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우리사회는 나와 다른 것을 ‘다르다’고 인정하기보다 ‘잘못됐다’는 시각으로 바라보곤 한다. 문화와 환경에 따라 서로 가치관도 다르고 삶의 방식에도 차이가 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한국 거주 외국인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당진에도 6000여 명의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 이에 당진시대에서는 창간 21주년을 맞아 ‘당진 비정상회담’을 기획했다. 세계 각국의 청년이 솔직한 토론을 나누는 JTBC의 ‘비정상 회담’처럼 당진에 살고 있는 각국의 외국인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과 고민을 함께 나눴다.

당진은 다문화가정의 비율이 높은 만큼 참가자 중 대부분이 결혼이주여성이었다.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당진에서 영어 강사를 하고 있는 2명의 백인 청년이 함께 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대화를 통해 아시아 출신 결혼이주여성과 영어를 구사하는 미혼의 두 청년에 대해 우리사회가 얼마나 ‘차별’을 하고 있는지, 그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 정상(summit)이 아닌 평범한(ordinary) 각국의 ‘비정상(非頂上)’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통역: 백종하 미래학원장)

고민 하나. 현실을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부딪히는 것이 바로 경제적 문제입니다. 막연히 돈을 쫓는 사람도 있고, 사랑이나 행복 등 다양한 가치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일과 돈, 돈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나, 비정상일까요?

케일 : 나는 역사·문화·미술에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일하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대학을 진학할 때에는 경제학을 선택했어요.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렌조 : 참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엔 동의하지만 월급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은 아닐 거예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시미즈치아키 : 한국과 비슷하게 일본에서도 월급을 많이 주는 직업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월급을 많이 받을수록 업무량도 함께 많아지기 때문에 지치기가 쉽죠. 저는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중·후반기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가정에 긍정적인 영향이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박소연 : 대부분 결혼 후에는 가정생활에 더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기가 어려워요. 기본적으로 돈이 있어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돈의 중요성도 무시할 순 없는 것 같아요.

박하늬 :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돈과 일에 대한 선택도 기본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민이죠. 저는 원래 승무원이 되고 싶었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회계원이 됐어요. 매일 숫자를 봐야하는 반복적인 직업이죠. 하지만 회계원은 급여가 좋아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후회하진 않아요.

한밀라 : 맞아요.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는 없어요. 저 역시도 남편과 자녀의 양육 등을 위해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어려움이 많아요.

Q.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가난하다면? 혹은 별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인데 부자가 자신을 좋아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아요?

박하늬 :‘사랑이 밥 먹여 주나요?’라는 말처럼 오직 사랑만을 바라보기에는 현실적인 장애물들이 너무 많아요. 사랑도 중요하긴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선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랑이 유지될 수 있는 안정적인 생활도 중요하죠.

케일 : 저는 이전에 굉장히 부유한 여자친구와 3년간 사귀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는 세계적 금융회사 남아공 대표의 딸이었어요. 헬리콥터부터 빌딩 등 모든 걸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그에게 선물을 할 필요가 없었죠. 오히려 대부분 여자친구가 양복, 시계 등을 저에게 선물하곤 했는데, 그런 게 저를 더 힘들고 지치게 했던 것 같아요.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경제적으론 어려웠지만 그녀가 나만을 원한다는 게 느껴져서 이전보다 더 행복했어요.

념속하리 :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돈이 행복의 척도를 정해주는 것은 아니에요.

김영춘 : 젊은 시절엔 사랑이면 다 된다고 생각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현실에 직면하니 돈을 무시할 수는 없더라고요. 하지만 돈이 없더라도 두 사람이 책임감을 갖고 생활한다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어요. 어려움을 같이 극복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우리 아이가 돈을 쫒는 삶을 산다면 나는 반대할 거예요. 왜냐하면 그건 불행한 삶을 가져올 수 있거든요.

렌조 :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보다는 돈과 사랑 사이에서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무게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관계 유지를 잘하는 것이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 같아요.

고민 둘. 나이를 먹으니 주위에서 사람들이 결혼 이야기를 꺼내요. 하지만 나는 일이 좋아요. 결혼을 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고, 일에 집중하기 어렵고 대부분의 회사들이 결혼한 여성을 꺼려하죠. 주변의 친구들만 봐도 결혼 이후 집에서 아이만 돌보면서 지내요. 일과 결혼, 출산 사이에서 일을 택한 나, 비정상인가요?

<…62면에 계속>

<…61면에 이어서>

케일 : 저는 여성들이 이런 고민을 한다는 자체가 굉장히 충격이에요. 회사가 기혼여성의 고용을 꺼린다는 게 놀랍네요. (남아공 문화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지 이해하기 어려워요.

김영춘 : 기본적으로 중국에서 남녀는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요. 또 정책적으로도 평등이 보장되죠. 실제로도 중국 남성들의 가사 참여가 여성보다 더 높기도 하고, 남자가 집안일을 하는 경우도 많죠. 그래서 한국에서는 중국 여성들을 보고 ‘강하다’고 표현하기도 해요. 제가 직장생활을 했다면 한국인 남편과 의견 차이가 있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남존여비 사상은 매우 강한 것 같아요.

케일 :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에 대한 인권이 잘 보장되고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내가 보고 느낀 것은 그렇지 않았어요.

렌조 : 물론 남아공도 완벽하게 남녀평등이 이뤄지진 않았어요. 많은 여성들이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력을 하고 있죠.

한밀라 : 필리핀에서도 여성에게 능력이 있다면 여성들이 가정을 부양해요. 그게 사회에서 큰 걸림돌이 되진 않아요.

Q. 다들 한국에 와서 일자리를 구하기 쉬웠는지 궁금하네요.

박하늬 : 영어가 능숙하지 않으면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요. 아시아 출신 결혼이주여성들이 혼자 힘으로 일을 구한다면 설거지 아르바이트 정도를 구할 수 있어요.

시미즈치아키 : 나이가 많다는 것, 자녀가 있다는 것, 시골에 산다는 것, 그리고 외국인이라는 것 등이 모두 문제가 돼요. 결혼이주여성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에 있어서 많은 부분 소외받고 있다고 느껴요.

렌조 : 저는 일자리를 찾기 쉬웠어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원어민 강사를 원하기 때문일 거예요. 제가 한국에 4년 살았다고 하면 사람들이 놀라요. 왜냐면 저는 한국어를 잘 못하거든요. 한국에서 지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로 말을 걸어줬고, 한국어를 못한다고 해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어요. 원어민 강사들끼리 커뮤니티도 잘 돼있어서 한국에 있으면서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죠. 여기에 모인 결혼이주여성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저는 어린 편이고, 이곳에 가족이나 연인이 없어요. 언제든 한국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요.

케일 : 저도 처음 한국에 왔을 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한국어를 공부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생활하면서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도 어려움이 없었어요. 저 역시 한국인 친구들이 많지만 그 친구들과 영어로 이야기를 해요.

김영춘·시미즈치아키·박하늬 : 한국에 왔으면 한국어를 배워야 해요. 한국어를 배웠으면 좋겠어요.

김영춘 : 한국엔 영어우월주의가 있는 것 같아요. 아시아권(중국·일본·베트남 등)에서 시집온 여성들은 시부모와 남편으로부터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압박을 많이 받아요. 엄마의 모국어를 아이에게 가르치는 걸 바라지 않죠. 하지만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양인이라면 말이 달라져요. 영어를 잘하면 좋다는 이유로 아이가 이중언어를 사용하도록 권하죠.

시미즈치아키 : 저도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일본어를 거의 못해요.

김영춘 : 제가 시집온 10여 년 전과 지금은 너무 달라졌어요.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아이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너무 많이 성장해 버려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쉽지 않아요.

시미즈치아키 :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땐 이중언어(특히 아시아권)를 꺼려하는 추세가 강했는데, 요즘은 정책적으로 이를 권유하는 분위기에요. 그래서 일본어를 못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고 제게 ‘자녀교육에 신경 쓰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할 때 속상해요.

한밀라 : 필리핀은 어렸을 때부터 기본적으로 타갈로그어와 영어를 함께 배워요. 제가 영어를 잘 하기 때문에 저의 시부모님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라고 권유하세요.

김영춘 : 아이가 한국어와 엄마의 모국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실용적 측면에서만 봐선 안돼요. 엄마의 입장에서는 엄마의 모국어로 아이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죠. 아무래도 한국어보다 내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기엔 모국어가 더 좋으니까요. 아이가 엄마의 모국어를 전혀 사용할 수 없다면, 엄마의 마음을 아이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워 감정적인 교류를 하기 힘들다는 점도 있어요.

박소연 : 한국어 소통이 가능해도 아직은 좀 서툴러서 말 안에 감정을 담아내기 어려워요. 그래서 내가 한국어로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과 베트남어로 yêu(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내 아이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소통을 하지 못한다는 점도 가슴 아파요.

시미즈치아키 : 우리 아이들은 일본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어요. 아이들에게 엄마의 나라를 알려주고 싶어서 일본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요.

Q. 정말 놀랍네요. 이주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이 단순히 의사소통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우리 사회가 가진 차별, 그리고 언어로 인해 아이와 엄마가 교감할 수 없다는 것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어요.

고민 셋. 당진에 살고 있는데 불편한 점이 많아요. 다른 곳으로 떠나서 살아야 할까요?

념속하리 : 당진은 무엇보다 대중교통이 없어서 불편해요.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 위해선 약속시간 2시간 전부터 미리 준비를 해야 하죠. 더구나 버스를 놓치면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해요. 또 아이들과 함께 갈 만한 곳이 없어요.

다같이 : 맞아요. 다른 도시보다 대중교통이 많이 부족해요. 특히 읍·면에 사는 사람들은 자가용이 없으면 생활하기 너무 어려워요.

시미즈치아키 : 저는 당진의 좋은 점을 말하고 싶어요. ‘그랬슈~’, ‘뭐에유~’ 같은 사투리가 정감 있어서 참 좋아요. 그래서 저도 사투리를 배워서 사투리도 쓰고 있어유~.(웃음)

박하늬 : 저는 대장금·겨울연가 등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화려한 도시, 멋진 한국 연예인들을 통해 한국을 접했죠. 하지만 실제로 한국에 오니 드라마와 현실을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특히 당진은 정말 시골이죠.

김영춘 : 당진은 문화공간이 부족해요. 읍·면에 사는 사람들이 문예의전당을 자주 이용한다는 건 힘든 일이죠. 지역에도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장소들이 필요해요.

케일 : 남아공에서는 차 키를 꽂아 놓은 채로 편의점에 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사람들이 차를 그대로 가져가거든요. 하지만 한국은 범죄율도 낮고 새벽까지 술을 마셔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서 좋아요.

렌조 : 하지만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콩글리쉬’가 저에게 혼란을 주기도 해요.

Q. 마지막으로 오늘 토론회에 참석한 소감은 어때요?

다같이 :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한국에서 지내는 외국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다들 겪고 있는 상황이 다른 것 같아 신기했어요.

케일 : 오늘 토론을 하면서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살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알았고요. 제가 영어교사로 한국에 왔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느껴요. 저는 비교적 한국인들에게 좋은 대우를 받으며 지내고 있거든요. 앞으로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