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남지 않아 그림으로 대신했습니다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안일상회’
[합덕 안일상회의 어제와 오늘]시간이 멈춘 곳
‘남의 가게 앞에 왜 차를 대!’ 억센 경상도 억양의 한 노파의 호통이 귀가 따가울 정도로 거세다. ‘합덕에서 장사를 제일 오랫동안 하신 분들이라 해서 사연을 듣고자 찾아왔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그제서야 화가 풀리신 모양으로 가게안으로 안내를 하신다. 순간, 시간은 60년전으로 흘러 1950년대 잡화점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나무로 짠 진열장들과 역시 나무로 만든 돈궤(돈을 넣어두는 상자), 가게 바닥은 흙바닥이었고, 가게 한쪽엔 쪽방도 있었다. 불을 때는 아궁이도 그대로 있다. 돈궤는 앉은뱅이 책상 역할도 해서 할머니는 그곳에 앉아 손님을 맞는다. 각종 문구에서부터 빨래깍지 같은 생활용품, 양쪽 끝에 술이 달린 스카프 등 70~80년대 쓰이던 물품들이 세월의 무게만큼의 먼지를 뽀얗게 쓴 채로 널려있다. 방안지며 주판, 단추역할을 대신하던 호크, 노란 귀저귀 고무줄, 미술시간에 썼던 조각칼 등이 반갑다.
“모심을 때 물장화 안내려가게 묶어 매는데 쓰고 있지, 병원에서도 주사 놓을때 쓰고,,,”
기저귀 고무줄의 오늘날 용도를 할머니는 이렇게 일러주셨다.
합덕 안일상회. 합덕시가지의 중심인 구 대건신협앞 골목 130여평의 부지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주인 안승태(84) 할아버지가 부인과 함께 60여년을 운영해온 도매잡화점이다. 서산, 홍성, 당진 등지의 소매상들이 이곳에 와서 물건을 해 갔고 한때 여남은 명의 직원과 차 두 대를 갖고 운영했을 정도로 번창했었다. 안일상회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도 있었을 만큼 일대에선 꽤 유명한 점포였다고 한다.
그 안일상회가 지금도 그때와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얼마전 바람으로 간판이 넘어가 다시 세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주인장 안씨 부부가 백발의 팔순노인이 되어 있다는 것 뿐이다.
하루 2~3천원 벌이밖에 안되지만 노부부는 이 가게를 접지 못하고 있다. ‘어지간하다’는 말을 주위에서 들을 정도로 고집스레 가게를 붙잡고 있는 이유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어서이다. 비록 타향이지만 60년동안 정붙이며 살아 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의료보험료는 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일년 세금도 안나오는 벌이지만 그렇다고 여길 뜨면 이 나이에 어데가서 살겠어?”
시내 한복판에 100평이 넘는 땅을 가지고 있으니 세금이 많이 나오는 건 당연지사임에도 할머니는 부담이 너무 크다고 하소연한다.
지금도 아침 6시에 가게문을 연다는 노부부.
‘필요한 사람은 알아서 찾아오라’는 듯 안일상회의 물품들은 노부부와 함께 세월을 잊고 그렇게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