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을 찾아온 많은 예술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당진문예의전당은 매우 잘 정돈돼 있으며, 당진의 관객들은 매우 친숙하면서도 집중도가 있다’라고. 그리고 그들은 인구 17만의 작은 도시 당진에 존재하는 1001석 규모의 대공연장과 300석의 소공연장, 그리고 야외공연장과 단독 건물의 전시관까지 갖춘 당진문예의전당 규모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필자가 당진에 처음 왔을 때의 느낌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10년 전 당진시의 모습에 비해, 당진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경제·정치·문화·예술 등 모든 분야의 양적인 면에서는 타도시가 범접하기 어려운 속도로 발전한 듯하다. 질적인 면에 있어서도 상당 부분 진화한 것이 사실이겠지만, 필자의 욕심은 이미 선진국의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필자가 10여 년간 상임단원으로 몸담았던 독일의 ‘담슈타트 국립오페라극장’은 1000석의 객석을 갖고 있어 언뜻 보기에 규모면에서는 당진문예의전당과 차이가 없는 듯 느껴질 수 있다. 극장의 소재지인 담슈타트(Darmstadt)라는 도시도 세계적인 현대음악제로 매우 유명하기는 하나, 인구가 20만 명 남짓한 아담한 도시이다. 대공연장 기준으로 객석 1000석 규모의 당진문예의전당과 담슈타트 국립오페라극장은 모두 전문공연장으로 건립되었다. 하지만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자.

담슈타트 국립오페라극장은 대공연장에서만 연간 250회 이상의 공연이 이뤄진다. 400석 규모의 소공연장, 그리고 300석 규모의 실험극장을 포함하면 연 600회 이상의 공연이다. 공연의 90퍼센트 이상이 자체 제작공연이며, 매 공연마다 객석은 거의 만석이다. 불과 인구 20만의 작은 도시에서 말이다. 2014년 기준으로 당진문예의전당은 대공연장에서 109번의 공연이 있었고, 소공연장에서는 103회의 공연이 이뤄졌다. 그리고 총 관객은 10만 명 정도이니 비슷한 규모의 우리나라 다른 도시에 비하면 매우 우수한 편이지만 담슈타트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무엇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나타내는가? ‘복지’에 대한 인식, 바로 이것이 우리와는 매우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제가 어려워질 때, 예산절감을 위해 가장 먼저 삭감을 고려하는 부분이 문화예술 분야의 예산이다. 사회복지를 위해, 그리고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들에게 빵을 주기 위해서라는 명분은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굶어 죽는 사람이 극히 드문 현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복지란 무엇일까? 가난한 사람부터 부자까지 모든 사람들이 양질의 문화예술을 향유하며,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아닐까?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문화혜택, 그것을 위해 독일인들은 어떤 투자를 하였는가? 일례로 담슈타트 국립오페라극장에는 500명에 이르는 상근직원들이 있다. 오페라 가수, 오케스트라 단원, 연출가, 지휘자, 무대소품을 만드는 사람, 무대세트를 제작하는 사람, 의상을 만드는 사람, 사무를 보는 사람, 심지어는 미용실과 인쇄소까지 극장 안에 존재한다. 인구20만의 도시에서 상근자 500명, 비상근 예술가 및 일용직을 포함하면 1000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이 공연장을 왕래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부른다.

대공연장의 무대는 서울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보다 넓고, 무대시설 및 장비들 또한 우리나라의 그 어느 극장도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독일이 부자국가여서 이렇게 투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폐허가 된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먼저 재건된 건축물이 오페라극장(Alte Oper)이며, 이러한 복지정책이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가난하건 부자이건, 어느 곳에서 일하든지 간에, 독일들은 일과 후 공연장을 찾아 그 옛날 귀족들이 누렸던 문화생활을 만끽한다. 나는 꿈꾼다. 당진시민들이 당진문예의전당을 통해 그들과 닮아 있기를. 빵을 위해 문화예술을 버려도 된다는 인식의 결과가 '자살율 1위 대한민국'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