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제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의 장”

참석자

이준섭(본지 대표이사) 이준우(본지 편집위원)

최종길(본지 편집국장) 이종명(본지 편집위원)

허충회(본지 편집위원) 김태숙(본지 취재기자)

창간 50일, 당진시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주민들 중앙집권적인 현실로 지역신문에

무관심 지역민의 생활에 파고드는 것이 관건

“힘있는 사람편에 서면 쉽지만 결국 실패”

주민의 삶에 밀착된 편집방향 지켜나가야

“논리성과 현장성 두루 갖춰나가자”

통신원 제도 정착이 살아있는 신문 만들어

이종명당진시대가 창간된지 한달 반 가까이 되고 있습니다. 우선 지역신문이 지역에서 담당해야 할 역할과 과제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부터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준우지역신문은 광역신문에 비해 기사의 촛점을 구체적인 자기지역에 맞추기 때문에 지역문제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중앙집권적인 사회현실에서 지역주민들이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봅니다. 바로 그 필요성을 주민들이 느끼도록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려면 또한 지역주민의 생활이 지역신문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걸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편집국장이 시달린다는 ‘항의전화’도 사실은 관심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어요. 지금까지의 지역신문이 지역민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데에는 사회현실뿐만 아니라 지역신문들이 주민의 관심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던 점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지방자치시대에 맞는 주민의식의 변화가 관건인데 그때까지 끈기있게 노력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김태숙그동안 지방자치시대라는 개념이 다소 추상적으로 여겨졌었는데 최근 언론에 종사하면서 구체적으로 느껴집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로 볼때 지역이 단순히 생활공간일 뿐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거의 공백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지역언론의 역할이 바로 이같은 지역에 지방자치에 필요한 구조들을 갖춰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서로 동떨어진 주민과 행정을 이어주고, 언론에서 소외된 주민들이 우리신문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서서히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의식을 회복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종명그런데 지방자치제는 서로 상반된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역주민의 건강한 삶을 실현하는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을 때 오히려 지역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영향력만 강화시켜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두번째의 경우는 지역신문의 영향력을 고려했을때 그만큼 주민의 관심사나 의식이 더욱 깊이 왜곡될 소지도 안고 있습니다.

이같은 우려를 없애기 위해서는 신문이 올바른 여론형성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것은 또 신문이 주민의 삶에 밀착된 편집방향을 지킴으로써 가능해지겠죠.

이준우지역신문은 어쨌거나 지역주민의 이해관계 속에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물론 어떤 편집방향을 갖고 들어가는가에 따라서 그같은 역기능이 나타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이를테면 힘있는 사람들 편에 서면 신문은 물질적으로 쉽게 성공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또 지역신문이 엄격한 의미에

서 실패하는 결정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당진시대처럼 ‘소액주주제’로 운영하는 신문의 강점이 바로 그런 치우침을 견제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종명문제는 실제 신문의 편집과 제작과정에 그 원칙이 분명히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준우특히 지역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편집진 전체의견을 정확히 수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시간에 쫓기는 점은 이해하지만 특별히 감수할 만한 이유가 없는 한 오해나 실수는 없애야 합니다.

허충회앞서 몇분도 말씀하셨지만 중요한 것은 ‘이 신문이 나와 관련이 있는가’라는 주민관점에 서야 한다는 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현재 우리신문은 다른 신문과 다르긴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맹렬한 공격성’을 기준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현장감, 예를 들어 서민들의 삶과 현장을 깊게 느끼는 정도에는 기존 신문과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운영의 묘’는 살리되 현장감 있게 하려면 ‘신문’이라는 권위적인 틀을 때로는 무시할 필요도 있습니다. 아무런 업적이 없는 사람의 그저 평범한 일상을 부각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겠죠.

이준섭사소하고 작은 사실도 기사화함으로써 주민들이 거리를 느끼지 않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신원 제도」를 빨리 정착시켜야 하겠습니다.

최종길현실적인 가장 큰 문제로서 ‘현장성 부족’이 지적되고 있는데 제 생각도 같습니다.

현재 우리신문은 세가지 정도의 과잉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문학적인 감동과 비판쪾폭로적인 기사, 더 나아가서는 급격한 현실의 변화를 바라는 요구입니다. 동시에 충족시킬 수 없는 많은 부담을 안고 우리신문은 출발한 셈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요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제보등 참여가 부족한 편입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제보가 많은 편입니다.

허충회이쯤해서 제가 편집 기술적인 면을 한가지 지적해 보겠습니다.

송년호 1면에 실린 새해인사는 머릿기사인데도 마치 우리신문과 관계없는 광고같은 느낌을 줍니다. 우리신문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개성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이종명그말에 동의합니다.

삶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방향은 공감하면서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우리신문은 이론적인 가르침보다 실제 서민의 고민을 밀착해서 다뤄야 합니다. 신문이 줄 수 있는 감동은 바로 그런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예를 들어 우루과이 라운드의 영향을 다룰 때도 구조적인 접근보다 한 농가, 한 소비자의 직접적인 생활의 변화를 통해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준우두 분 말씀 다 옳습니다.

아마도 실무진에게 가장 어려운 주문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알면서도 말처럼 쉽게 달성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이 문제를 지적하는 이종명 편집위원의 말도 얼마나 추상적인지 아십니까? (다같이 웃음) 앞으로 오랜 훈련을 거쳐 나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엔 모든 사람이 일간지를 보고 나서 지역신문을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역신문도 논리성과 설득력을 지녀야 합니다. 다만 논리적인 문제를 현장에 접근해 듣는 방식을 겸한다면 좋겠죠. 또 이해가 가능하도록 쉬운 기사설명도 필요하고요. ‘진솔한 삶’이라는 것도 오래가면 식상해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전체적으로 사람중심의 기사가 많다는 느낌이 드는 군요.

최종길인물이 비율적으로 많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에 대한 반응이 민감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요?

이준우비율,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독자가 느끼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한 예로 외국의 지역신문중에는 학교의 점심메뉴나 강아지에 대한 기사를 고정적으로 싣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사소한 것에 대한 애정이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제보자 뿐만 아니라 우리자신도 그런 한계를 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늘 무언가 불만으로 느끼는 것이 있는데도 기사거리로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찾아내야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정치인물기사도 얄팍한 재밋거리 이상이 되기는 힘들다고 봐요. 물론 다른 신문과 전혀 다르게 출발하는 것도 문제겠지요. 그건 어떤 한계를 갖고 출발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서서히 다른 점을 만들어 가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최종길우리신문이 서민들의 생활을 담아내는 그릇이길 바라는 요구가 있다는 걸 알고 있고, 또 필요하다고 인정은 하지만 지방의 정치를 견제하고 주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군수선거」도 이미 관계된 사람들에게는 엄연한 현실인데 주민들 사이에서는 소문으로만 떠도는 것을 공개적으로 기사화한 것 뿐입니다. 인력의 부족과 시간상의 한계로 기사에 철저를 기하지 못하는 점과 주민생활에 밀착하는데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이준우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수선거」와 같은 기사는 기획의도에 비해 자칫 일시적인 재미거리에 그칠 우려가 있습니다.

이종명얘기가 잠시 딴데로 흐른 것 같은데요. 저는 기사의 내용이나 비율을 거론한 것이 아니라 기사를 다루는 방식을 제기한 것입니다. UR의 경우도 주민의 삶속에 녹아있는 구조문제를 다뤘어야 했다고 봅니다.

허충회그동안 사설, 기사등 UR문제 접근이 사실상 논리적인 부분에 국한되었던 점을 인정합니다.

이종명그러한 시사성이나 논리성을 다른 일간지에 맡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하자면 정말 우리 주민들의 소박한 삶을 담아내고 논리성을 포기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이준우 : 물론 중앙적인 관점을 포기하고 철저히 지역주체적인 관점에 서야겠지만 전국적으로, 특히 농촌구조상 중대한 문제인 UR을 다루지 않는다면 자칫 무관심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최종길기사속에 현장감이 떨어지는 이유중의 하나가 청탁한 글들이 너무 딱딱하다는 점입니다. 농민이면 농민, 주부면 주부, 직장인이면 직장인등 현장감 있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고 싶은데 구체적인 기사를 요구해 오는 분들조차 원고는 추상적이고 어렵게 쓰는 경향이 강합니다. 전체적으로 글쓰는 문화가 쉽고 솔직하게 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준우애초부터 주장해 왔지만 다양한 필진을 준비해 두는 일은 신문이 오래 건강하게 살아남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이라도 신중하게 필진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허충회저는 현재의 편집방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앞으로 우리 편집진이 모범을 보임으로써 딱딱한 것을 개성있고 재미있는 기사로 살려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인물인터뷰 기사가 다른 신문과 게재의도가 달랐는데도 외견상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한 점은 여전히 아쉽습니다.

김태숙변명같지만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송년호에 군의회의원 인터뷰를 실었던 이유는 활동이 두드러지는 의원과 그렇지 않은 의원을 구분해서 간접적으로 평가한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준우그런 의도가 있었다 해도 독자들이 무심히 넘겼다면 문제죠. 아마도 또 유명인사를 부각시킨다는 편견만 강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의원의 발언을 그대로 게재해서 독자가 스스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될 겁니다.

최종길나름대로 노력은 합니다만 역시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준섭무료 게시판 활용에 대해 말씀드리죠. 서너개에 국한된 내용을 크게 뽑지 말고 주민들 생활에 관계된 내용을 되도록 많이 발굴해서 작게 여러개를 실었으면 좋겠어요.

이준우신문이 다양한 목소리를 싣고 생기 있으려면 제보자가 많아야 하는데 제보자를 부각시키는 방법도 강구했으면 해요.

허충회그러기 위해서는 제보자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겠군요.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작고 소박한 이야기를 제보해 주도록 말입니다.

이종명통신원 모임을 제도화하는 것은 어떨까요?

최종길맞는 말입니다. 일방적으로 우리신문에 기사거리를 제공해주기만 바랄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한 각종 교육의 기회도 부여해주고, 또 구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모임도 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죠.

이준우앞으로 통신원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우리신문이 활기를 띨 수 있는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시일이 걸리는 기획기사도 준비할 수 있을 거고요. 욕심은 많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노력해 가도록 합시다.

이준섭 대표이사

“사소하고 작은 사실도 기사화함으로써 주민들이 거리를 느끼지 않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준우 편집위원

“지역신문은 기사의 촛점을 구체적인 자기지역에 맞추기 때문에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최종길 편집국장

“서민생활을 담아내는 것 못지 않게 지방의 행정을 주민의 입장에서 견제하고 대변하는 역할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허충회 편집위원

“현장감 있게 하려면 때로는 신문의 권위적 틀을 무시하고 평범한 사람을 부각시키는 것도 좋겠죠”

이종명 편집위원

“이론적인 가르침보다 서민의 고민에 밀착해야 합니다. 신문의 감동은 그런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김태숙 취재기자

“동떨어진 행정과 주민을 이어주고, 주민이 언론에 참여하면서 주인의식을 회복하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