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호지면에 사셨던 가까운 친척 한 분이 돌아가셨다. 평소 어려운 살림에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사회의식만큼은 매우 강했던 분이다. 그것은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라는 자긍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신 자신이 한국전쟁에 참여한 참전유공자였다는 자부심도 작용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이분의 이면은 자랑스러움보다 안타까움이 컸다. 1926년에 태어나 88년 평생 동안 어렵게 사셨기 때문이다. 실제로 1920년대에 태어나신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경제적 측면에서 많은 고통을 겪고 계신 듯하다.
지금은 연령상으로 지역사회의 ‘최고 어르신’ 위치에 올랐지만, 1920년대 출생하신 어르신들은 참으로 엄혹했던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태어나셨다. 조선총독부와 일제경찰은 한국인 3명만 모이면 독립운동을 모의하는 것으로 간주해 체포하려 들었고, 각종 집회와 결사를 사사건건 감시하고 통제했다.
또한 ‘1면1교 주의’라고 해 면단위마다 보통학교를 설립했지만, 교육의 본질은 ‘식민체제에 순응하는 한국인을 양성’하는데 있었고, 그나마 대다수 어린이들은 교육 대상에서 제외됐다.
어르신들이 20대에 들어선 1940년대, 주민에 대한 일제의 탄압은 상상초월이었다.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자국의 전선에 한국인을 강제로 내몰았고,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아예 징병제를 시행했다. 국가기록원에서 제공하는 ‘일제 강제동원자 명부’를 살펴보면 징병으로 동원된 분들이 대부분 1920년대 태어나신 분들이었다.
해방을 맞이한 1940년대 중후반, 1920년대 태어나신 분들께 강요된 것은 양분된 정국과 함께 좌익·우익이라는 갈림길이었다. 그리고 어느 쪽을 선택하든 기쁨대신 많은 고통을 안고 살 수 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참전도 마찬가지였다. 젊은이들은 거의 무작위로 징집됐고, 전쟁 과정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스러져갔다. 당진시 6.25참전유공자회의 설명에 의하면, 당진에서만 4150명이 징집돼 720명이 사망했고, 3430명만이 살아 돌아왔다고 한다. 사망률이 무려 20%에 가까울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생존한 분들조차도 대부분 사망하고 현재는 730여 명만이 살아 계신다고 한다.
한편 이들이 40대 장년층으로 성장했던 1970년대 초, 어르신들은 ‘절대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변화의 선두에 서서 앞으로 나가야만 했다. 이들은 ‘소득증대’를 외치며 ‘전진’을 요구하는 정부시책에 순응해 밤낮없이 일했다.
이제 2014년이 됐다. 예전에 뵈었던 1924년생 어느 어르신은 “80년, 정말 무섭고도 험한 세상을 살았네”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를 보낸 당사자로서, 회한이 담긴 독백인 것이다.
2013년 기준으로 남녀 총 2127명의 85세 이상 어르신들이 당진시에 살고 계신 것으로 나타났다. 늦었지만 당진의 어르신들을 올바르게 모실 때가 됐다.
새로운 시정(市政)을 여는 요즘, 앞이 캄캄했던 일제강점기에 큰 곤욕을 치렀고, 한국전쟁기에 국가의 존립을 위해 싸웠으며, 경제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아끼지 않으신 우리 지역 어르신에 대한 예우를 가장 절실한 정책으로 삼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