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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기억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문화와 서산’ 기사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찾은 기사
5건
연도
2013년

5건 · '문화와 서산' · 2013년 · 최근 기사부터1 / 1쪽

  1. 2013.10.18 · 지역사회 · 임아연

    [우리마을 이야기 16] 당진1동 읍내7통야트막한 산간지역 과수원뿐이던 ‘계성마을’

    …네에서 살았다고 한다. 과수원과 방앗간을 운영하던 인운식이라는 사람인데 서산·당진 일대에서 ‘부자’로는 손에 꼽히는 인물이었다고. 이주민 대부분… 마을 인심 그리워 기록에 의하면 마을이 최초로 형성됐을 무렵에는 총 7가구에 33명의 사람만이 동네에 살…

  2. 2013.08.09 · 지역사회 · 임아연

    [우리마을 이야기 9] 정미면 덕마리말 형상 닮은 덕(德)이 으뜸인 마을

    …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낸다. 굿하고 제사 지내던 말목 덕마리는 원래 서산시(당시 서산군) 땅이었으나 1957년 당진시(당시 당진군)으로 편입된 곳으로 마을이름의 유래가 된 곳은 말목과 덕실이라는 곳이다. 지금의 신덕교회 앞을 일컫는 이곳은 지형이 …

  3. 2013.05.24 · 지역사회 · 임아연

    [우리마을 이야기 2] 곡식 담아두던 창고가 있던 마을

    …루쌀이 생산되는 너른 벌판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배가 닿던 마을이다. 태안·서산·예산·청양·보령·부여 등 충남 전역에서 조세로 거둬들인 곡물과 특산품을 보관하던 창고(남창)가 있다하여 ‘창리(倉里)’이라 이름 붙었다. 이곳에 모인 각종 곡식은 봄이 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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