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에서 32번 국도를 따라 서산 방향으로 약4~5km쯤 달리다 정미면 소재지를 향해 500m쯤 가다보면 왼편에 ‘솔바람길·봉화산’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길을 따라 500m쯤 가노라면 검붉은 왕솔밭 밑에 ‘솔바람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솔바람길은 입구에서부터 자연의 아름다움과 우리 인간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혹은 신비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길 양옆에는 수 백 년 묵은 아름드리 노송들이 반기고 이름 모를 산새들의 울음소리하며 송엽들의 연주하는 솔바람 소리는 마음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방석길(산행로)을 따라 좀 더 깊은 골짜기에 이르니 짙은 송진 내음과 땅에서 풍기는 무미의 흙냄새는 우리인간의 심신을 자연으로 유혹하는 듯하다.

양지바른 방석길은 지팡이 없이도 노송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르다 보면 그리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중턱에 다다를 수 있다. 이곳 중턱 쉼터에서 가뿐히 숨을 삼키며 편히 쉴 수 있도록 평상시설이 설치돼있다. 여기서 오르던 길을 내려다보면 소나무들이 마치 군사가 적군을 향해 진격하는 듯한 장관을 접할 수 있다.

또한 고개를 돌려 동남쪽을 내려다보면 사관리는 물론 32번 국도와 서해안 고속도로의 웅장함 속에 달리는 차들을 볼 수 있어 어제와 오늘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잠시 쉬어 방석길을 따라 이리 꼬불 저리 꼬불 가다보면 갑자기 송림이 끊기고 하늘을 찌를 듯한 상수리 도토리 나무숲이 펼쳐지며 귀엽고 얄미운 다람쥐들이 나를 반긴다. 갑자기 어릴 때 부르던 동요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산골짜기 다람쥐~아기다람쥐. 겨울이 오면은 무얼 먹고 사느냐” 귀여운 다람쥐가 도토리를 귀엽고 부지런하게 모아두고 쌓아둔 것을 생각하면서 숲을 지나니 고도 70도 정도의 가파른 길이 펄쳐진다. 숨을 가다듬고 지팡이를 바로잡아 팔구부 능선을 오르니 갑자기 사방이 확 트이고 싸늘한 바람이 나의 뺨을 후려친다.

이곳이 바로 봉화산 정기를 이어받아 사관리 서북에 우뚝 서서 이 마을 고금의 애환을 담고 풍·수·화(삼재)를 막아주고 무병장수와 액을 막아 준다는 큰산(안산)의 정산이다.

이 정상에서 시선을 동으로 돌려 작은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조선 선조시대 유명한 충청관찰사 정헌대부 예조판서 예문 관제학을 겸임하고 청백리에 녹선된 이안눌 선생의 웅장한 묘와 묘비 그리고 각종 석물이 있다. 또한 그 앞 300m 전방에 이안눌(동악공) 선생의 신도비가 우뚝 서 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비석말’이란다. 아담하고 예쁘게 꾸며진 육각 사관정에 올라 배낭을 풀고 시원한 석간수 한 잔을 마시니 가슴이 확 트이고 인생고행이 모두 씻어 내리는 것 같다. 주저 않아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있으니 그 옛날 선비들의 넉넉하고 여유 있는 마음과 자연을 벗 삼아 인간들이 살아가는 제행무상 그리고 경, 애, 염치와 도덕, 윤리 근면, 충, 예, 성실성 등의 논제와 시제로 시를 지어 읊었을 것을 생각하면서 나의 공두(空頭)속에서도 생각나는 시 몇 수를 읊어본다.

시에 취해 몇 수를 현대 노랫가락 장단에 맞춰 부르다 보니 허기를 채울 시간이다. 배낭을 챙겨 사관정을 뒤로하고 산행길을 따라 서쪽으로 20m쯤 내려가면 곧이어 이정표 없는 쌍갈래 길이 나온다. 서쪽으로 가면 봉화산행 길이요, 동북으로 내려가면 갈티재에 다다른다. 여기서 다시 동남으로 잘 깔려 있는 아스팔트 길을 따라 내려가면 왼쪽에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사관리 저수지가 나온다. 이 저수지는 1930년대 초(왜정시대)에 축조해 부락 영농에 중요한 젖줄이 돼 오고 있다. 한편 이 저수지는 수질이 좋고 상류(지천)가 청정지역으로 물이 맑고 깨끗해 어종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인근 각 지역 낚시꾼들이 다퉈 찾아와 몸과 마음을 쉬어가며 고기도 많이 낚아내는 사관리 구수골의 명소다.

약 두 시간 반을 산행했으니 속이 출출하다. 마음 좋고 인심 좋은 선비마을 사관리 경노당에 내려와 삼겹살을 구워 배추쌈에 마늘을 넣고 고추장을 듬뿍 찍어 한 쌈을 입에 넣고 소주 한 잔 마시니 오늘의 피로가 확 풀리고 인생 살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