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당진에는 경기 불활 속에서도 한 자리에서 수년간 사업을 이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대규모 프랜차이즈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오래도록 지역 상권을 지켜온 소상공인들이다. 본지에서는 <이웃의 이야기, 소상공인> 기획보도를 통해 원도심을 비롯한 읍·면 지역을 지켜온 소상공인의 인생 스토리와 희망 메시지를 담아낼 예정이다.

읍내동 당진이교다리 인근에 자리한 은혜슈퍼는 오래전부터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는 슈퍼였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24시간 편의점의 시초였다. 밤늦게 간식을 사거나 늦은 시각 술자리 안줏거리가 아쉬운 이들에겐 늘 반가운 슈퍼였다.

연고 없는 당진에 내려와

서울이 고향인 윤용구 대표는 남대문에서 금은방을 운영했다. 하지만 사업에 실패한 뒤 지난 1987년 11월 아내 정희영 씨와 함께 당진에 내려왔다. 지인의 추천으로 당진에 오게 된 윤 대표는 “당시 당진은 조용한 농촌이었다”며 “때가 묻지 않는 곳이었다”고 회상했다.

부부는 당진시장오거리에서 꼬박 8년 동안 과일 노점상을 했고, 그 후엔 포장마차를 운영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에서 장사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윤 씨는 희망을 잃지 않고 아내와 함께 당진에서 삶을 꾸려 갔다. 포장마차를 접고 시작한 것이 슈퍼였다. 슈퍼 주인을 찾는다는 신문 광고를 본 윤 씨는 1993년 9월 은혜슈퍼를 인수했다.

24시간 문 연 슈퍼

슈퍼 안쪽에는 작은 방이 함께 딸려 있다. 몇 년간 부부는 이 방에서 살면서 교대로 슈퍼를 운영했다. 새벽 4시까지 운영하다 2시간 정도 쉬고 다시 새벽 6시에 문을 열었다.

윤 대표는 “판매하는 품목도 다양했고, 늦게까지 영업해서 고대, 면천, 삽교천, 덕산에서도 손님이 오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 시절 은혜슈퍼를 이용하던 청소년들은 이제 40대, 50대 중년이 됐다”며 “슈퍼를 잊지 않은 사람들이 일부러 이곳을 찾기도 하고, 자녀를 데리고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당진의 역사를 함께 해

윤 대표는 올해 72세다. 33년 전 당진에 내려온 그는 당진의 역사를 함께 했다. 그는 “당진에 정착하던 초창기에는 은혜슈퍼 인근부터 별당암 골목까지 시장이었다”며 “당시 시장이 현재의 전통시장 자리로 이동하던 무렵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한보철강으로 경기부흥이 일던 때를 회고했다. 윤 대표는 “한보철강이 들어오기 전 이곳은 손님이 없는 죽은 동네였다”며 “한보철강이 들어오면서 지역이 살아나 번성했다가 한보철강 부도 사태와 IMF가 찾아오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젠 죽은 원도심을 살려야 한다”며 “도시개발을 계획할 때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1998년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해다. 1998년 8월 8일과 9일 이틀 사이에 349㎜라는 기록적인 폭우로 당진시가지가 물에 잠기고 산사태 등으로 7명이 사망하는 최대의 물난리가 발생한 것이다. 윤 대표는 “그때 슈퍼 안에도 물이 차 난리가 났었다”고 회상했다.

30년 된 물건 버리지 않아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편의점이 들어서면서 동네 슈퍼는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은혜슈퍼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24시간 운영하던 은혜슈퍼는 이젠 평균 새벽 1시까지 문을 연다.

윤 대표는 “슈퍼 중에서는 늦은 시각까지 영업을 하는 편이지만, 늦게까지 문을 열어도 사람들은 편의점을 이용한다”며 “이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어려운 상황에도 그는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간다. 윤 대표는 슈퍼를 운영하면서 판매했던 양주, 어린이 치약, 카메라 필름 등 20년, 30년 전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놨다.

윤 대표는 “이따금 내 수집품을 구하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며 “지금은 보기 어려운 옛 물건들을 모아놓고, 사람들에게 그 이력을 설명할 때면 즐겁다”고 전했다.

>> 은혜슈퍼는 ?

■ 위치: 당진중앙2로 20

■ 문의: 352-1806

※ 이 기획기사는 2020년 충청남도 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