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근대사는 아프다. 나는 한국 근현대사 책을 몇 번이고 읽으려고 시도했으나 끝내 다 읽지 못했다. 왜 지나간 역사를 공부하는데 감정을 이입하느냐고 한 지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하기도 했지만 한국의 근현대사를 아무런 감정 없이 읽어나가는 일은 여전히 내게 쉽지 않다.

그런 사람이 어디 나뿐이겠는가? 우리에게 근대사는 지울 수 없는 상처이고 지워서도 안 되는 기억이다. 아직도 아픈 역사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고,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여파가 여전히 우리 삶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게으르기 때문에 발전을 위해서는 일본의 식민지배라는 시련이 필요했고 그게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어떤 사람은 생각할 수 있다. 또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고, 설령 누가 보더라도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한 개인의 생각과 사상을 통제하고 바꾸라고 요구할 권리는 우리에겐 없다. 그것이 한 개인이라면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국무총리 후보자라면 그건 다른 문제가 된다.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그리고 사실 잘 알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가 가져야 할 역사관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더 이상 공백이 길어지면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런 역사관을 가진 사람을 굳이 국무총리로 밀어붙이려는 타당한 이유인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지금도 매주 수요일에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집회가 열린다. 말로는 차마 다 표현 못할 고통과 치욕이 사과 한 마디나 얼마간의 배상으로 치유될 리 만무하겠으나 이제는 거의 다 사그라져가는 노구를 이끌고 몇 분 안 남은 할머니들이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그 까닭은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다시는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굳이 일본의 사과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국무총리 후보자의 발언을 나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흐른다 해도 그 역사는 지나간 일일 수는 있으나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머지않아 수요집회를 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더는 볼 수 없게 되는 날이 결국 올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간다 해서 아픔마저 함께 가는 것은 아니다. 일제가 남겨 놓은 우리 역사의 아픔이 그토록 깊을진대 국정 공백이 좀 더 길어진들 어떠한가?

더 이상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픔을 남겨두고 가시지 않게,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살아갈 후손들이 식민시대의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게 독버섯처럼 도사리고 있는 일제의 잔재를 걷어낼 수 있는 지도자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 과한 요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