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이며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우리는 이 날들을 1년에 한 번 있는 날들로 생각한다. 하지만 365일 일 년 내내가 모두 어린이날이고 어버이날이고 스승의날이다.
어린이날이면 곳곳이 행사에 취해 야단법석이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어린이 학대 등으로 뉴스를 장식한다.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또 어버이날은 어찌할까. 부모를 학대하는 것은 물론 살인까지 저지르는 돈에 눈 먼 패륜아나 자신의 생각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부모에게 대드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약과다.
필자는 지금 이런 시대에 개탄이나 슬픔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효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역설하고 싶다. 과거에는 명석에 누어 계신 아버지를 위해 손을 깨물어 피를 입에 넣어 주며 살린 이야기 혹은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허벅지 살을 떼어 잡수시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전설에 남겨진 이야기다.
지금 우리가 그렇게까지 살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효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 전통문화 중에서 제일 앞에 자리를 차지가고 있던 것은 효다. 사람들은 효가 무엇보다 우위에 있는 의무라고 생각해 왔다. 효도는 추상적인 도덕과 구체적인 실천 사이에 다리를 놓는 윤리 체계의 핵심이었다.
효도는 또한 개인의 영역과 공공 영역을 한데 묶어 지속가능한 가정의 질서와 사회·윤리 정치 체제를 만들고 이끌어 가는 기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옛 18세기 전부터 중국인들도 한국의 효도를 가장 높이 평가했다. 또한 한국의 노인과 조상에 대한 한국인들의 공경심을 문명사회의 징표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미래를 설계할 때도 효도는 제일 잘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한국인데, 지금 효가 어디갔는가. 물론 여전히 효심이 깊은 이들도 일부 있다. 하지만 일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겼던 효도는 어디가고 어디서 찾아야 할까? 고민할 문제다.
우리는 효도라는 의미에 내재된 타인에 대한 측은지심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한국은 이제 자녀들이 노부모를 버리는 일이 발생하는 나라가 됐다. 또 가족들로부터 소외된 나머지 절망 속에서 자살하는 노인들도 있다. 이런 현실은 나는 인간의 기본인 효의 사라짐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효도는 반드시 부흥시켜야 할 한국의 전통이다.
하지만 효도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효도를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효도가 단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일상 생활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효도를 만들어내려는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효도의 전통을 오늘에 맞게 재해석 하려면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연구해야 한다.
또 효도는 남·여의 편견을 버리고 탈피해야 한다. 한국사회는 급성장하면서 근본적으로 급히 변화했다. 그 과정에서 효를 다시 찾아내야 한다. 우리의 전통을 살리면서 효의 사상과 행동을 자기 종교적인 사고와 접목시켜야 할 것이다.
교육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교육과 대화, 대담에서 우리가 잊혀가고 있는 부모님 조상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그들의 삼과 생, 그리고 마음 씀씀이 등을 익혀야 한다. 그래야만 조상에 대한 존경심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
19세기에 서양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가족주의를 강조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바로 한국의 효도가 한국이 제국주의적인 국가가 되는 것을 막았으며 인간애가 넘치는 통치제도를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 지금은 얼마나 살기 좋고 부강한 나라가 되었는가?
지금 우리 노인들은 어떤 효도를 생각하고 있을까? 필자는 많은 노인을 만나고 있다. 거의 다 자식에게 효도 받기는 틀렸다고 말한다. 그냥 속이나 썩히지 않는 것이 효도라고 말한다. 이런 현실이 참으로 씁쓸하다. 이글을 끝내면서 효도의 절실한 현실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