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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기억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조선시대 면천군’ 기사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찾은 기사
2건
연도
2019년

2건 · '조선시대 면천군' · 2019년 · 최근 기사부터1 / 1쪽

  1. 2019.05.10 · 문화·교육 · 한수미

    고즈넉한 시골동네에 바람이 분다■면천에서 하루 보내기

    …면 골정지를 만날 수 있다. 연암 박지원은 1797년부터 1800년까지 면천군수로 재직했을 당시 버려진 연못을 주변의 농경지로 관개하기 위해 수축한 곳이다. 골정지 위에는 ‘하늘과 땅 사이의 한 초가지붕 정자’라는 뜻의 건곤일초정이 있다. 봄이면 골정…

  2. 2019.03.15 · 문화·교육 · 한수미

    [세상 사는 이야기] 한기창 전 면천향교 전교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충·효·예

    …7년 퇴직하고 다시 고향에 터를 잡았다. 지금은 ‘순성면 봉소리’이지만 조선시대 때는 ‘면천군 덕두면 초전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 이름을 따, 한 옹은 마을회관에 ‘초전충효교실’을 열고 마을 아이들에게 한자와 충·효·예절을 가르쳤다. 이후 각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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