. 민 군수는 2005부터 2008년까지 100억 원대의 관급공사를 지역 내 특정업체에 몰아주는 대가로 건축비 3억 원 상당의 별장을 뇌물로 받는 등 비리를 저질렀다. 또한 검거과정에서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도주하면서 일부 언론들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9. 김현욱,  송영진 의원 구속 파문

자민련 당진지구당 위원장이었던 김현욱 전 국회의원이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위반혐의로 1996년 1월 구속됐다. 하지만 김 의원은 옥중 당선됐고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는 인수위원, MB정부에서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맡는 등 재기에 성공했다.

한편 2004년 1월에는 현직에 있던 송영진 국회의원이 대우건설에서 2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지역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2008년 가석방된 송 의원은 중국 한 호텔에서 사기도박단과 손을 잡고 피해자를 감금·협박한 혐의로 수감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다시 한 번 지역에 충격을 던졌다.

10. 중부권 특정폐기물 처리장과 석문공단 유공입주 반대 투쟁

중부권 특정폐기물 처리장 반대투쟁은 당진의 현대사에 중요한 사건이다. 이 투쟁은 당진에서 벌어진 첫 환경운동으로 정부의 환경정책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1994년 4월  석문공단에 중부권특정폐기물 처리장 설치를 반대하는 4000여 명의 주민들이 집결해 사상 초유의 군민결의대회를 열었다. 이후 환경처 박윤흔 장관과 면담을 거쳐 특정폐기물 처리장 당진설치계획을 철회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유공입주 반대투쟁은 중부권 특정폐기물처리장 반대투쟁과 더불어 당진의 대표적인 시민참여 환경운동으로 손꼽히고 있다.

1996년 5월 석유화학단지(유공) 입주 반대투쟁위원회가 결성되면서 공해로부터 지역을 지키겠다는 주민들의 의지를 모아 자본과 권력에 대항했으며 주민들의 환경의식을 고취해 당진환경운동연합이 태동하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