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0~1658

-조선중기 문신

-대동법의 시행, 동전의 통용 및 시헌력 도입

주요저술:[잠곡유고],[유원총보],[황명기략]등

"국가가 마땅히 서민의 바람에 따라야 하지, 부자들을 꺼려 백성에게 편리한 법을 시행하지 않아서야..."

[효종실록] 9년 9월 기해조는 김육의 사망을 전하고 다음과 같은 인물평을 싣고 있다

"사람됨이 강인하고 과단성이 있으며 품행이 단정.정확하였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정성을 천성으로 타고나 일을 만나면 할말을 다하여 꺼리거나 두려운 일을 피하지 않는다...평생 경제를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상국이 되자 새로 시행한 일이 많았으니 충청.전라의 대동법은 그가 건의한 것이다. 다만 자신감이 너무 지나쳐서 처음 대동법을 논의할 때 김집과 의견이 맞지 않자 김육은 불평을 품고 여러 차례 상소하여 김집을 공략하였다. 사람들은 이를 단점으로 여겼다"

어려서부터 총명한 김육은 13세에 임진왜란을 만나 피난길에서도 늘 책을 끼고 다니며 책읽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경제'란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경세제민을 줄인 말로 그는 백성의 세금을 고르게 하는 '대동법'시행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