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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 타임라인

당진 사람들의 일터

주민 138명의 앨범에서 고른 208장 · 1962 — 2013년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에 실린 이야기 가운데 ‘일터와 생업’ 장면만 모아 세월 순서로 엮었습니다. 장마다 그 사진을 꺼내 준 주민의 말을 그대로 옮겼고, 아래 링크로 그 사람의 앨범 전체를 펼쳐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100명 — 이름을 누르면 그 사람의 첫 장면으로
  1. 1962년

    마을성극에 참여한 60년 전 막내시절

    마을성극에 참여한 60년 전 막내시절

    두 번째 사진은 1962년 농촌지도자교육수련회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석문면 대표로 양돈기술을 익혀왔고, 마을에 돌아와 배운 것을 4-H 회원들에게 알려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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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966년

    나에게 귀한 옛 사진

    나에게 귀한 옛 사진

    이 사진은 무려 60년도 더 된 1966년에 촬영한 사진이다. 나도 이 사진이 남아 있는 줄 몰랐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는 언니의 소개로 적십자지사에서 일하게 됐다. 이 사진은 육군군인병원에서 일하던 중 봉천동으로 파견 나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나다. 당시 봉천동은 서울에서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모인 동네였다. 당시 귀했던 카메라는 특수한 직업 혹은 부유한 사람들의 소유물이었다. 그래서 봉사자들과 봉천동 주민들이 담긴 이 사진이 나에게 귀한 이유다.

    「“학생들 마음 놓고 공부하게 해주세요”」 앨범 펼치기 →

  3. 1969년

    차청남상록수교회 원로목사

    “종교 간의 화합 이룬 자리”

    “종교 간의 화합 이룬 자리”

    두 번째 사진은 1969년 10월 당진 최초 교역자 회의에 참가했을 때다. 이때 나는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교역자 회의에 신학생들이 당진으로 견학을 왔다. 사진 속에서 다들 양복을 입고 있는데 나만 양복을 입지 않아 혼났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어려웠던 시절이어서 양복 살 돈이 마땅치 않았었다. 지금 생각하니 추억이지만 그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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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1970년

    정덕영당진향교 전교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소중한 자녀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소중한 자녀들

    두 번째 사진은 당진군청에 근무했을 때 찍힌 사진이다. 나는 1970년부터 당진군청에서 일했다. 10년 후 정규직으로 채용돼 1999년 6월까지 근무하다, 퇴임했다. 당시 나는 새마을 사업, 전국공원화 사업을 맡았다가, 민원계장과 공보계장, 새마을계장을 맡았다. 이때쯤 새마을문고 당진지부장도 했었는데 당시 내무부장관상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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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1970년

    뚜렷한 이목구비에 인기 많던 소년

    뚜렷한 이목구비에 인기 많던 소년

    두 번째 사진은 1970년대 경 회사에서 찍은 사진이다.

    회사에서 직원들과 찍은 단체사진인데, 정확한 상황이 떠오르진 않는다. 정리정돈, 환경정화 등의 활동을 했었는데 그때 찍은 사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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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1970년

    차청남상록수교회 원로목사

    “종교 간의 화합 이룬 자리”

    “종교 간의 화합 이룬 자리”

    네 번째 사진은 1970대 쯤, 성도의 집으로 심방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마침 새해라서 새배도 함께 했다. 이때는 집들이 대부분 초가집이고 한복도 많이 입고 다녔다. 옛날에 심방을 다니던 사진들을 보니 강원도 홍천에서부터 옥호교회(순성), 중흥교회(송악), 영광교회(대호지), 상록수교회(송악) 등에서 목회활동 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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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1970년

    마을성극에 참여한 60년 전 막내시절

    마을성극에 참여한 60년 전 막내시절

    네 번째 사진은 1970년 내가 삼봉감리교회 성가대에 처음 섰을 때 찍힌 사진이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삼봉감리교회를 쭉 다녔다. 지난 3월 삼봉감리교회 설립 80주년을 기념해 감사예배가 열렸을 때는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삼봉감리교회를 통해 지역의 교육이 발전했으며, 초락도·장고항·난지섬 등에 교회가 설립되기도 했다. 삼봉감리교회가 그동안 많은 사명을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베풀며 성장하는 삼봉감리교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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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1972년

    백종국정미면 대조리 새마을지도자

    "연애편지 몰래 읽던 군 시절"

    "연애편지 몰래 읽던 군 시절"

    첫 번째 사진은 1972년도 23살 때 찍은 사진이다.

    인천 부평 기와공장에서 5년 간 근무한 나는 군 입대를 앞두고 고향 당진을 찾았다. 이 사진은 입대를 앞두고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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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1973년

    <세 번째 추억사진-최장옥>

    <세 번째 추억사진-최장옥>

    1973년 9월에 고대우체국에 입사했다. 손으로 쓴 간판 등 고대우체국의 옛 모습이 정겹다. 고대우체국 이후 기지시우체국, 신평우체국, 당진우체국, 정미우체국을 거쳐 현재는 석문우체국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내년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19살에 입사했으니 47년 동안 우체국에 몸담은 것이다.

    「최장옥 석문우체국장 / 원복희 전 석문면부녀회장」 앨범 펼치기 →

  10. 1974년

    "커플룩 맞춰 입던 멋쟁이 부부"

    "커플룩 맞춰 입던 멋쟁이 부부"

    첫 번째 사진은 1974년 8월 26일에 찍은 사진으로 어민, 수협직원들과 함께 속리산 문장대로 단합여행을 갔을 때다. 당시 나는 당진군청 수산계 지도선단에서 일했다. 바위 위에서 나름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지금 보니 그저 앳되 보이기만 하다.

    「"커플룩 맞춰 입던 멋쟁이 부부"」 앨범 펼치기 →

  11. 1974년

    <두 번째 추억사진-최장옥>

    <두 번째 추억사진-최장옥>

    지금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사진을 찍은 저곳은 지금의 당진종합운동장 자리에 있던 ‘고대방죽’이다. 엄청 큰 호수였는데, 저곳을 모두 매립해 종합운동장을 지었다. 1974년 무렵 고대우체국 우체부로 일했던 당시에 찍은 사진이다. 당시 우체부들이 입던 유니폼과 모자가 새롭다.

    「최장옥 석문우체국장 / 원복희 전 석문면부녀회장」 앨범 펼치기 →

  12. 1976년

    “청춘 바친 경찰 인생 33년”

    “청춘 바친 경찰 인생 33년”

    첫 번째 사진은 1976년 대전 충남지방경찰청에 발령 받고 가족들과 찍은 사진이다.

    나는 정미면 천의리 출신의 아내와 결혼해 1남2녀를 낳아 길렀다. 이 사진은 큰 딸이 7세, 작은 딸이 6세, 막내아들이 5세 때 찍었던 것으로, 지금은 자녀 모두 서울에 살고 있다. 그래서 주로 명절 때 만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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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1978년

    최병부당진시행정동우회 감사

    "잊지 못할 ‘당진’의 추억"

    "잊지 못할 ‘당진’의 추억"

    두 번째 사진은 1978년 삼화목장에서 3개월 간 연습생으로 있었을 때 동기들과 찍은 사진이다. 짧은 시간의 연수생활이었지만 7명의 동기들과 우정을 나눴다. 이 사진은 동기인 송강호의 군 입대를 기념해서 찍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친구들과 모두 연락이 안 된다. 어디서 사는 줄도 모른다. 당진시대를 통해 이 친구들과 연락이 닿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잊지 못할 ‘당진’의 추억"」 앨범 펼치기 →

  14. 1978년

    이한복공간목련아파트 관리소장

    35년간 근무했던 당진농협

    35년간 근무했던 당진농협

    나는 20살(1978년)때 농협에 입사해 송악농협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그 당시 회사에 젊은 직원이 많아 처녀, 총각 모임인 ‘처총회’가 만들어 지기도 했다. 처총회는 평소 일찍 출근해 주변청소 등 궂은 일을 하고 매월 회비를 모아 불우이웃을 돕기도 했다. 사진 2-1사진은 처총회에서 봉고차를 빌려서 야유회 갔을 때 사진이다. 하지만 처총회에서 이뤄진 남녀는 없었다. 2-2 사진은 당진농협 상무시절이다. 나는 나이에 비해 승진이 빨랐다. 33세에 승진고시에 합격해서 상무로 발령을 받았다. 경제상무로 1년, 신용상무로 2년, 인천직판장에 파견근무로 1년을 근무했다.

    「“보고 싶은 나의 은사님”」 앨범 펼치기 →

  15. 1978년

    세 번째 추억사진

    세 번째 추억사진

    현재 당진문화스포츠센터가 있는 자리에는 원래 당진군농촌지도소(당진시농업기술센터의 전신)가 있었다. 1978년도에 가뭄이 크게 들었는데, 못자리를 살리려고 무진 애썼던 해로 기억한다. 그해 가을에 4-H구락부 경진대회가 열렸고, 모범새싹상을 받았다. 당시 함께 모범새싹상을 받은 사람들과 함께 농촌지도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면천 이정세, 송악 황성옥, 합덕 김정희, 우강 김경숙, 석문 故 이만표, 순성 안재옥, 고대 신태운 씨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가장 오른쪽에 있다.

    「목련꽃 하얗게 흐드러지던 날 아내와 약혼」 앨범 펼치기 →

  16. 1980년

    최재환신평면 초대2리 이장

    "품앗이하며 이웃 간 정 쌓던 시절"

    "품앗이하며 이웃 간 정 쌓던 시절"

    네 번째 사진은 초대리 선후배 및 재종형님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우측부터 최재환, 최철환, 최복환, 문구현, 이두석). 이 사진은 1980년도에 모내기 이후 부산 용두산공원으로 관광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품앗이로 모내기를 해도 15일에서 많게는 20일까지 걸리는 큰일이었다. 지금은 이앙기며 각종 농업기계가 발달해 품앗이 없이도 금방 모내기가 끝나지만 당시에는 이웃과 함께 도움을 주고 받아야 일을 마칠 수 있었다. 그만큼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는 시기였다. 점차 각박해져가는 세상에서 이웃 간의 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사진이다.

    「"품앗이하며 이웃 간 정 쌓던 시절"」 앨범 펼치기 →

  17. 1981년

    홍천표전 당진군농업기술센터 소장

    “월남전 파병의 기억”

    “월남전 파병의 기억”

    두 번째 사진은 1981년 농촌지도소(현 농업기술센터) 당진읍지소에서 일할 때 찍은 사진이다. 맨 오른쪽이 당시 지소장이었던 고광균씨, 그 옆이 지영복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이다. 당시 지영복씨가 당진4-H클럽 당진읍 회장이었다. 그 옆에 박효자 여성부회장. 박효자 부회장의 남편이 당진읍지소에 근무했던 홍종렬씨다. 그 옆에 설악철물 성광용씨다. 4-H클럽이 청소년돕기 일일주점을 해서 만든 수익금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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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1982년

    임긍순송악읍 반촌1리장

    ‘반촌1리 새마을지도자부터 이장까지 32년’

    ‘반촌1리 새마을지도자부터 이장까지 32년’

    첫 번째 사진은 송악읍 가교리 구자일 씨와 찍은 사진이다. 구자일 씨는 농촌지도자회 활동을 하고 있었다. 1982년이니 내가 새마을지도자를 마지막으로 한 해이다. 이듬해부터 반촌1리 이장을 맡아 28년 동안 이장직을 맡아왔다. 당진은 물론 충남 내에서도 내가 제일 오랜 기간 연임한 것이 아닐까 한다.

    「‘반촌1리 새마을지도자부터 이장까지 32년’」 앨범 펼치기 →

  19. 1982년

    <38년 동안 마을일 돌봐>

    <38년 동안 마을일 돌봐>

    한편 이병직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속사경로당의 2대 회장을 맡고 있는 노창수 회장 또한 마을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다. 이병직 전 회장이 “마을의 일꾼”이라고 소개할 정도다. 옛 사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그는 30~40년은 족히 되보이는 ‘새마을지도자증’을 보여줬다.

    “1982년부터 새마을지도자로 일했어요. 서른 몇 살쯤 됐으려나…. 그땐 이 새마을지도자증이 있으면 버스도 공짜로 태워줬다니께.”

    새마을운동 초창기 시절이었다. 일이 많기도 했고 힘들었다. 특히 마을에 신작로를 낼 때는 왜 자기 땅에 길을 내냐면서 반발한 토지주가 노 회장의 목에 끈을 묶어 끌고 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노창수 회장은 “자기 땅에 길을 내서 논을 갈라놓게 생겼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당시엔 나라에서 시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고생하며 만든 길을 지금도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는 걸 보면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 새마을지도자 뿐만 아니라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예비군소대장 등 여러 사회활동을 했던 그는 지난 38년 동안 마을일을 돌봤다. 한여름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고,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손을 가족들에게 숨기면서 눈을 치웠다.

    “손에 얼음이 박힌 것을 빼내며 일했을 정도로 추운데 참 많이 고생했어요.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마을이 참 많이 좋아졌구나 생각이 들어 보람을 느낍니다.”

    「고대면 성산1리 속사경로당 이병직 전 회장(왼)과 노창수 현 회장(오른)」 앨범 펼치기 →

  20. 1982년

    이호천송악고등학교 교사

    “가방 안에서 김치국물 흐르던 시절”

    “가방 안에서 김치국물 흐르던 시절”

    세 번째 사진은 1982년 송악고등학교에 처음 부임했을 때 3학년 학생들에게 사회를 가르치는 모습이다. 영어 교사였는데 선생님이 부족해서 1학년에겐 윤리, 3학년 직업반에는 사회 과목을 가르쳤다. 윤리는 괜찮았는데 사회는 나도 공부해서 가르치는 거라 양심상 힘들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교무부장 선생님이 대신 가르쳤던 기억도 난다.

    「“가방 안에서 김치국물 흐르던 시절”」 앨범 펼치기 →

  21. 1984년

    한창준전 당진군의원

    “모든 운동 중 씨름이 가장 재밌었다”

    “모든 운동 중 씨름이 가장 재밌었다”

    두 번째 사진은 사진에도 나오듯 제21회 전국장사씨름대회에서 찍은 사진이다. 민속씨름이 1984년에 시작됐는데 저 사진은 1986년쯤으로 기억한다. 젊어서 씨름선수생활을 시작한 나는 당시 각 도에서 2명씩 선발한 선수 출신 심판으로 뽑혀 대회에 참가했다.

    「“모든 운동 중 씨름이 가장 재밌었다”」 앨범 펼치기 →

  22. 1985년

    박용길충남모범운전자연합회 당진시지회장

    “당진 시가지를 달리던 택시 행렬”

    “당진 시가지를 달리던 택시 행렬”

    첫 번째 사진은 1985년도 관내 어르신들을 모시고 시가지를 행렬하면서 효도관광 형식으로 진행한 행진 행사 때 찍은 사진이다.

    현재의 당진 시가지 모습이 아닌 낯선 풍경이 되어 버렸지만 당진이 발전해 온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풍경이다. 도로를 행렬하고 있는 차량들은 당시 모범운전자연합회 회원들의 택시들로 차량에는 지역 어르신들이 타고 있다.

    사진 속에 보이는 대한생명 앞 골목으로는 구 당진군청이 반대편 골목으로는 시장오거리가 이어져 있다.

    「“당진 시가지를 달리던 택시 행렬”」 앨범 펼치기 →

  23. 1985년

    송악과 함께한 공직생활

    송악과 함께한 공직생활

    두 번째 사진은 1985년도 김흥태 군수로부터 표창을 받는 사진이다.

    당진군청에 소속돼 지금의 총무과인 내무과 행정계에서 근무할 당시다. 공무원 이라면 시민들에게 깔끔하고 신뢰를 줄 수 있는 깔끔한 옷차림으로 이미지를 굳혀야 한다. 최근 몇몇 공무원들의 경우 티셔츠나 등산복 차림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있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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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1985년

    1985년 대만

    1985년 대만

    이 사진을 찍은 곳은 대만이다. 당진군새마을협의회장을 하던 때였는데 전국 협의회장단 연수로 대만 백화점을 비교, 분석하러 갔다. 이때만 해도 대만은 한국보다 훨씬 경제 발전이 뒤쳐진 상황이었다. 해외 교류가 많지 않던 1985년 당시에는 거리에서 “일본인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 우리는 당당히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며 한국을 알린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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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1987년

    한창준전 당진군의원

    “모든 운동 중 씨름이 가장 재밌었다”

    “모든 운동 중 씨름이 가장 재밌었다”

    세 번째 사진의 가수 김완선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흐뭇하다. 저 당시가 최전성기였던 김완선 씨. 1987년 일본으로 씨름을 전수하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 일본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 일본에도 국기로 불리는 스모가 있으나 일본의 많은 한국인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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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1988년

    한용우송악읍 반촌2리 이장

    지금과 다른 반촌2리의 옛 모습

    지금과 다른 반촌2리의 옛 모습

    첫 번째 사진은 송악읍 반촌리에 위치한 국수봉에서 느티나무를 심으면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당집이 없는데, 지금은 국수봉에 당집이 있다. 당집 바로 앞에 있는 느티나무를 당시 우리가 심었다.

    당시 기지시우체국 직원들과 함께 나무를 식재하고 나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맨 오른쪽 앉아있는 사람이 당시 기지시우체국 차석이었던 이은능 반촌2리 전 노인회장이다.

    나는 기지시우체국을 시작으로 서산시 성연우체국, 합덕우체국, 당진우체국 등에서 통신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1988년 우체국 통신사업이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전환되면서 KT 당진지사와 서산지사에서 30여 년 간 직장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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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1988년

    문영호은석도예 도예가

    한 평생 걸어온 도예인생

    한 평생 걸어온 도예인생

    네 번째 사진은 공방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이다. 내가 가르쳐온 학생들은 벌써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 새삼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첫 공방을 1988년 경기도 안양에서 시작했다. 올림픽 개막식과 공방 개업 날짜가 9월 17일로 같다. 이후 2003년에 고향 근처의 시골 방앗간을 리모델링해 은석도예를 열었다. ‘은석’은 나의 호다. 나는 지금껏 37년 간 도예로 한 길만을 걸어왔다. 판매와 함께 작품 창작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행복하다. 오랜 시간 도예를 해오면서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 도예의 역사가 굉장히 깊은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도예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나경욱 인턴기자 andy67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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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1989년

    ‘사업가’ 한성희”

    ‘사업가’ 한성희”

    세 번째 사진은 1989년 미국 워싱턴DC의 스노우미씨라는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을 때 찍은 사진이다. 가운데 앉아 있는 분이 김현욱 전 의원이다. 맨 왼쪽에 있는 사람이 당진출신 신호범 박사인데 알다시피 미국의 상원의원까지 지낸 유명한 분이다. 이분이 주선해 자매결연을 맺게 됐고 김현욱 의원님과 함께 자매결연단에 포함되어 미국을 방문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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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1990년

    양기철신성대학교 학사지원부 음악 교수

    “문화예술에 바친 한평생”

    “문화예술에 바친 한평생”

    두 번째 사진은 1990년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오페라 창단공연에서 찍은 사진이다. 대전에서 열린 창단공연에는 전 이봉학 대전시장을 비롯해 전 목원대학교 서강복, 임평룡 교수, 현 공주대 백기현 교수 등이 참석해 오페라 창단을 축하했다.

    리셉션 이후 창단공연이 진행됐으며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우리는 관중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고 관중들은 우리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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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1990년

    이금돈한국민속예술협회 당진지회장

    “농악에 내 인생을 걸었다”

    “농악에 내 인생을 걸었다”

    마지막 사진은 군청 개청식 때 공연하던 모습이다. 1990년 초 당진농악대에 입문해 농악을 접한 이후 지금까지 농악은 내 삶의 가장 큰 부분으로 남아 있다. 내년에는 당진 농악의 역사를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하나 더 만들 예정이다.

    「“농악에 내 인생을 걸었다”」 앨범 펼치기 →

  31. 1991년

    이계영정미면 천의1리 경로당 노인회장

    "마을 곳곳을 누비던 집배원"

    "마을 곳곳을 누비던 집배원"

    네 번째 사진은 1991년 우체국 집배원 시절에 동료들과 천의체신부(현 정미우체국)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현재는 4명의 동료들 모두 다 퇴직했고, 체신동우회 모임을 통해 한 달에 한 번 만난다. 지금은 10여 명 정도 모이고 있다. 당시 정미면 출신이 2명, 고대면 출신이 2명 이렇게 4명이 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가 가장 행복했다.

    당시 정미면에는 집배원이 나 포함 2명이었기에 매달 하루만 쉴 수 있었다. 하루에 150가정을 돌았다. 전화기도 없었던 터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없어서는 안 됐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들과 일과가 끝난 뒤 마시는 술 한 잔이 참 좋았다. 우체국 집배원을 33년 동안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많다. 정미면 곳곳을 다녔으니 지금도 어느 집이 누구네 집인지 다 알 정도다. 어느 날은 가스 불을 켜놓고 집주인이 외출한 적이 있어 대신 꺼준 적도 있다.

    한편 내가 건넨 우편을 보고 반가운 소식이라며 기뻐할 땐 나도 정말 기쁘다. 반면 전사 통지를 전할 때면 내 마음도 아프다. 지금은 우편 배달은 거의 하지 않고, 통화나 컴퓨터를 통해 안부를 묻기에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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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1991년

    편종만당진외국인교회 담임목사

    아내와 함께한 꿈만 같았던 43년

    아내와 함께한 꿈만 같았던 43년

    첫 부임지 유천상동교회 1991년 10월 첫 목회지에서 성전을 건축하고 성전봉헌예배를 집례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교회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나는 세종 전의면에서 유천상동감리교회를 개척하고 건축까지 했다. 그래서 첫 부임지였던 유천상동감리교회에 애착이 깊다. 지난해 은퇴하고 교회를 찾아갔을 때 마을 사람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학생들이 성년이 돼 찾아와 펼침막을 걸고 대대적으로 환영해줬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종종 결혼식 주례를 요청받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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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1994년

    양영진팀장

    낚시·등산·여행 등 즐거운 취미생활

    낚시·등산·여행 등 즐거운 취미생활

    첫 번째 사진은 1994년도에 난지섬에서 유람선 사업을 시작하며 찍은 사진이다. 그때 배 이름이 ‘유토피아’였는데, 유토피아의 진수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많은 지인이 자리했다. 배를 타면서 세상을 보는 시선이 넓어졌다. 또한 배를 타고 여러 일을 경험하며 희노애락을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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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1994년

    김근화SK텔레콤 당진중앙대리점 대표

    “봉사를 기쁨으로 여겨”

    “봉사를 기쁨으로 여겨”

    두 번째 사진은 1994년도에 내가 당진 시내에서 ‘선물나라’를 운영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선물나라를 1988년부터 1994년까지 6년 동안 운영했다. 이 곳에서는 악세사리부터 시작해 전자제품까지 판매했다. 당시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모두 가게에 채우겠다는 생각으로 운영했다. 특히 카메라와 카세트가 많이 판매됐는데 당시 마이마이의 인기가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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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1994년

    손범승호서중학교 교사

    “호서중 원빈쌤…아이들과 함께 해 행복합니다”

    “호서중 원빈쌤…아이들과 함께 해 행복합니다”

    전역을 하고 난 뒤에 타지에서 잠시 일을 하다 고향 당진으로 내려왔다. 당진지역의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당진체육관장으로 일했다. 이 사진은 그 때 도장을 다니던 소연이, 규연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때 관원이 100여 명이 넘었다. 지금도 제자들이 스승의날에 찾아와 카네이션을 주곤 한다. 지난 15일에도 제자들을 만나 술 한 잔 마시기도 했다. 그럴 때면 참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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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1994년

    “왜 서명을 안 하지?”

    “왜 서명을 안 하지?”

    적십자의 주된 업무는 구호물품 배분이다. 배분을 하면서 확인 차 자필 서명을 받는데, 많은 분들이 서명하는 것을 주저하곤 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글을 몰라’ 서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많이 안타까웠다. 그 후부터 나는 문해교육을시작했다. 이 사진이 1994년에 제2기 한글교육을 수료하던 당시 모습이다. 친구이자 동료인 한화자 전 적십자 당진지구협의회장이 흔쾌히 운영하던 학원 강의실을 빌려줬다. 그 덕에 오전 시간 동안 한글을 가르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당진시 가정복지과(현 사회복지과)와 여성의전당 등의 도움으로 문해교육을 할 수 있었고 지금은 문선이 교장의 권유로 해나루시민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 마음 놓고 공부하게 해주세요”」 앨범 펼치기 →

  37. 1995년

    이완선순성농혐 조합장

    “헬기 타고 날아온 감사 서한문”

    “헬기 타고 날아온 감사 서한문”

    두 번째 사진은 1995년 32사단장에게 김동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감사 서한문을 받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진군청에 재직하고 있을 때로 순성예비군중대 본부대지 300여 평을 기증해 감사 서한문을 받았다. 이때 사단장이 헬기를 타고 직접 와서 놀라움과 자랑스러움이 교차했다. 사단장이 직접 방문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다.

    「“헬기 타고 날아온 감사 서한문”」 앨범 펼치기 →

  38. 1995년

    카세트 들고 전국 다녔던 그 시절

    카세트 들고 전국 다녔던 그 시절

    1995년 합덕읍민회관에서 합덕터미널로 향하는 도로 확포장 공사할 때의 모습이다. 직접 현장에서 측량과 설계, 검측, 강도시험 등 공사 감독해 힘들었다. 모래자갈을 리어카로 퍼나르며 콘크리트 만들어 도로포장하기도 했다. 나는 대부분 도로과와 도시과에서 근무했다. 호서고 일대와 원도심만 있던 당진에서 지금의 당진이 되기까지 도시개발사업을 실시하고 도로 건설을 이끌어 왔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카세트 들고 전국 다녔던 그 시절」 앨범 펼치기 →

  39. 1996년

    채규흥해나루시민학교 중등부 교사

    "학창시절을 함께한 홍선이"

    "학창시절을 함께한 홍선이"

    다섯 번째 사진은 1996년도에 유통관련해서 미국으로 연수 갔을 때 동료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다. 이때는 우리나라에 대형 농산물 유통 도매시장이 없었던 때라 신기했었다.

    「"학창시절을 함께한 홍선이"」 앨범 펼치기 →

  40. 1996년

    구현회당진1동 읍내7통 노인회장

    "빛바랜 흑백사진 속 추억"

    "빛바랜 흑백사진 속 추억"

    다섯 번째 사진은 1996년 서산에 위치한 음암초등학교에서 교감으로 재직할 시절에 찍힌 사진이다. 이날이 스승의 날이어서 책상에 카네이션 바구니가 놓여있는 것 같다. 당시 나는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교육자, 참된 교육을 실천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43년 6개월 동안 교직생활을 하면서 잊지 못할 제자들이 참 많다. 오랜 시간 교사로 활동한 만큼 제자들의 직업도 다양하다. 정필모 KBS 보도부장과 홍승권 MBC 광고부장 등 제자들이 성공한 모습을 보면 반갑고 뿌듯하다. 제자들이 모두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 구현회 당진1동 읍내7통 노인회장

    ·1934년 정미면 매방리 출신(현 83세)

    ·정미초, 당진초, 음암초,

    운산초에서 43년 6개월 간 근무

    ·전 목화아파트 동대표 회장

    ·현 당진1동 노인분회 부회장

    ·현 당진1동 읍내7통 노인회장

    「"빛바랜 흑백사진 속 추억"」 앨범 펼치기 →

  41. 1997년

    이병훈전 우강면이장단협의회장

    [이병훈 전 우강면이장단협의회장] 마을을 위해 봉사했던 지난날의 시간들

    [이병훈 전 우강면이장단협의회장] 마을을 위해 봉사했던 지난날의 시간들

    첫 번째 사진은 1997년 우강농협에서 주관해 선진농법을 배우러 일본 연수를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안경을 써도 잘 보이지 않으니 큰 문제다. 장소가 어딘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평생 농사만 지어온 나인데 일본의 건답직파 방식의 농법은 잘 모르던 것이었다. (맨 오른쪽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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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1997년

    “청춘 바친 경찰 인생 33년”

    “청춘 바친 경찰 인생 33년”

    세 번째 사진은 1997년에 미국의 뉴욕 경찰청 상황실에서 찍은 사진이다.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이 조선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이다. 이때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서 실무적인 경찰 업무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또한 UN본부 등을 관람하곤 했다.

    「“청춘 바친 경찰 인생 33년”」 앨범 펼치기 →

  43. 1998년

    김낙찬대우광고산업 대표

    “광고와 함께한 30여 년의 세월”

    “광고와 함께한 30여 년의 세월”

    두 번째 사진은 당진에서 한국광고사업협회 충청남도지부 하계 회원 가족 체육대회 때 찍은 사진이다. 1998년도에 촬영한 이 장소는  난지도 수련마을의 해변가다. 당시 당진군지부 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해 체육대회에서 당진지부가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을 돌아보니 벌써 광고사업에 뛰어든 지도 30여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광고와 함께한 30여 년의 세월”」 앨범 펼치기 →

  44. 1998년

    윤세중윤이벤트 대표

    “연예인과 함께 했던 젊은 시절”

    “연예인과 함께 했던 젊은 시절”

    두 번째 사진은 1998년도 KBS 전국노래자랑에 참가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멋진 분장은 아니지만 사진이 꽤 잘나왔다. 이 때 열심히 노래를 불러 장려상을 받았다. 이전 스탠드바에서 MC를 볼 때 내 모습을 녹화 해 집에서 보곤 했다. 모니터링을 하면서 잘못된 점과 잘하는 점을 분석해 내 장점을 살려 나갔다.

    「“연예인과 함께 했던 젊은 시절”」 앨범 펼치기 →

  45. 1998년

    김낙찬대우광고산업 대표

    “광고와 함께한 30여 년의 세월”

    “광고와 함께한 30여 년의 세월”

    세 번째 사진은 1998년도  소난지도에서 자연보호 헌장탑 제막식 때 찍은 사진이다. 저 비석은 내가 사비를 들여 직접 제작한 작품이다. 무거운 비석을 난지도까지 배를 타고 옮기는 작업이 쉽지 않아 기억에 남는다.

    「“광고와 함께한 30여 년의 세월”」 앨범 펼치기 →

  46. 1998년

    “새삼 새로운 지난 시간들”

    “새삼 새로운 지난 시간들”

    네 번째 사진은 1998년 청와대에서 열린 농림수산 주요인사 오찬간담회 때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목장을 30년간 운영했던 경력이 있는 만큼 낙농과 관련된 많은 활동을 해왔다. 당진군 한국낙농육우협회와 당진낙우연합회 회장을 비롯해 충청남도 지회장, 한국낙농육우협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낙농인의 권익보호를 위해 힘써왔다.

    정리 전수진 인턴기자 jsj1510@gmail.com

    「“새삼 새로운 지난 시간들”」 앨범 펼치기 →

  47. 1999년

    18살부터 교직생활 이어와

    18살부터 교직생활 이어와

    1999년 당진고등학교에서 퇴임식을 할 때 찍힌 사진이다. 18세에 일찍이 교사생활을 시작해 40년 간 교직에 몸담았다. 퇴임을 2년 앞두고 당진여고에 부임했다. 부임 후 당진여고가 남녀공학으로 전환되면서 당진고등학교가 됐다. 퇴임식은 강당에서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치러졌다. 학생대표가 나와서 꽃다발을 주고 학생들이 박수로 축하했다. 교단을 떠나려니 기분이 시원섭섭했다.

    「즐겁고 재미있었던 동물농장」 앨범 펼치기 →

  48. 1999년

    손범승호서중학교 교사

    “호서중 원빈쌤…아이들과 함께 해 행복합니다”

    “호서중 원빈쌤…아이들과 함께 해 행복합니다”

    나와 함께 일하는 호서중학교 선생님들이다. 아이들이 좋아 호서중 교사 공채 시험을 보고, 1999년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벌써 23년째다. 이 사진을 SNS에 올리며 ‘교사가 행복하면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글을 남겼다.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이 행복하게 일하고, 덩달아 아이들도 행복한 호서중이 됐으면 한다.

    「“호서중 원빈쌤…아이들과 함께 해 행복합니다”」 앨범 펼치기 →

  49. 2000년

    하상준전 당진군 생활체육협의회장

    "체육인의 삶 한 순간도 후회한적 없어"

    "체육인의 삶 한 순간도 후회한적 없어"

    첫번째 사진은 당진군축구연합회장을 지낼 당시인 지난 2000년 9월 일본과 생활체육 축구 교류를 가서 찍은 사진이다. 맨 왼쪽에 있는 이가 안상수 전 인천광역시장이다. 안상수 전 시장은 이 당시 인천시 축구협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 옆은 김현태 전국축구연합회 사무총장이다.

    「"체육인의 삶 한 순간도 후회한적 없어"」 앨범 펼치기 →

  50. 2000년

    김석우삼환운수 주 대표

    “포기하지 않으면 꿈 이룰 수 있어”

    “포기하지 않으면 꿈 이룰 수 있어”

    세 번째 사진은 인천공항이 개항할 때 공항 가는 리무진버스를 운행하던 시절에 리무진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당시 삼환운수, 삼환교통, 리무진버스 3개 사업을 병행했다. 운수사업은 어느 날 한 부부가 10m 정도 떨어져 택시에 합승하는 모습을 보고나서 시작하게 됐다. 그 때는 한 사람당 운행비용을 받아 1000원이면 갈 거리를 2000원을 주고 가야했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운수사업을 시작했다.

    「“포기하지 않으면 꿈 이룰 수 있어”」 앨범 펼치기 →

  51. 2000년

    이성태제13기 민주평통당진군협의회 회장

    “인생을 증명하는 삶의 흔적”

    “인생을 증명하는 삶의 흔적”

    네 번째 사진은 2000년대 중반 민주평통당진군협의회 회장 임명장을 받고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서 촬영한 것이다.

    「“인생을 증명하는 삶의 흔적”」 앨범 펼치기 →

  52. 2001년

    군에서 보낸 지난 청춘을 꺼내어보다

    군에서 보낸 지난 청춘을 꺼내어보다

    네 번째 사진을 찍은 건 2001년 무렵인 것 같다. 2대대 테니스장에서 열린 친목 테니스 대회였다. 맨 왼쪽에 서 있는 김찬원 합덕읍대장이고 세 번째로 서있는 사람이 김종국 석문읍대장이다. 이 중에는 향토예비군 중대장을 퇴임하고 지역사회에서 각자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비교적 최근 사진인데도 벌써 10년이 더 된 일이다.

    「군에서 보낸 지난 청춘을 꺼내어보다」 앨범 펼치기 →

  53. 2001년

    유병기대호지농협 차장

    "농협에서 보낸 20년을 돌아보며"

    "농협에서 보낸 20년을 돌아보며"

    네 번째 사진은 폭설피해 현장을 복구하던 때다. 내가 농협에 입사한 후 두 번의 폭설피해가 발생했다. 2001년에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사진도 찍지 못했는데 2009년 대호지에서 폭설피해 때는 사진 한 장을 남길 수 있었다. 당시 고생을 많이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농협에서 20년 동안 근무해 이제 곧 다가올 안식휴가를 기쁜 마음으로 즐길 예정이다. 앞으로도 농협에서 농민들의 삶을 뒷받침 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농협에서 보낸 20년을 돌아보며"」 앨범 펼치기 →

  54. 2002년

    이복희해맞이 전통떡, 석문면생활개선회장

    ‘나의 떡 케이크’ - 이복희(해맞이 전통떡, 석문면생활개선회장)

    ‘나의 떡 케이크’ - 이복희(해맞이 전통떡, 석문면생활개선회장)

    세번째 사진은 남편의 51번째 생일날 내가 만든 떡 케이크로 축하해줄 때 사진이다. 서울에서 시골로 시집와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2002년에는 ‘해맞이 전통떡’을 시작해 꿈을 펼칠 수 있었다.

    기존의 20여 종류의 떡과 새로 개발한 15개 종류의 떡을 만들고 배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일이 됐다. 그리고 지금도 공주대로 떡 제조방법 등을 배우러 다닌다.

    나의 취미이자 직업이 된 떡 만들기를 가장 많이 후원해 주는 사람은 다름아니라 남편이다.

    말을 타고 있는 사진은 남편의 동창모임에 따라갔을 때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 주던 사람이 강요한 포즈였지만 다정해 보여 내가 아끼는 추억이 됐다.

    이 복 희 (53)  / 석문면 삼봉3리 748

    해맞이 전통떡, 석문면생활개선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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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2002년

    하상준전 당진군 생활체육협의회장

    "체육인의 삶 한 순간도 후회한적 없어"

    "체육인의 삶 한 순간도 후회한적 없어"

    두번째 사진은 지난 2002년 2월15일 2002월드컵 D-100일 기념으로 열린 전국2002축구경기 출정식 모습이다. 요새 월드컵으로 나라가 축구열기에 휩싸여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축구’라는 종목의 위대함을 느낀다. 축구가 전국민을 하나로 모으고 단합할 수 있게 한다.(맨 오른쪽)

    「"체육인의 삶 한 순간도 후회한적 없어"」 앨범 펼치기 →

  56. 2002년

    송민수석문청년연합회 전 회장

    “지렁이 잡아 용돈 벌던 시절”

    “지렁이 잡아 용돈 벌던 시절”

    세 번째 사진은 2002년에 5년간 일하던 수협을 떠나 처음으로 ‘영진호’의 선장이 되던 날 찍은 기념사진이다. 첫 뱃일을 시작하게 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깔끔하게 차려입고 사진을 찍었던 생각이 난다.

    ‘영진호’는 원래 아버지가 몰던 배였다. 아버지는 소유하고 있던 땅을 처분해 목선 ‘영진호’를 구입하셨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의 배를 물려받게 되면서 2대 ‘영진호’ 선장으로 지금까지 장고항 앞바다를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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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2002년 이야기

    차원병당진읍 읍내리 정원식당 대표

    검정고무신에 새겨 논 생활신조 - 차원병(당진읍 읍내리 정원식당 대표)

    검정고무신에 새겨 논 생활신조 - 차원병(당진읍 읍내리 정원식당 대표)

    세 번째 사진은 그간의 땀과 노력으로 빚어낸 산물이다. 이제는 주위를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지금도 검정고무신에 새겨 논 내 생활신조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차 원 병 / 당진읍 읍내리 정원식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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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2003년

    문화예술과 함께한 나의 삶

    문화예술과 함께한 나의 삶

    첫 번째 사진은 2003년 창작 동화오페라 “인어공주”에 출연했을때의 사진이다. 천안 백석대학교 작곡과교수이자 나의 중앙대학교 선배인 정덕기 교수의 작품으로  경기문화재단에서 무대제작지원금으로 창작되었다. 이 오페라에서 나는 용왕역을 맡아서 열연했다.

    공연이 끝나고 출연진과 당시 경기도립팝스오케스트라 지휘자였던 최선용 선생과 함께 기념촬영을 촬영하기도 했다.

    「문화예술과 함께한 나의 삶」 앨범 펼치기 →

  59. 2003년

    홍승남순성면 갈산리

    “절인 배추 사업, 갈산리가 원조”

    “절인 배추 사업, 갈산리가 원조”

    첫 번째 사진은 현재 운영 중인 메추리 농장의 사진이다. 2003년도부터 운영한 메추리 농장은 현재 100평 가량의 부지에서 약 10만마리의 메추리가 매일 같이 ‘황금알’을 쏟아낸다.

    아침마다 농장의 문을 열면 수북하게 쌓인 메추리 알을 보며 나름 대로의 ‘행복’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최근 높아진 사료가격으로 어려움이 크다. 그래도 메추리에 대한 애착이 나에게 힘을 주고 있어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절인 배추 사업, 갈산리가 원조”」 앨범 펼치기 →

  60. 2003년

    “추억과 긍지의 흔적”

    “추억과 긍지의 흔적”

    세 번째 사진은 2003년도에 당진군상공회 19대 회장으로 취임 후 신효범 박사와 워싱턴주 하원앞, 6.25 참전 기념탑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신효범 박사는 내가 존경하는 분으로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성공하신 분이다. 신효범 박사가 집필한 <공부 도둑놈, 희망의 선생님>은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추억과 긍지의 흔적”」 앨범 펼치기 →

  61. 2003년

    최대성석문농협 조합장

    “농협과 함께했던 젊은 날”

    “농협과 함께했던 젊은 날”

    네 번째 사진은 2003년 고대농협에 재직할 때 고대면 이장들과 베트남 여행을 갔을 때다. 사진 속 장소는 베트남의 하룽베이인데 3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풍경이 장관이었다. 예전 대한항공 광고에서도 소개되었던 장소이다.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을 때인데 그 때의 멋진 경관이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다.

    「“농협과 함께했던 젊은 날”」 앨범 펼치기 →

  62. 2003년

    임종국전 충청남도당진교육장

    "당진 학생에게 금메달을 걸어주다"

    "당진 학생에게 금메달을 걸어주다"

    네 번째 사진은 2003년 제32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찍은 사진이다. 금메달을 걸어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이 대회는 5일간 제주도에서 개최됐다. 큰 대회였기에 당진에서 출전할 선수를 데려가야했다. 당시 교육장이었을 때라 체육훈련을 강화했다. 당진이 항상 하위권에서 머물다 체육훈련 강화를 통해 중위권으로 오르기도 했다.

    이때 투포환 종목에서 합덕초에 재학했던 김현배 학생과 함께 제주도에 가서 대회에 출전했는데 1·2차시 모두 김현배 학생이 1위를 차지해 금메달을 받게 됐다. 마침 방송에 내 이름을 부르며 투포환 금메달을 수여하라고 해 너무 기뻤다. 행복한 나머지 이 사진이 어떻게 찍혔는지도 기억이 안나지만 이 사진은 내가 길이 가지고 갈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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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2003년

    박권옥대한노인회 우강면분회장

    단체여행 다니던 그 시절 그리워

    단체여행 다니던 그 시절 그리워

    네 번째 사진은 2003년에 새농민상 본상을 수상하며 찍은 기념사진이다.

    새농민상은 농협중앙회에서 주는 상으로, 1년에 전국에서 부부 5팀을 선정한다. 나는 1995년 이달의 새농민으로 선정된 이후 2003년에 본상을 수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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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2005년

    구본환면천감리교회 목사

    “충남에서 최초로 설립된 교회”

    “충남에서 최초로 설립된 교회”

    네 번째 사진은 군산 반석교회에서 목회생활을 할 때다. 700평 규모의 교회 건물을 새로 짓고 성전봉헌 예배를 드릴 때 모습이다. 봉헌 예배를 드렸던 것이 2005년 5월이었는데 8월에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져 목회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조금씩 몸이 회복되어 2006년 당진에서 다시 목회생활을 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앞으로도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충실히 목회 활동을 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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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2005년 이야기

    조지행석문면 교로2리

    "30여년 전 왜목, 그리고 나"

    "30여년 전 왜목, 그리고 나"

    두번째 사진은 20여년 전, 노를 저어 운행하는 전마선을 타고 ‘물 보러’ 가면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어민들의 유일한 운송수단이었던 전마선은 당진화력이 들어서면서 보상을 받고 폐선시켜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다.

    세번째는 30여년 전 동네에서 어버이날 야유회를 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그때 왜목의 물은 정말 깨끗했다. 멀리 노적봉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속엔 이미 고인이 된 분도 있고 엄마 무릎에 올라 앉은 천진한 아이들은 지금 모두 30대 가장이 되어 있다.

    불과 20~30년 사이에 내 고향 왜목은 참 많이도 변했다. 풍성했던 어장은 사라지고 위락시설들이 들어선 지금 왜목의 모습은 평생 물질만 하고 살아 온 나에겐 아직도 낯선 풍경이다. 허나 어쩌랴. 흘러간 세월은 돌이킬 수 없는 법. 하지만 풍성했던 시절의 추억은 나의 노후를 채워 줄 소중한 벗이 될테니 그리 아쉬워만 할 일도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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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2006년

    김홍수정미면 수당리 부녀회장·정재능 이장 부부

    “물난리에서 건진 소중한 사진”

    “물난리에서 건진 소중한 사진”

    두 번째 사진은 남편이 충남교육연수원 일반직 통합 실무자 직무연수에 참여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교육에서 시험도 보고 등수도 매겼는데 꽤나 성적이 높았었다. 남편은 당진군청 지역경제과, 사회복지과 등에서 근무하다 2006년에 퇴직해 지금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농사를 직접 지어보니 농민들의 어려움을 알게 됐다. 앞으로 농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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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2007년

    이길조면천농협 조합장

    "조합장으로 고향지키며 살아온 세월"

    "조합장으로 고향지키며 살아온 세월"

    두 번째 사진은 2007년 제88주년 나라사랑 민족사랑 3·1절 기념행사로 열린 장한 무궁화인상을 수상 후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농협 경제사업과 경영을 잘 했다고 받은 상이었는데 무척 뜻깊었다. 농협에서 일하면서 대통령상, 종합업적평가 도단위 1위 수상 등 그동안 많은 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모두 직원들과 조합원들의 도움과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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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2008년

    돌아갈 수 없기에 소중한 시간

    돌아갈 수 없기에 소중한 시간

    네번째 사진은 2008년도 마카오에서 열린 아시아줄다리기 총회에서 찍은 사진이다. 2010년 당진에서 제8회 아시아줄다리기를 유치하기 위해 임원단과 아시아연맹 회장 위엔따이를 만났던 때다.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에 참여하실 독자를 기다립니다. 전화:355-5440 / 010-9401-8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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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2008년

    이완선순성농혐 조합장

    “헬기 타고 날아온 감사 서한문”

    “헬기 타고 날아온 감사 서한문”

    네 번째 사진은 2008년 순성농협 대의원들과 일본 후쿠오카 뱃부농협을 견학할 때 찍은 사진이다. 선진지 견학차 농산물 판매시설을 방문했다. 그 중 자동포장시스템이 정말 잘 돼있던 기억이 난다. 지역 농가들이 일손 부족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어 자동포장시스템에 더 눈길이 갔던 것 같다. 한편으로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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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2008년

    “나의 삶과 함께한 체육”

    “나의 삶과 함께한 체육”

    다섯번째 사진은 2008년도 당진경찰서 태권도 단승 심사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무도사범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경찰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사진 첫째줄 왼쪽부터 전 당진태권도협회 박문규 전무이사, 전 당진태권도협회 최기택 회장, 이병로 총관장의 모습이 함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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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 2009년

    “어느새 50대 중반, 세월무상 느껴”

    “어느새 50대 중반, 세월무상 느껴”

    세 번째 사진은 지난 2009년 12월 서산 대산지역 선박에서 유출된 유류(방카시유)가 우리시 난지섬 지역을 오염시켜 방제작업을 갔을 때다. 조그마한 부주의로 자연환경이 훼손되고 많은 사람들(연 인원 6천5백여명)을 동원해서 방제작업을 해야 하는 등 곤경에 처하게 만든 사건이다. 조그마한 일이라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네 번째는 지난 9월 오스트리아 슈피텔라우 소각장 견학을 위해 방문했을 때 충남도 및 시군 관계자들과 찍은 사진이다. 훈데르트 바세르라는 세계적 건축가가 디자인한 소각장이다.

    쓰레기 소각장을 ‘자연과 인간이 조화되는 행복한 공간’이라는 컨셉으로 디자인했고, 도시 중심부 한복판에 위치한 것이 특징이다. 쓰레기 소각장은 주민생활공간과 멀리 떨어진 곳에만 설치해야 된다는 우리나라 정서와는 대조적인 것을 느꼈다. 또 소각장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비롯한 각종 재활용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우리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오른쪽 네 번째가 유재호 환경과장. 가운데(회색자켓)는 추한철 충남도 환경녹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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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2009년

    강우영바르게살기운동 당진군협의회장

    “사진은 사람의 인생을 반영한다”

    “사진은 사람의 인생을 반영한다”

    마지막 사진은 2009년 바르게살기운동 당진군협의회장 취임식을 갖던 때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의식주 생활에 급급한 나머지 충효사상은 물론 윤리와 도덕 교육이 소외받게 됐다. 나라에는 충성, 부모에게는 효도, 친구 간에는 우정을 쌓아 윤리와 도덕이 바탕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한 게 바로 바르게살기운동이다. 그렇게 나름에 소신을 갖고 28년간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에서 활동해 왔다.

    /정리 김창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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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2010년 이야기

    ‘사업가’ 한성희”

    ‘사업가’ 한성희”

    첫 번째 사진은 방문단이 함께 찍은 사진인데 왼쪽에서 두 번째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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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2010년 이야기

    ‘사업가’ 한성희”

    ‘사업가’ 한성희”

    두 번째 사진은 아리따운 두 여성과 같이 찍었는데 저들은 북한에서 온 이들이다. 당시는 군사정권 시절이어서 북한은 물론 공산권 국가에는 방문 자체가 불가능했었는데 우리는 김현욱 전 의원님이 국회에서 외교 관련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계셔서 러시아를 방문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북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무척 두려운 일이었는데 북한여성들과 찍은 사진이 있다니 고마운 일이다. 두 번째 사진에 같이 찍힌 왼쪽에서 두 번째 남자는 서진건설의 김응일 전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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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2010년 이야기

    김옥현전 당진군의원

    “나를 두 번이나 구한 내 아내”

    “나를 두 번이나 구한 내 아내”

    세 번째 사진은 당진축협 이사를 하면서 제주도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언제적인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같이 찍은 사람이 당진축협 구본철이다. 당시에는 계장이었다. 목장을 하면서 당진축협에서 활동하고 그를 토대로 각종 사회활동을 했다. 특별한 기술이나 경험도 없었던 아내와 나는 직접 모든 것을 다하고 배우고 다니며 목장을 경영했었는데 이제는 누가 내가 목장에 대해 물어도 잘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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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2011년

    한천희한국무용지도자협회 당진시지부 지부장

    "춤 출 때마다 생각나는 아버지"

    "춤 출 때마다 생각나는 아버지"

    두 번째 사진은 중요무형문화제 제 92호 태평무를 이수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2011년 3월 쯤으로 기억한다. 중요무형문화제를 이수하기 위해 4년간 준비기간을 거쳤다. 충청남도에서 태평무를 이수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딱 2명뿐이다. 이수증을 받을 때 그동안 고생했던 일들이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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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2011년

    박상념새마을지도자 당진2동 협의회장

    “돈으로 살 수 없는 나눔의 기쁨”

    “돈으로 살 수 없는 나눔의 기쁨”

    두 번째 사진은 2011년도 새마을협의회장으로 활동해 이철환 시장에게 공로패를 전달받았을 때 찍은 사진이다. 공로패를 받게 된 이유가 새마을을 잘 이끌어 나가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새마을협의회장으로 일하면서 힘든 일도 있었지만 즐겁고 보람찬 일도 많았다. 12년 동안 새마을협의회에서 일했는데 아직도 배울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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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20대 후반

    김영석전 당진유도사랑회 회장

    “유도만 보고 달려온 외길 인생”

    “유도만 보고 달려온 외길 인생”

    첫 번째 사진은 용인대 유도학과를 졸업하고 공주유도관에서 사범생활을 하던 20대 후반의 모습이다. 당시 공주 경찰서에서 유도시범을 보이는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손기술 중의 하나인 띄어치기 시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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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2011년 이야기

    정덕순송악로타리클럽 회장

    [정덕순 송악로타리클럽 회장] 4-H와 송악로타리클럽 활동

    [정덕순 송악로타리클럽 회장] 4-H와 송악로타리클럽 활동

    첫 번째 사진이 당진 4-H 활동을 할 때 찍은 사진이다. 뒷줄에서 왼쪽 첫 번째가 나다. 당시 송악읍 도원리에서 작업을 하면서 찍었는데 앞줄에 김충남 농업기술센터 과장(맨 왼쪽)을 비롯해 여러 인물들이 나와 있다. 4-H가 저 당시에만 해도 농촌지역의 젊은이들을 하나로 모으는 중요한 운동이었는데 시대의 변화로 옛 위상만 못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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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2011년 이야기

    김영석전 당진유도사랑회 회장

    “유도만 보고 달려온 외길 인생”

    “유도만 보고 달려온 외길 인생”

    두 번째 사진은 간판에서도 알 수 있듯 충남경찰국무도장의 모습이다. 당시 유도 교관으로서 활동해 왔다. 아직도 나에 대해서 호서고등학교 체육교사로서만 기억 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경찰 유도 교관 출신이라는 사실에 많이들 놀라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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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2011년 이야기

    박선영송악읍 고대어촌계장

    “23살의 나와 아내의 모습”

    “23살의 나와 아내의 모습”

    두 번째 사진은 당진수협 임원들과 함께 여수 오동도에서 찍은 사진. 왼쪽부터 조덕행 전 교로2리 이장, 강무식 전 수협 전무, 강복환 당시 수협 조합장 순이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나다. 내가 예비군소대장을 시작으로 새마을지도자, 어촌계장 등을 두루 맡아왔었는데 수협 대의원은 10년 동안 맡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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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40년 전

    김봉규당진고구마연구회장

    "만수예식장서 결혼하던 32년 전 그날"

    "만수예식장서 결혼하던 32년 전 그날"

    두 번째 사진은 지금은 서해대교가 생겨 육지와 연결된 행담도에서 찍은 사진이다. 벌써 40년 전이니 삽교천이 막히기도 전이다. 당시만해도 행담도는 오지 중에 오지였다. 매산리 맷돌포 나루터에서 아는 사람 배를 타야 건너 갈 수 있었다. 집도 몇 채 없었다. 사진 속에 내가 들고 있는 건 나무뿌리다. 꼭 뱀같이 생겨서 들고 찍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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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젊었을 적

    박선영송악읍 고대어촌계장

    “23살의 나와 아내의 모습”

    “23살의 나와 아내의 모습”

    세 번째 사진은 정확한 연대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젊었을 적 내 사진이 담겨 있어 신문에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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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2011년 이야기

    이길조면천농협 조합장

    "조합장으로 고향지키며 살아온 세월"

    "조합장으로 고향지키며 살아온 세월"

    세 번째 사진은 전국 RPC(미곡종합처리장) 회장들과 함께 호주로 견학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 충남RPC 회장을 맡았었다. 옆에 앉은 이가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다. 견학 후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 나갔었는데 그때 잡아 올린 게가 하도 커서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옆에 소주 팩이 보이는데 한국에서 사가지고 나갔다. 역시 해외에 나가봐도 우리술 만한 것이 없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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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 불혹의 나이

    채수향한국자유총연맹 당진군지부 전 여성회장

    “불혹의 나이를 바친 자유총연맹 여성회”

    “불혹의 나이를 바친 자유총연맹 여성회”

    마지막 사진은 불혹의 나이를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자유총연맹 당진군지부 여성회에서 일일찻집을 열고 찍은 단체 사진이다. 이제는 여성회장직을 이임했지만 자유총연맹 여성회에서 활동했던 추억들과 마음은 아직도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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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80년대 후반

    한창준전 당진군의원

    “모든 운동 중 씨름이 가장 재밌었다”

    “모든 운동 중 씨름이 가장 재밌었다”

    네 번째 사진은 삼익가구 씨름단에서 진행된 심판연수를 받으며 찍은 사진이다. 연도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80년대 후반일 것이다. 민속씨름이 전성기를 구가하다 최근엔 인기가 예전만 못해 늘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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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2011년 이야기

    강운선당진시 읍내동

    “35년간의 당진 공무원 생활”

    “35년간의 당진 공무원 생활”

    네 번째 사진은 함께 퇴직하는 공무원들과 해외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 퇴직 예정인 공무원들이 부부동반으로 호주와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왔다. 11월8일 여행을 출발한 날짜를 기념해 118친목회를 만들기도 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가는 곳마다 온천물이 솟았다. 자연과 어우러진 야외결혼식장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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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2012년

    김용열월드헬스클럽 대표

    "헬스로 땀 흘리던 젊은 시절"

    "헬스로 땀 흘리던 젊은 시절"

    네 번째 사진은 2012년도에 열린 제46회 충남보디빌딩 선발대회 때 개회사를 선포하며 찍은 사진이다.

    충남보디빌딩 선발대회를 당진에서 개최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대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이를 기반으로 올해 전국규모의 미스터&미즈 코리아 선발대회를 당진에서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전국대회가 지역에서 열린 유례가 없었다. 그만큼 힘들었지만 지역에서 전국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해 성공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게 큰 자랑거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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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20대 초반

    신현국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 당진3동 위원장

    “평생을 함께한 시곡동 선·후배들”

    “평생을 함께한 시곡동 선·후배들”

    첫 번째 사진은 20대 초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당진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상경했던 나는 공장에 취직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고향을 다시 찾은 나는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했다.

    마을 친구들과도 다시 재회해 서로 농사일도 돕고 고된 농사일이 끝나면 술한잔 기울이던 여유로운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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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스무살 무렵

    김종성 전 고대면농업경영인회 회장영주권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그 시절

    김종성 전 고대면농업경영인회 회장영주권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그 시절

    첫 번째 사진은 스무살 무렵 소를 타고 이동하는 사진이다. 당시 농가에는 소를 한 마리씩 키웠는데 중요한 이동수단이었다. 소에게 마차도 끌게 하고 사진 속 나처럼 타고 다니기도 했다. 이 소는 우리 마을의 마지막 소였다. 이 소를 팔고나서 소의 역할을 경운기가 대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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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2012년 이야기

    이진섭석문면 교로2리

    “바다는 삶의 터전”

    “바다는 삶의 터전”

    첫 번째 사진은 울릉도에 놀러가 찍은 사진으로 기억된다. 장고항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내게 바다는 밭이자 논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한해 농사를 수확하듯 바다도 마찬가지다. 각종 수산물이 철에 따라 가득이다. 농민에게 토지가 중요하 듯 내게는 바다가 중요하다. 내가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준 고마운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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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21살 때

    장용희대호지 적서리

    “명절 땐 열흘 밤낮 머리 깍아”

    “명절 땐 열흘 밤낮 머리 깍아”

    두 번째 사진은 21살 때 처음 일을 시작한 정미이발관 앞에서 친구(왼쪽)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18살 때부터 이발관 일을 시작했는데 동네에 한 사장님께 일을 배워 20년 가까이 이발관을 운영했다. 당시에는 머리를 깍고 나면 서비스로 막걸리를 대접했는데 지금은 그런 문화가 사라졌다. 옛날에는 명절이 다가오면 열흘 전부터 밤낮으로 머리를 잘라야 했다. 형편상 평소에 머리를 깍지 못해 명절 때 손님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1978년에 대호지면 적서리로 이사와서는 새마을지도자를 맡으며 대호지 12개 마을을 다니며 이용 봉사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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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신입사원 때

    홍승란읍내동 옹기촌 대표

    “5년간 비밀스러운 연애 끝에 결혼”

    “5년간 비밀스러운 연애 끝에 결혼”

    두 번째 사진은 현대건설 본사에 취직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신입사원 때 경복궁 돌담길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사보팀에서 신입사원 사진 콘테스트라는 코너를 기획했었다. 이 사진이 콘테스트에 당선돼 회사 벽보에 큼직하게 걸리고 사보에도 실렸던 기억이다.

    이때는 집안에서 하루빨리 선을 보라고 권유하던 시기였다. 사실 남편과 집안 몰래 사귀고 있던 때라 선자리를 모두 거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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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 2012년 이야기

    윤기순사 대한노인회 합덕읍분회 분회장

    “45년간 보람됐던 교직생활”

    “45년간 보람됐던 교직생활”

    두 번째 사진은 아내의 명예퇴임식 사진이다. 합덕초등학교 교감으로 있던 아내는 당시 젊은 교사들이 임용고시에 합격하고도 일자리가 없어 교단에 서지 못하던 교육실정을 감안해 명예퇴임을 결심했다. 아내는 교사로서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아내가 현직에 있을 때는 지금처럼 유치원도 많지 않았고 부모들의 교육열도 높지 않았다.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였을 정도다. 학생들이 한글을 깨우칠 수 있도록 퇴근 시간에도 자신의 시간을 쪼개 보충수업을 진행할 정도로 열정이 가득했다. 물론 어린 학생들에게는 방과 후 보충수업은 힘든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학부모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아내는 추후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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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 2012년 이야기

    권찬호채운동

    “과거의 내가 있기에 현재의 내가 있다”

    “과거의 내가 있기에 현재의 내가 있다”

    두 번째 사진과 세 번째 사진은 당진여객에 근무하던 당시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서산 가야산을 등반할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 나는 당진여객에서 버스운전기사로 활동했다. 버스를 몰며 많은 승객들을 만났고 그 중에는 평소 친분을 갖고 있던 이들도 많았다. 그만큼 승객과 운전기사 간의 정도 많았고 웃음도 있었다. 지금은 개인택시를 구입해 개인택시 운전기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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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 2012년 이야기

    고대 옥현리 고향집에서의 추억

    고대 옥현리 고향집에서의 추억

    두 번째  사진은 지금의 알톤·코렉스 자전거 채운점을 운영하기 전 당진상고 앞에서 운영하던 자전거 매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자전거에 인생을 바친 지도 20여년이 훌쩍 넘었다. 자전거가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대신하던 중요한 이동수단이었던 시절이다. 지금은 건강과 환경을 위해 즐기는 하나의 레포츠로서 자전거가 인식되고 있다. 먼 훗날 다시 이 사진을 볼 때면 자전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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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2012년 이야기

    오영환순성면개발위원회 위원장

    “고된 농사일 끝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고된 농사일 끝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세번째 사진은 순성농협 대의원 시절 안성의 한 교육원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이남영 씨가 조합장으로 재직 중일 때로 기억한다. 농업에 종사하다 보니 농협과 관련된 일도 많이 봐왔다. 지금은 순성농협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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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2012년 이야기

    김미자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 사무국장

    “세월 흘러 인물도 교정도 변화해”

    “세월 흘러 인물도 교정도 변화해”

    세 번재 사진은 친구 동생의 권유로 다니던 웅진출판에서 승진을 축하하는 기념사진이다.

    평소 내성적이었던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는 성격이었다. 이런 성격 탓에 방문 판매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다행인지 일을 시작하고 학부모들로부터 다양한 고민과 상담 등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됐다. 내가 말을 하기보다 들어주는 입장에 서게 되니 자연스럽게 학부모들과 친분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점차 일에 적응하면서 판매량을 인정받아 승진과 함께 포상으로 해외여행도 다녀왔었다.

    내성적인 성격도 고치고 남편(박명신)을 만나 결혼도 하는 등 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 된 시기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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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2012년 이야기

    윤기순사 대한노인회 합덕읍분회 분회장

    “45년간 보람됐던 교직생활”

    “45년간 보람됐던 교직생활”

    세 번째 사진은 송악초등학교를 마지막 발령지로 정년퇴임을 하며 황조근정훈장을 강복환 전 도교육감으로부터 수여 받는 사진이다. 송악초등학교 부임 당시 임기제가 생기며 3년간 초빙교장으로 활동했다. 이 때 자기주도 학습에 대한 농어촌 거점학교 도지정 전국연구 발표를 2년간 실시한 바 있으며 농악기를 구입해 농악부도 창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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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교사로 부임해 활동하던 당시

    “내게 학교는 삶이자 교육의 현장”

    “내게 학교는 삶이자 교육의 현장”

    세 번째 사진은 교사로 부임해 활동하던 당시의 사진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해 활동했던 나는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학생 교육에 매진해 왔다. 정규교육 속에서 학생들의 인성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고 서로가 행복한 추억을 하나씩 만들어 갔다.

    지금은 고대초등학교 교장으로 활동하면서 학생들이 꿈을 키워갈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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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 농민단체협의회 회장을 지내고 있을 당시

    신혁균합덕읍 영풍영농회사 대표

    “변하지 않은 건 마음뿐”

    “변하지 않은 건 마음뿐”

    네번째 사진은 농민단체협의회 회장을 지내고 있을 당시의 사진이다. 일본으로 선진농업을 견학하기 위해 떠났던 때 회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합덕과 우강은 넓은 곡창지대를 갖고 있다보니 많은 농민들이 아직도 꿋꿋하게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지역이다.

    농업이 쇠퇴하고 농업인에게 불리한 한미FTA가 체결되는 등 농업기반이 흔들리고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우리쌀 우리먹거리를 생산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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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 결혼 후 약 6년이 지나

    홍승란읍내동 옹기촌 대표

    “5년간 비밀스러운 연애 끝에 결혼”

    “5년간 비밀스러운 연애 끝에 결혼”

    네 번째 사진은 결혼 후 약 6년이 지나 남편과 함께 시댁인 면천으로 내려온 뒤의 사진이다.

    남편은 아버님이 하시던 정미소를 물려받아 일에 매진했고 나는 당진읍 태양전기 옆에 내추럴하우스(현재 풀무원식품)를 개업해 운영했다.

    내가 당진의 건강보조식품 초창기 주자가 아니었나 싶다. 사진 속 건물은 현재 읍내동 KT전화국 옆 SK텔레콤이 있는 자리다.

    20여 년 전 고객과 지금도 인연이 이어져 옹기촌에 손님으로 찾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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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 2012년 이야기

    김갑배사 충남모범운전자연합회 당진시지회 사무국장

    "아름다운 추억이 남아 있는 제주도"

    "아름다운 추억이 남아 있는 제주도"

    네번째 사진은 제주도의 한 해녀동상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제주도는 돌 많고 바람 많고 여자(해녀)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그렇다보니 이곳 저곳에서 해녀동상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흔히들 돌하루방을 먼저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해녀동상들이 많다. 예전에는 바닷일이 대다수였던 터라 남정네들이 바닷일을 하다 많이 목숨을 잃고 홀로된 해녀들이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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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퇴임식 후

    윤기순사 대한노인회 합덕읍분회 분회장

    “45년간 보람됐던 교직생활”

    “45년간 보람됐던 교직생활”

    네 번째 사진은 퇴임식 후 제21회 한국교육자대상 스승상을 수상하던 사진이다. 송악초등학교 재임 당시 상록문화제 및 기지시줄다리기 등 각종 지역 행사를 통해 학생들의 전통문화 계승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하게 됐다. 마지막 임기라는 생각에 더 큰 욕심을 갖고 학생들의 교육에 전념해 왔다. 내 교직생활에서 아내를 만난 이후 얻은 가장 큰 영예로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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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2012년 이야기

    정한영충남동물병원 원장

    “소중했던 학창 시절”

    “소중했던 학창 시절”

    네 번째 사진은 충남동물병원을 운영하며 현 기획재정부 장관인 박재완 전 국회의원 주최로 국회 도서관에서 ‘브루셀라 안심해도 좋은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했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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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2012년 이야기

    정한영충남동물병원 원장

    “소중했던 학창 시절”

    “소중했던 학창 시절”

    다섯번째 사진은 현해주 밀밭에서 찍은 사진이다. 해외농업개발연수를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필리핀 현지에 사료공장을 추진 중에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사료 값에 어려워하는 축산인들을 많이 봤다. 사탕수수며 짚, 옥수수, 파인애플 등 사료로 사용할 수 있는 많은 작물들의 재배도 손쉬워 저렴한 가격에 사료를 공급 받을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여물한우조합 설립 및 정육식당 사업도 추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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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 2013년

    한천희한국무용지도자협회 당진시지부 지부장

    "춤 출 때마다 생각나는 아버지"

    "춤 출 때마다 생각나는 아버지"

    첫 번째 사진은 2013년 4월 해오름 국립극장에서 강선영의 불멸의 춤 공연에 참가 했을때 사진이다. 멀리서 찍어서 내가 어디쯤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공연할 때는 화장을 다 똑같이 해 내가 봐도 헷갈린다. 아마 나는 빨간 옷을 입은 앞줄에 어딘가에 있을 거다. 빨간 옷은 국가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이 입고, 파란 옷은 이수하지 못한 사람들이 입는 의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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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2013년

    마을성극에 참여한 60년 전 막내시절

    마을성극에 참여한 60년 전 막내시절

    마지막 사진은 2013년 당진서지방회 은퇴찬하예배 당시에 찍은 사진이다. 사진은 삼봉감리교회 김성선 담임목사님이 나를 소개해주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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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 2013년 이야기

    “당진 체육역사에 바친 인생”

    “당진 체육역사에 바친 인생”

    첫 번째 사진은 당진이 충남도민체전에서 최초로 준우승을 차지했을 당시 사진이다. 당시 나는 당진군체육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진은 체육강군으로 충남지역에 이름을 알렸고 두터운 선수층과 꿈나무 육성사업을 추진해 현재는 다가오는 도민체전에 종합우승을 바라보는 당진시로 거듭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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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 2013년 이야기

    송악과 함께한 공직생활

    송악과 함께한 공직생활

    첫 번째 사진은 송악읍이 면일 당시 총무계장으로 활동하던 때 찍은 사진(왼쪽 끝)으로 기지시줄다리기 큰 줄 제작과정에서 찍은 사진이다. 내 뒤편으로는 약국 회춘당이 눈에 들어온다. 기지시줄다리기는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제는 유네스코 지정을 앞두고 있어 지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문화제로 거듭나려 하고 있다. 송악을 고향으로 살아온 내게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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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26세 때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한 지난 날”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한 지난 날”

    첫 번째 사진은 26세 때 지인들과 중국에 갔을 때 사진이다. 재래시장이나 백화점을 돌아보며 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갔다. 당시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였기에 치안이나 경제상황 등 여러 가지 여건이 맞지 않아 사업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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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젊은 시절

    한득선채운동

    “당진전통시장에서 보낸 50년”

    “당진전통시장에서 보낸 50년”

    첫 번째 사진은 오래전 시댁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이 남편(임낙중)이다. 이때도 시장에서 조개와 바지락을 팔고 있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젊은 시절부터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자식들이 착하게 잘 커줘서 고마운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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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 10여년 전

    “나의 삶과 함께한 체육”

    “나의 삶과 함께한 체육”

    두 번째 사진은 당진읍사무소(현 당진2동주민센터)에서 10여년 전 도장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3·1절을 맞아 당진 JC에서 진행한 행사에 참여해 태권도 시범을 보인 직후에 단체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다. 지금 사진속에 있는 관원들이 성장해 사회인으로 활동 중이니 시간의 빠름을 느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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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 2013년 이야기

    “당진 체육역사에 바친 인생”

    “당진 체육역사에 바친 인생”

    두 번째 사진은 체육회 상임부회장으로 활동할 당시의 사진이다. 이때도 준우승을 거둬 당시 김낙성 군수로부터 축하 화환을 받았다. 이후에도 당진은 총 4회에 걸쳐 준우승을 차지했다. 세계적으로 체육과 문화가 발달한 나라가 강대국으로 꼽히는 추세다. 지역도 크게 다를바 없다고 본다. 올해에는 종합우승을 차지해 당진시가 충남에서 제일 가는 체육도시로 발돋움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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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 2013년 이야기

    “추억의 샘에 빠진 하루”

    “추억의 샘에 빠진 하루”

    두 번째 사진은 1973년 공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태안군 시목초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을 때의 첫 제자들과 찍은 사진이다. 6학년 한 반 뿐인 63명을 담임했는데 정말로 사랑했고 열정을 바쳐 가르쳤다. 박봉을 털어 책도 사주고 이발사 노릇, 때밀이 노릇도 해줬다. 이 아이들이 이제는 50대 초중반이 되었고 이제는 같이 늙어가고 있다. 지금도 1년에 몇 차례 만나고 있으며 매번 “1번 윤태시, 2번 지규웅, 3번 김흥기, 63번 윤명희”라며 출석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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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 2013년 이야기

    돌아갈 수 없기에 소중한 시간

    돌아갈 수 없기에 소중한 시간

    두 번째 사진은 이보호 씨가 체육회 상임부회장으로 활동하던 때 충남도민체전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당진군 여자배드민턴 선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당진을 군단위 지자체임에도 불구하고 충남의 이름 높은 시⋅군들을 제치고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체육계에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에도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당시 체육계의 명맥을 지금도 이어오고 있다. 올해에는 종합우승을 차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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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7. 2013년 이야기

    조병갑당진행정동우회 사무국장

    “아름다웠던 지난 날을 떠올리며”

    “아름다웠던 지난 날을 떠올리며”

    두 번째 사진은 면천면 재무계장에서 퇴임하며 찍은 사진이다. 공직 생활을 27년간 하면서 당진시의 여러 지역을 거쳤다. IMF로 경제가 어렵던 시기에 공직자의 정년이 60세에서 57세로 줄었다. 무려 3년을 일찍 정년퇴임하니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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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 유치원 원장 때

    김영애행정리 푸드뱅크 대표

    “어머니에서 할머니가 되던 날”

    “어머니에서 할머니가 되던 날”

    두 번째 사진은 사립유치원 원장 때 사진이다. 스승의 날 기념으로 원아들에게 훈화를 전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웃음) 아마 스승의 날이니 선생님들께 잘하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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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 젊은 시절

    신태운고대면 개발위원회 위원장

    "찬란했던 젊은 날의 초상"

    "찬란했던 젊은 날의 초상"

    두 번째 사진은 4-H회 당진연합회장을 지내며 찍은 사진이다. 4-H회에서 최연소 회장을 맡은 나는 충청남도연합회장을 거쳐 최연소 농어민 후계자 선발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젊은시절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참 많이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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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 불과 7년 전

    “나의 삶과 함께한 체육”

    “나의 삶과 함께한 체육”

    세 번째 사진은 유도 전국체전 대표선수 선발을 위해 진행된 충남대회에서 당진대표 선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당시 충남대회에서 심판이자 관장이자 지도자로 참석해 선수들과 많은 정을 나눴다. 불과 7년 전의 사진이지만 사진 속 선수들 중에는 경찰이 되거나 유도계에서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나에게도 이들에게도 체육은 인생의 표지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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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 2013년 이야기

    “새삼 새로운 지난 시간들”

    “새삼 새로운 지난 시간들”

    세 번째 사진은 (당진낙농육우협회 회장)을 맡고 있을 당시 열렸던 체육대회다. 낙농인의 화합과 결속을 위해 체육대회를 기획했었다. 사진은 우승한 팀에게 우승기를 건네주고 있는 장면이다. 나는 초대, 2대, 3대 회장을 지냈다. 결성 초반이라 자리 잡는데 어려움이 따르기도 했지만, 나 혼자가 아닌 모두가 함께 했기에 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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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 2013년 이야기

    “당진 체육역사에 바친 인생”

    “당진 체육역사에 바친 인생”

    세 번째 사진은 당진배드민턴연합회가 충남도민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때다. 사진 속에는 최경용, 이영민, 안동원, 김종기 등 다양한 체육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배드민턴 뿐만 아니라 여러 종목들이 당진을 체육도시로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을 줬다. 지금의 체육회와 체육도시 당진이 있을 수 있는 건 바로 이들의 노력과 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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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2013년 이야기

    송악과 함께한 공직생활

    송악과 함께한 공직생활

    세 번째 사진은 국수봉에서 김낙성 군수에게 브리핑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군청을 거쳐 다시 송악면에 발령 받으며 면장으로 부임했다. 국수봉 가꾸기 사업이 한창 진행될 당시였는데 각 읍·면장들이 함께 참여해 각 지역사업인 ‘우리마을사랑운동’을 비교평가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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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 2013년 이야기

    양기철신성대학교 학사지원부 음악 교수

    “문화예술에 바친 한평생”

    “문화예술에 바친 한평생”

    세 번째 사진은 한국예총 당진지부의 창립 당시 사진이다.

    한국예총 당진지부가 창립하며 당진의 문화예술 분야의 발전에 큰 획이 그어졌다고 생각한다. 당진의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서로 교류하며 많은 작품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고 더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성장해갈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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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 2013년 이야기

    “나의 삶과 함께한 체육”

    “나의 삶과 함께한 체육”

    네 번째 사진은 중국 북경에서 열린 국제태권도대회에서 심판으로 참여해 선서를 하는 장면이다.

    태권도와 유도 지도자로서의 길을 걸으면서도 국제대회 심판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고 국제대회에서도 심판으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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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 2013년 이야기

    “당진 체육역사에 바친 인생”

    “당진 체육역사에 바친 인생”

    네 번째 사진은 김대중 정부 때 진행된 이어달리기 행사의 사진이다. 사진 중앙에서 태극기를 들고 달리는게 나다. 지금은 68세의 나이로 어려움이 있지만 당시에는 운동량이 상당했다. 도로 너머로 세원 아파트도 보인다. 지금은 목화 아파트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당진 최초의 아파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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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 2013년 이야기

    양기철신성대학교 학사지원부 음악 교수

    “문화예술에 바친 한평생”

    “문화예술에 바친 한평생”

    네 번째 사진은 제46회 충청남도 문화상 시상식에서 가족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다.

    당시 나는 예술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문화예술분야에 한평생을 바치고 받은 상이라 무척 뿌듯했던 기억이다. 지금도 문화예술에 공헌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이어가고 있다. 시간이 흘러 나이도 많이 먹었지만 당시의 열정을 잃지 않기 위해 젊은 시절 패기 넘치던 모습을 자주 떠올리곤 한다.

    최근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4기 위원으로 선출돼 활동하고 있다.

    ※ 사진속으로 추억속으로에 참여하실 독자를

    기다립니다. 전화 : 355-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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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 현재

    “그리운 우리마을의 옛모습”

    “그리운 우리마을의 옛모습”

    네 번째 사진은 현재 화훼농장인 꽃마루를 하면서 희귀식물들을 키우고 있는 꽃 중 하나다. 동백이 비교적 기르기 무난한데 꽃잎의 개수나, 색깔에 따라서 가격이 비싸진다. 좋은 식물을 키우면 뿌듯하기도 하고 큰 보람을 느낀다.

    박초롱기자 long9109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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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 2014년 이야기

    유병기대호지농협 차장

    "농협에서 보낸 20년을 돌아보며"

    "농협에서 보낸 20년을 돌아보며"

    첫 번째 사진은 1994년 대학을 졸업하고 면천농협에 입사해 강원도 춘천의 농협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을 때 동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내 번호였던 129는 아직도 나에게 의미있는 숫자로 남아있다. 이 때 나는 신입임에도 불구하고 연수원 평가결과에서 90점을 넘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 당시 90점을 넘은 신입은 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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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 2014년 이야기

    차청남상록수교회 원로목사

    “종교 간의 화합 이룬 자리”

    “종교 간의 화합 이룬 자리”

    첫 번째 사진은 내가 당진시 기독교연합회 회장을 할 때 각 종교계 회장들과 찍은 사진이다. 이날은 기독교, 불교, 천주교가 한 자리에 모인 의미 있는 자리였다. 요즘에는 종교 간의 교류가 적은 듯해 아쉽다. 앞으로는 다양한 종교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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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 2014년 이야기

    최세묵전 송산노인대학 학장

    “경찰이 되기엔 부족했던 5cm”

    “경찰이 되기엔 부족했던 5cm”

    첫 번째 사진은 제3회 심훈상록문화제에서 상록수상을 수상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제10회 상록문화제에서도 상록수상을 받아 두 번의 수상 기록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모범공무원 표창, 대통령 감사장 등 많은 상을 받았다. 항상 상을 받을 때면 뿌듯하고 설레는 맘이 든다. 남은 날에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바쁘게, 열심히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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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 2014년 이야기

    강인경당진시 여성단체협의회 전 회장

    첫 번째 사진은

    첫 번째 사진은

    농협에서 근무할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맨 오른쪽에서 까만색 옷을 입고 있다. 이 당시 농촌에 가서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쳐주는 일을 했는데 교사라는 꿈을 갖고 있던 나에게는 뜻깊은 일이었다. 하지만 딸 아이를 임신해 얼마 못하고 그만뒀다. 지금 생각하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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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 2014년 이야기

    최경수전 당진청년회의소 회장

    "형제 중 유일하게 찍은 돌사진"

    "형제 중 유일하게 찍은 돌사진"

    첫 번째 사진은 당진JC 41대 홍기후 회장의 이임식과 42대 회장인 내 취임식을 기념하는 사진이다. ‘새로 뜨는 위상! 도약하는 당진JC’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취임한 만큼 재임기간 동안 당진JC가 변화하는 시대에 발 맞춰 변화할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당진의 미래를 이끌어 갈 청년 리더들을 육성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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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4. 2014년 이야기

    김용열월드헬스클럽 대표

    "헬스로 땀 흘리던 젊은 시절"

    "헬스로 땀 흘리던 젊은 시절"

    두 번째 사진은 당진에서 월드헬스클럽을 운영하던 초창기 모습의 사진이다. 한동안 장발로 지내오던 나는 헬스클럽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깔끔하게 머리를 정리했다. 지금의 모습보다는 제법 길이가 길지만 스타일은 지금과 같이 뒤로 넘긴 머리다. 20대 초반부터 고수해 온 머리 모양은 이제 내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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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 2014년 이야기

    최경수전 당진청년회의소 회장

    "형제 중 유일하게 찍은 돌사진"

    "형제 중 유일하게 찍은 돌사진"

    두 번째 사진 당진교육지원청과 당진JC가 업무 협약식을 맺는 모습이다. 이날 협약식을 통해 학생들의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을 자원하고 각종 교육 프로그램 확보 및 교육기부 등을 통해 협력하기로 했다. 당시 지희순 교육장으로부터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선도 활동에 앞장서 달라는 부탁이 이어져 학생과 어린이를 위한 사업을 진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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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 2014년 이야기

    “한 잔의 차에 깨닫는 삶”

    “한 잔의 차에 깨닫는 삶”

    두 번째 사진은 성균관 여성중앙위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대한노인회 당진군지회의 초청을 받아 예식문화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던 사진이다. 당시 전통혼례집 책자를 발간해 참석자들에게 전달하고 전통 혼인절차, 혼인의 중요성, 잘못된 현재 예식절차, 고쳐야 할 우리들의 사고에 대해 참석자들에게 강의했다. 당시 전통문화에서 청소년들이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을 갖고 전통문화를 청소년들은 물론 당진시 전체에 보급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최근에는 당진향교에서 활동하며 지역 학생들을 위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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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7. 2014년 이야기

    유명천당진시바다낚시협회 회장

    “내 고향 장고항 사랑”

    “내 고향 장고항 사랑”

    두 번째 사진은 실치축제의 초창기 모습이다. 지금은 각종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준비돼 있어 관광객들에게 볼거리, 먹을거리 등을 제공하지만 당시만해도 이벤트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실치축제를 통해 장고항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일념하에 주민들과 함께 축제 활성화 및 관광객 유치, 지역 특산물 홍보 등에 앞장섰고 이제는 매년 봄이면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제는 수 년간 맡았던 사무국장직을 내려 놓고 그동안하지 못했던 가족들과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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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 2014년 이야기

    “가족같이 지낸 사관리 주민들”

    “가족같이 지낸 사관리 주민들”

    두 번째 사진은 민주평통 충남지역회의에서 의장 표창(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던 당시의 기념사진이다. 각종 사회활동에 많이 참여해 온 나는 민주평통 이외에도 자연보호중앙연맹 당진지구협의회장으로 활동하며 자연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지만 두 단체는 특별히 애정을 쏟고 있는 단체다.

    사회활동에 신경을 많이 쓰는 이유는 내가 활동하는 것으로 인해 사회가 바뀌고 누군가가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작은 행동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말처럼 그 실천을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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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2014년 이야기

    22년만 다시 찾은 신혼여행지

    22년만 다시 찾은 신혼여행지

    세 번째 사진은 내가 제일 아끼는 사진으로 91년에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때는 스위스에서 한국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예전에 ‘코사리베르만’이라는 스위스회사 한국지부에서 MD(머천다이저, 상품기획전문가)로 일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유럽, 홍콩, 일본까지 다양한 나라로 출장을 다니곤 했다. 이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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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 2014년 이야기

    한천희한국무용지도자협회 당진시지부 지부장

    "춤 출 때마다 생각나는 아버지"

    "춤 출 때마다 생각나는 아버지"

    세 번째 사진은 심훈 선생 추모제 및 심훈기념관 건립 기공식 때 기념공연을 하던 모습이다. 주로 사진사들이 사진을 많이 찍어서 나만 나온 사진들은 없고 대부분 단체사진이다. 기공식 외에도 임진각에서 열린 통일기원 기지시줄다리기 행사에도 참여해 공연했고, 당진시 시승격 기념공연 때도 무대에 올랐다. 당진의 커다란 행사들에 참여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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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 젊은 시절

    윤세중윤이벤트 대표

    “연예인과 함께 했던 젊은 시절”

    “연예인과 함께 했던 젊은 시절”

    세 번째 사진은 꽃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꽤 오래전 일이라서 언제인지, 어디에서 찍은 사진인지는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젊은 시절 나는 옷차림 등 외적인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이때도 꽤 차려입은 옷차림이다. 당시 청자켓과 청바지는 최신유행 패션이었다. 친구들과 양복을 차려입고 서울시내를 돌아다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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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 2014년 이야기

    안홍섭송악e편한세상 아파트 관리소장

    "주택관리사라는 자부심"

    "주택관리사라는 자부심"

    세 번째 사진은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충남도회 당진지부 회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당진지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나는 회원들의 단합을 위해 선운사로 등산을 떠나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고 각종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주택관리사는 주민들로부터 각종 건의사항을 접수 받아 살기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주민들의 건의사항들을 신속하고 깔끔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지역 내 주택관리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한편 당진지부에서는 매년 어려운 이웃을 돕기위해 회원들이 정성을 모아 100만 원씩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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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 2014년 이야기

    김용열월드헬스클럽 대표

    "헬스로 땀 흘리던 젊은 시절"

    "헬스로 땀 흘리던 젊은 시절"

    세 번째 사진은 충남도보디빌딩협회 임원진들과 충남도민체전을 마치고 단합대회로 설악산을 등반해 찍은 사진이다. 충남도협회는 도민체전을 마치면 항상 단체 단합과 임원진 격려를 위해 등산을 다녀오곤 한다.

    향후 당진보디빌딩협회 회장 임기를 마치고 나면 당진과 충남도 보디빌딩 발전을 위해 중앙회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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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 2014년 이야기

    최경수전 당진청년회의소 회장

    "형제 중 유일하게 찍은 돌사진"

    "형제 중 유일하게 찍은 돌사진"

    세 번째 사진은 당진JC 임원들과 함께 어린이 지킴이 캠페인을 하며 찍은 사진이다. 이 캠페인은 지역 내 아동들이 보다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회장직을 맡아 활동하면서 교육청과 연계해 진행한 사업이다.

    캠페인을 통해 아동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실종 관련 예방교육을 선행해 실종 아동들이 보다 쉽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당시 유동인구가 많은 당진시내 일원에서 홍보물 및 미아방지 팔찌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어린이 지킴이 서명을 받는 등의 활동을 펼쳤는데 회원들의 고생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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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 2014년 이야기

    유명천당진시바다낚시협회 회장

    “내 고향 장고항 사랑”

    “내 고향 장고항 사랑”

    세 번째 사진은 제2회 전국바다낚시대회 때 출전한 선수들을 찍은 사진이다. 장고항이 실치축제로 이름이 알려지다보니 실치가 잡히는 봄철에만 관광객이 몰려오는 현상이 발생했다. 한철장사로는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선주들과 함께 고민해 바다낚시대회를 개최했다.

    장고항 앞바다는 풍부한 수산자원을 가진 지역으로 갯바위 낚시에서부터 배낚시까지 다양한 낚시를 즐길 수 있다.  해를 거듭할 수록 많은 동호인들이 장고항을 찾고 있다. 앞으로 실치축제와 더불어 장고항과 당진을 전국에 알릴 수 있는 대회로 성장해 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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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 2014년 이야기

    22년만 다시 찾은 신혼여행지

    22년만 다시 찾은 신혼여행지

    네 번째 사진은 94년도에 남편(이부균)이 서울서 내려와 당진에서 세무회계 사무실을 개업하던 날 친정식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읍내동에서 일신회계법인이라는 이름으로 회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작은 사무실이었지만 지금은 서울에서도 손님이 찾아올 정도로 규모가 성장했다. 이제는 서울사람인 남편이 나보다 더 당진사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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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7. 제일제당에서 일할 때

    이태용동일교회 안수집사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까"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까"

    네 번째 사진은 제일제당에서 품질관리기사로 일하고 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식용유, 참기름, 배합사료 등의 품질을 검사하는 일을 했다. 제일제당에서 일할 때 아내(김경희)를 만났다. 아무래도 사내연애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눈초리가 신경쓰여 비밀연애를 했다. 저때는 몸이 마른 편이었는데 지금은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 아마도 아내의 사랑을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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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 2014년 이야기

    윤세중윤이벤트 대표

    “연예인과 함께 했던 젊은 시절”

    “연예인과 함께 했던 젊은 시절”

    네 번째 사진은 서울에서 같이 일했던 스탠드바 동료들과 찍은 사진이다. 일도 재밌었지만 동료들과 친목을 다지는 것 또한 재미였다. 동료들과 산과 계곡, 바다는 물론 꽃구경도 많이 다녔다. 옛날 사진들은 대부분 동료들과 찍은 것들이 많다. 이 사진이 신문에 실린걸 알면 동료들이 참 좋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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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9. 2014년 이야기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해”

    네 번째 사진은 둔포노인대학에서 특강공연을 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노인대학전문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정미, 고대, 기지시, 송산 등 당진지역 10개의 노인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다양한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늘 고민한다. 수업자료는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들고 있다. 또한 재밌는 강의를 위해 자료조사를 많이 하다보니 한 수업자료를 준비하는데만 해도 한 달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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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 2014년 이야기

    최세묵전 송산노인대학 학장

    “경찰이 되기엔 부족했던 5cm”

    “경찰이 되기엔 부족했던 5cm”

    네 번째 사진은 신평라이온스클럽 활동을 하며 찍은 사진이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나다. 날짜가 정확하게 생각나진 않지만 신평면사무소에서 재무계장으로 재직하며 신평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후 송산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송산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해 총무와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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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 송악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김종범나루문학회 회장

    “40년 만에 졸업한 초등학교”

    “40년 만에 졸업한 초등학교”

    네 번째 사진은 송악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찍은 사진이다. 가을운동회에서 우승팀은 청팀에게 시상을 하고 있다. 송악초등학교를 비롯해 많은 학교들을 거쳤지만 원당초등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했기 때문에 제일 기억에 남는 학교다. 21살부터 교사생활을 시작해 인생의 대부분을 아이들과 함께 했다. 그래도 즐거운 기억이 많이 나는 것을 보면 교사생활이 천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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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 2015년 이야기

    이재상율곡어린이집 원장

    "사진, 내 삶의 자취"

    "사진, 내 삶의 자취"

    첫 번째 사진은 송산새마을유아원 수료기념식 때 찍은 사진이다. 중앙에 한복을 입고 앉아 계신 분이 송산새마을유아원의 설립자이자 내 어머니이신 조명자 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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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 2015년 이야기

    이근주차브민 레스토랑 대표

    “환경 위해 발로 뛴 그 시절"

    “환경 위해 발로 뛴 그 시절"

    첫 번째 사진은 현대제철 인근지역 환경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충남도청, 당진군청, 당진환경운동연합, 철강 전문가들과 함께 철광석이나 석탄 등에 대해 일본, 중국, 네덜란드, 폴란드, 독일을 돌아다니며 조사했다. 5곳의 제철회사를 돌아보고 이를 적극 반영해 연구한 끝에 지금의 현대제철 돔형 원료 야적장이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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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 26세 때

    하완철우리식품 대표

    "아들 대야에 앉혀 놓고 일해"

    "아들 대야에 앉혀 놓고 일해"

    첫 번째 사진은 26세 때 집 앞 텃밭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고향인 고대면 성산리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농사를 지었다.

    오이를 들고 있는 남자가 나고, 옆에 있는 사람이 내 친구다. 내 친구는 당시 인천에 있는 패션업계에서 일을 했었는데 나를 보러 당진으로 놀러왔다. 현재 이 친구는 유명한 패션업계 사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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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 2015년 이야기

    오성학필 색소폰클럽 원장

    "못말리는 색소폰 사랑"

    "못말리는 색소폰 사랑"

    두 번째 사진은 8년 전 쯤 회사에서 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로 여행을 8박9일 다녀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이때 대한토지신탁회사에 근무했었다. 이 회사에서 17년을 근무했고 올해 정년퇴임 했다. 사진을 찍은 당시에는 10년차 직원에게 포상휴가를 줬을 때다. 오랫동안 근무했고 팀별 실적이 좋아 일본, 태국, 두바이 등 여행도 많이 다녔다. 하지만 다녀온 지 오래됐고 기간도 짧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여행했던 나라 중에서 인상 깊었던 나라는 두바이다. 두바이에서 100층 넘는 건물을 보고 굉장히 놀랐고, 사막 한가운데에서 춤을 추는 사막 사파리도 참 재밌었다. 앞으로는 필리핀, 캄보디아와 중국을 여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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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6. 2015년 이야기

    김근화SK텔레콤 당진중앙대리점 대표

    “봉사를 기쁨으로 여겨”

    “봉사를 기쁨으로 여겨”

    세 번째 사진은 SK텔레콤 최우수대리점 경영자 초청 워크샵 때 찍은 사진이다. 나와 같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은 가수 남진과 홍성에서 SK텔레콤 홍주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장주성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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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7. 지난 8월 31일

    최연화한국전통국악교육원 충남지회 원장

    "식지 않는 우리가락 사랑"

    "식지 않는 우리가락 사랑"

    세 번째 사진은 지난 8월 31일 채운동에 한국전통국악교육원(이하 국악교육원)을 설립했을 때 수강생들과 찍은 기념사진이다. 국악교육원은 우리나라 전통 국악을 계승하고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됐다. 민요를 비롯해 국악을 조사, 발굴하고 국내·외에 민요와 국악을 보급한다. 더불어 창부타령, 태평가, 한강수 등 민요 교육과 국악 장단을 배울 수 있다. 또한 마당놀이나 사물놀이 등을 활용한 발표 공연, 우수 전통예술인 발굴육성 및 지원 사업, 전국 국악경연대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회원 또한 모집 중이다. 국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면 모두 회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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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8. 18년 전

    이재상율곡어린이집 원장

    "사진, 내 삶의 자취"

    "사진, 내 삶의 자취"

    네 번째 사진은 18년 전 송산어린이집을 처음 운영할 당시 첫번째 만남을 가진 아이들의 재롱잔치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남자아이(정관옥)는 벌써 군대를 전역해 인하대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지역사회다 보니 아이들이 성장한 모습까지 쭉 지켜볼 수 있어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데 큰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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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 2015년 이야기

    이희양송산면 유곡리

    “친구야, 저기 한 번 봐라”

    “친구야, 저기 한 번 봐라”

    마지막 사진은 발동기를 수집하는 나에게 소중한 소방기다. 오래된 이 소방기를 보면 어렵게 불을 껐던 그 옛날 사람들의 모습이 엿보인다. 그 당시에는 소방기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다들 나와 양동이에 물 담아 불을 끄기 바빴다. 하지만 지금은 불을 끄는 소방관에게조차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소방기를 비롯해 수집하고 있는 발동기·골동품으로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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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 2015년 이야기

    최연화한국전통국악교육원 충남지회 원장

    "식지 않는 우리가락 사랑"

    "식지 않는 우리가락 사랑"

    네 번째 사진은 공연에 오르기 전 이건자 선생님과 국악을 함께 배운 선배와 찍은 사진이다. 공연에서는 산소리 타령을 불렀다. 이 공연은 선배와 선생님과 한 무대에 선 것으로 어느 공연보다 뜻깊은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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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 며칠 전

    김동기전주명품 콩나물 국밥 대표

    "토끼같은 내 자식 ‘바다샘마음이와 으뜸이’"

    "토끼같은 내 자식 ‘바다샘마음이와 으뜸이’"

    다섯 번째 사진은 며칠 전 가게 앞에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3900원짜리 국밥으로는 기름값도 못 건진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박리다매 원칙을 가슴에 새기며 여덟 테이블의 작은 가게를 개업하게 됐다. 현재 8개의 점포를 냈으며, 내년까지 25개까지 점포를 늘릴 계획이다. 여리고 부지런한 아내는 힘든 내색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런 아내가 주방에서 땀 흘리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

    ‘가화만사성’이라고 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말이다. 항상 건강하게 웃으며 사는 우리 가족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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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 2016년 이야기

    류재일석문농협 전무

    "한때는 석문의 달리기 선수!"

    "한때는 석문의 달리기 선수!"

    첫 번째 사진은 석문농협에서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과 달리기 대회 후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 첫 번째가 나다. 내 왼쪽은 현재 송산농협의 고종섭 상무다. 그 다음이 고대농협에 있었던 박석선 전 상무다. 박 전 상무는 7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참 많이 안타깝다. 그 옆은 지금은 퇴임한 김태환 전 당진농협 지점장이다. 우리는 달리기 대회가 있다면 언제나 출전했고 1등은 우리 것이었다. 무슨 종목이든 자신 있었을 정도로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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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3. 2016년 이야기

    정상일세한대 교수

    “학교사랑 음악사랑”

    “학교사랑 음악사랑”

    첫 번째 사진은 세한대학교 당진캠퍼스에서 찍은 사진이다. 세한대학교가 대불대학교로 불리던 시절, 나는 학교 이름 변경 건과 서울과 가까운 곳에 캠퍼스 추가 건에 대해 건의했다. 그 결과 대불대학교에서 세한대학교로 학교 이름이 변경됐고 수도권과 가까운 당진에 캠퍼스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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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4. 2016년 이야기

    김석우삼환운수 주 대표

    “포기하지 않으면 꿈 이룰 수 있어”

    “포기하지 않으면 꿈 이룰 수 있어”

    두 번째 사진은 짐 나르는 일을 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화물차는 나의 첫 자동차로 운수사업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절에는 먹고 자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화물차로 시골의 배추나 무를 도시에 실어 날랐는데, 이 당시 배추 가격이 너무 저렴해 손실이 많았다. 그래서 사업을 접고 요식업을 알아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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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 2016년 이야기

    류재일석문농협 전무

    "한때는 석문의 달리기 선수!"

    "한때는 석문의 달리기 선수!"

    네 번째 사진은 바인더로 추수하고 있는 내 모습이다. 당시에는 바인더로 추수했는데 콤바인이 도입된 이후 바인더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농사일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농협에서 근무하면서 농가 일도 많이 도왔다. 언제는 태풍으로 석문 지역에 배와 사과가 90%이상 낙과한 적이 있었다. 나와 직원들은 화물차량 5대에 떨어진 과일을 담아 과일즙 공장에 판매했다. 낙과를 줍느라 힘들었지만 조금이나마 농민들에게 힘을 줄 수 있어서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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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6. 교직생활

    구현회당진1동 읍내7통 노인회장

    "빛바랜 흑백사진 속 추억"

    "빛바랜 흑백사진 속 추억"

    네 번째 사진은 교직생활을 할 적에 필리핀으로 동료들과 여행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옛날 문교부(현 교육부)에서 모범 공무원을 선발해 해외여행을 보내줬다. 나는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등을 다녀왔다. 내가 다녀온 여행지 중에서는 태국이 가장 좋았다. 다양한 동물을 볼 수 있었고 자연이 깨끗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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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 2016년 이야기

    주영남전 고대면 장항1리 이장

    의지를 불태우며 삭발

    의지를 불태우며 삭발

    네 번째 사진은 제주도 용바위에 올라가서 찍은 사진이다.

    현재는 없어진 지역마을금고에서 일했을 때 마을주민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가서 찍은 사진이다. 여행 중에 한 주민의 제안으로 바위에 올라가서 찍었는데 알고 보니 용바위였다. 지금은 이 바위 위로는 못 올라가게끔 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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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 70년대 초

    류재일석문농협 전무

    "한때는 석문의 달리기 선수!"

    "한때는 석문의 달리기 선수!"

    다섯 번째 사진은 농협 임·직원 윷놀이 척사대회 당시의 모습이다. 70년대 초인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당시 서기 일을 할 때였다. 일이 힘들고 어려웠다. 하지만 척사대회로 모든 것을 날렸다. 임원과 직원 구분 없이 모두가 하나가 돼 윷놀이를 즐겼다. 나는 40년 가까이 석문농협에서 근무하고 있다. 첫 조합장부터 시작해 5명의 조합장과 함께 일했다. 다른 지점에서도 일 하고 싶었다. 근데 조합장들이 만류했다. 석문농협에는 내 모든 인생이 담겨 있다. 김남배 기자 rainingsky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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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 40대 때

    한백흥대한노인회 당진3동 회장

    "건강하게 부지런히 살자!"

    "건강하게 부지런히 살자!"

    첫 번째 사진은 40대 때 채운동에 위치한 집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나는 취미로 국화를 길렀다. 해마다 200송이의 국화를 키웠고, 당진정보고에서 교직생활을 할 때에도 학교에서 국화를 기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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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 20대 초반

    김덕성전 운학리 이장

    건강했던 두 아들과의 추억

    건강했던 두 아들과의 추억

    첫 번째 사진은 20대 초반에 찍은 사진이다.

    나는 고대면 성산1리에서 태어났다. 당진 시내에 나와산 지는 50년이 넘었다. 이 사진 속 소는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실 때 사용하던 소였다. 나도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곤 했다. 저녁이면 소에게 풀을 먹이러 다녔다. 이 사진은 같이 소를 먹이던 친구 김광학이 찍어준 사진이다. 같은 날 소를 타고 있는 사진도 찍었다.

    두, 세 번째 사진은 아내와 큰 아들 면수를 낳고 나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1972년에 정미면 우산리 출신의 아내와 결혼했다. 사돈어르신(큰 누나의 시어머니)이 중매를 했는데 당시에는 어른이 중신한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이 당연했고, 나도 어른들의 의견을 따랐다. 어여쁜 아내는 여성스럽고 가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내가 너무 안쓰럽다. 아들 때문에 마음 고생한 아내를 보면 울컥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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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 18세 때

    조주익대호지면 장정리 새마을지도자

    장발에 나팔바지 “멋 좀 부렸지~”

    장발에 나팔바지 “멋 좀 부렸지~”

    첫 번째 사진은 18세 때 페인트질 하다가 찍은 사진이다. 이 친구가 내 앨범 속 자주 등장하곤 한다. 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가족들도 내가 많이 찍어주곤 했다. 특히 아이들 사진을 많이 찍었다. 최근에는 농사일하랴 지도자 생활하랴 바빠서 사진 찍는 것이 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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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 2017년 이야기

    김문곤고대면 성산1리 노인회장

    “세상 구경할 수 있어 행복”

    “세상 구경할 수 있어 행복”

    두 번째 사진은 경남 창녕군으로 농협 교육 받으러 갔을 때 찍은 기념사진이다. 당시 농협 전무와 이사, 이장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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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3. 20살

    김기정송악읍 기지시리 이장

    6.25 참전용사 자랑스러운 ‘아버지’

    6.25 참전용사 자랑스러운 ‘아버지’

    세 번째 사진은 임시직으로 당진군청에 다닐 때 찍은 사진이다. 이 당시 내 나이는 20살이었다. 사진을 보니 이때 잠자리 안경이 유행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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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4. 반석교회 장로로 취임했을 때

    최주묵고대면 슬항2리 전 이장

    보고싶은 은사님

    보고싶은 은사님

    다섯 번째 사진은 반석교회 장로로 취임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내가 반석교회를 다닌 지는 30년이 넘었다. 당시 담임목사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해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하유진 인턴기자 gkdbwls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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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 2017년 이야기

    김평자·김기원송악읍 기지시리 부부

    인생 풍파, 아내 때문에 견뎌

    인생 풍파, 아내 때문에 견뎌

    마지막 사진은 양돈할 때 찍은 사진이다.

    태어난 지 3일 된 돼지를 안고있다. 사진을 보니 돼지의 배꼽이 떨어지지도 않았을 때다. 겨울에는 날이 추우니, 큰 대야에 아기돼지를 넣어놓고 안방에서 키웠다. 자식만큼 애정을 갖고 예뻐했다.

    >>김기원 씨는

    ·1945년 송악읍 기지시리 출생(현 73세)

    ·전 당진축협 이사(12년 간)

    ·전 송악라이온스클럽 회원(20년 간)

    ·전 당진시 양돈협회 이사(25년간)

    ·현 당진시 경주김씨 종진회 부회장

    ·현 송악읍소재지 종합정비사업 추진위원회 부위원장

    ·현 송악읍 기지시리 경로당 고문

    >>김평자 씨는

    ·1949년 서산시 인지면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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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6. 올해

    “새록새록 떠오르는 옛 추억”

    “새록새록 떠오르는 옛 추억”

    첫 번째 사진은 올해 면천향교 전교로 취임하고 성균관에서 고유 받을 때 찍었던 사진이다.

    성균관에서 각 지역 향교의 전교들과 사진촬영을 했다. 어릴 적부터 조상을 숭배해왔던 나는 꾸준히 유림생활을 해왔다. 농업에 종사하면서 농촌지도자 충청남도연합회장과 중앙회 부회장 등을 맡았기 때문에 본격적인 유림생활은 단체장 임기가 끝난 후 부터 시작했다.

    면천향교는 여느 향교들과는 달리 처음 세워진 장소에서 이전하지 않은 향교로 조선 초기의 향교 입지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그 가치가 크다. 하지만 운영에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향교에 상주해 관리하는 인력이 없어 힘든 점이 많다. 무엇보다 전교로서 젊은 유림이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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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 30대 초반 때

    문영호은석도예 도예가

    한 평생 걸어온 도예인생

    한 평생 걸어온 도예인생

    두 번째 사진은 30대 초반 때 대학교 후배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왼쪽에 있는 친구가 내 후배다. 우리는 도자산업디자인과 선후배로 처음 만났다. 이 친구가 대학교 후배지만 나이가 같아 친구처럼 지냈다. 이 친구는 지금 서울에서 택시운전사를 하고 있다. 도예의 경우 대학을 졸업하고 꾸준히 직업으로 이어가는 사람들이 소수에 불과하다. 공방을 운영 유지하면 생계를 잇기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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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8. 20대 초반

    김영자송악읍엄마순찰대장

    짝사랑 때문에 시작한 육상

    짝사랑 때문에 시작한 육상

    두 번째 사진은 20대 초반에 안양유원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경기도 안양에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직원 단합대회에서 찍었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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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 88올림픽 때

    “내 딸 영일·영이·영삼”

    “내 딸 영일·영이·영삼”

    송악중·고에서 2년 간 일하고 1978년에 서울의 수도전기공업고에서 근무하다 2006년에 퇴임했어요. 수도전기공업고에 다닐 때 청소년연맹 한별단의 지도교사로 활동했는데 수상훈련으로 토요일이면 짐을 싸서 학생들 데리고 다니기 바빴어요.

    두 번째 사진은 88올림픽 때 호랑이탈 퍼포먼스를 연습했을 때 찍은 사진이에요. 그때 아이들을 많이 동원했는데, 86아시안게임에 동원되기도 했어요. 기숙사 학생들을 데리고 24시간 내내 연습했을 땐 정말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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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 30대 중반에

    문영호은석도예 도예가

    한 평생 걸어온 도예인생

    한 평생 걸어온 도예인생

    세 번째 사진은 30대 중반에 경기도 화성에서 작업하고 있을 때 찍힌 사진이다. 취미생활로 사진작가를 하고 있는 선배가 찍어줬다. 백열등 하나만 켜놓고 찍은 사진인데 묘하게 흑백사진의 느낌을 준다. 그 선배는 이 사진을 공모전에 출품해 수상하기도 했다. 이 사진은 항아리를 만드는 사진인데, 항아리에 포도무늬를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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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 20년 전

    용돈 모아 구입한 등교용 오토바이

    용돈 모아 구입한 등교용 오토바이

    세 번째 사진은 20년 전 서해대교가 건설된 당시 찍은 사진이다. 나는 서해대교를 세운 LG건설에 다녔다. 사무직이었지만 현장에서도 일을 했었기에 서해대교를 지날 때마다 “서해대교는 내가 만든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서해대교가 지어진 뒤 당진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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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 지난해

    정덕영당진향교 전교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소중한 자녀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소중한 자녀들

    네 번째 사진은 지난해 당진향교 전교로 취임했을 때 찍힌 사진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당진향교에서 9년간 장의를 하셨고, 성균관 유도회 당진지부회장을 하셨던 분의 권유로 2005년부터 9년간 당진향교 수석장의를 하게 됐다. 이후 순차적인 절차를 거쳐 성균관 유도회 당진지부회장을 지내고 전교를 맡게 됐다. 향교에서 사무국장, 지부회장 등을 맡으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막중한 일이라 선·후배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항상 조심스런 마음으로 타인에게 피해되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나의 인생목표다.

    >>정덕영 전교는 ·1941년 원당동 출생 ·전 서울초단파전신전화건설국 양산중개소 근무 ·전 당진군청 근무 ·전 행정동우회 사무국장 ·전 당진향교 사무국장 ·전 새마을문고 당진지부장 ·전 성균관유도회 당진지부회장 ·현 당진향교 전교(2017~) ·현 대호지면 마중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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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 2018년 이야기

    한용우송악읍 반촌2리 이장

    지금과 다른 반촌2리의 옛 모습

    지금과 다른 반촌2리의 옛 모습

    네 번째 사진은 한국통신 당진전화국에서 일했을 때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한국통신 당진전화국에서 체납관리를 맡았는데, 이때 KT 우수사원으로 뽑혀 동남아시아로 8박9일 간 부부동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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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4. 2018년 이야기

    “청춘 바친 경찰 인생 33년”

    “청춘 바친 경찰 인생 33년”

    네 번째 사진은 워싱턴에 위치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도 미국 연수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비석에는 ‘우리 미합중국은 조국의 소명에 따라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분연히 나섰던 우리의 아들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등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알지도, 만나지도 못한 사람이 다른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나선 대한민국 군인들의 희생정신이 숭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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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 2018년 이야기

    용돈 모아 구입한 등교용 오토바이

    용돈 모아 구입한 등교용 오토바이

    마지막 사진은 한진포구에 꽂힌 그물 말뚝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부곡공단이 들어서기 전 한진포구 초입에는 망둥이와 우럭을 잡는 그물 말뚝이 박혀있었다. 친구들 중에서는 고기 잡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 문종군 씨는

    ·1973년 송악읍 중흥리 출생

    ·송악초·중·고 졸업

    ·LG건설 5년 간 근무

    ·현 물류업 종사

    ·당진시자율방범연합대 송악읍지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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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 2019년 이야기

    삼봉어린이집 아이들과

    삼봉어린이집 아이들과

    위의 사진은 초락도리에서 동물농장을 운영했을 때 체험 온 삼봉어린이집 아이들과 마차 위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에서 보면 썰매견인 시베리아허스키가 마차를 끌고 있다. 아직도 이 사진을 보면 웃음이 난다. 삼봉리에서 초락도리로 이사하며 땅을 구입하고 동물농장을 조성했다. 동물을 좋아해 하나 둘 기른 것이 동물농장이 됐다. 한 때는 20여 종의 300~400여 마리의 동물들이 있었던 꽤 큰 규모의 동물농장이기도 했다. 농업기술센터로부터의 제안으로 체험농장으로 운영됐었다.

    「즐겁고 재미있었던 동물농장」 앨범 펼치기 →

  187. 아이가 5살 될 무렵

    소년소녀가장 야영대회 당시

    소년소녀가장 야영대회 당시

    대한적십자사 당진부녀봉사회로 활동할 당시 소년소녀가장을 데리고 야영대회를 갔을 때 모습이다. 첫 번째 줄의 왼쪽 맨 끝에 있는 것이 나다. 내가 입고 있는 노란색 옷이 당시 적십자 복장이었다. 나는 아이가 5살 될 무렵에 적십자 당진지구협의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적십자 소년소녀가장을 보살피곤 했는데, 방학 기간 동안 부모와 함께 놀러갈 수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가기도 했다. 또 1대1로 결연을 맺어 아이들을 돌보곤 했다. 내가 보살핀 한 자매는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결혼 할 때 뒤에서 폐백을 챙겨주기도 했다.

    「“학생들 마음 놓고 공부하게 해주세요”」 앨범 펼치기 →

  188. 2019년 이야기

    유니콘상에서 탑동초 아이들과

    유니콘상에서 탑동초 아이들과

    하지만 동물농장 운영이 쉽지만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내와 나는 사료걱정, 운영걱정부터 하곤했다. 정말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일했다. 운영비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아 교사연금까지 쏟아 부으면서 5년을 버텼다. ‘이제는 집까지 팔아야 되겠다’ 싶던 때 동물농장을 그만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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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 25살 무렵

    “선생님이 제 선생님이어서 행복했어요”

    “선생님이 제 선생님이어서 행복했어요”

    나의 모교이자 첫 발령지인 송산초등학교에서 처음 담임을 맡았던 제자들과 찍은 사진이다. 25살 무렵이었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교사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진로를 고민하던 중 교대에 입학하게 됐다. 교생실습을 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느끼고 교사로서 사명감을 키우게 된 것 같다.

    처음 교사로 발령받아 6학년 담임을 맡았다. 아이들과 지내는 게 너무 즐겁고 재밌어서 방학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가장 열정이 넘쳤던 시절이었다. 송산초 제자들은 나와 고향이 같기 때문에 종종 지역에서 만나거나 소식을 듣기도 한다. 오랜만에 사진들을 꺼내 보니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나 추억에 잠겼다. 깊어져 가는 가을 어느 날, 그리운 날들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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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 석문간척사업소 근무 시절

    석문간척사업소 근무 시절

    석문간척사업소 근무 시절

    당시 모습이다. 10.6km에 달하는 석문방조제는 송산과 석문에서부터 공사를 시작해 마지막 그 사이를 채우는 작업이 끝나야만 완성됐다. 마지막 작업은 비어진 사이로 흐르는 물살이 매우 거세기 때문에 수많은 덤프트럭으로 흙을 가져다 부어야 했다. 그때를 기념하며 찍은 사진이다.

    「카세트 들고 전국 다녔던 그 시절」 앨범 펼치기 →

  191. 2019년 이야기

    카세트 들고 전국 다녔던 그 시절

    카세트 들고 전국 다녔던 그 시절

    옛날 구 군청사에서 업무를 마지막으로 마치고, 지금의 시청사로 이전하기 전에 도시교통과 직원들과 현관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짐을 옮기다가 아쉬운 마음에 찍은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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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 2019년 이야기

    해나루시민학교 학생들과

    해나루시민학교 학생들과

    이 사진은 내가 동물농장을 그만두고 4년 정도 해나루시민학교에서 음악교사로 활동할 당시 공연할 때 모습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해나루시민학교 할머니 학생들에게 노래와 율동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1년에 네차례 정도 외부 무대에서 공연할 기회가 있어, 그때마다 학생들을 데리고 공연을 선보였다. 전국 문예학교를 대표해 국회의원회관에서 공연을 한 적도 있다. 지난 6월 5년차에 접어들며 시민학교 교사를 그만뒀지만 즐거웠던 기억은 아직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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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 14살 쯤

    두 번째 추억사진

    두 번째 추억사진

    14살 쯤 ‘마차’라 부르는 소달구지를 끌던 우리집 소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소가 어찌나 일을 잘했는지 하루 인건비가 500원 했던 시절에 이 마차를 끌고 나가 일을 하면 2500원을 받았다. 볏가마, 보릿가마 다 실어 나르고, 가을엔 무와 배추를 실어 날랐다. 이후엔 경운기가 생겨나 소달구지가 거의 다 사라졌다. 아득한 옛 풍경이다.

    「목련꽃 하얗게 흐드러지던 날 아내와 약혼」 앨범 펼치기 →

  194. 2020년 이야기

    김귀자노년학 박사

    군사정권 시절 제주도에서

    군사정권 시절 제주도에서

    이 사진은 제주시청에 근무할 당시 모습이다. 법에 관심이 없던 나(맨 오른쪽)는 이화여대를 휴학하고 곧장 제주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해 몇 년 동안 제주도에서 생활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 제주도에서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얀 옷과 검은 옷을 입도록 권유했던 시절이었다. 강압적이지는 않았지만 학교 수업을 받을 때면 학생들이 이를 잘 시행하고 있는지 보러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당시에는 군사훈련을 여학생들도 받아야만 했다. 모터보트를 타기도 했고 알 수 없는 훈련들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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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 2020년 이야기

    송정애 읍내동

    250만 원 짜리 무선전화기

    250만 원 짜리 무선전화기

    서울에서 택시운전사를 할 때 찍은 사진이다. 여성 운전자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홍일점이었다. 나는 택시기사 시절 SBS 통신원에 입사해 활동했다. 지금처럼 휴대전화만 봐도 도로 상황을 알 수 있던 때가 아니어서 택시기사들이 어디가 막히는지, 어디서 사고가 났는지 전화로 직접 제보했다. 그때 무선전화기를 250만 원 주고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그 전화기가 있으면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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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 2020년 이야기

    김종일삼꽃색소폰선교단장

    “남산에서 고고댄스 추던 시절”

    “남산에서 고고댄스 추던 시절”

    나는 교육지원청에서 28년간 일했다. 본청을 비롯해 당진도서관과 용연유치원을 거쳐 석문초 행정실에서 퇴임했다. 이 가운데 스카우트 등 청소년 단체를 관리하던 일을 맡았던 때 찍은 사진이다. 퇴임하고 지금은 석문노인복지센터에서 홍보실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작게 사과 농사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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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 18세

    주옥순새마을 합덕읍 부녀회장

    앞머리에 넥타이까지…유행에 민감했던 소녀

    앞머리에 넥타이까지…유행에 민감했던 소녀

    첫 번째 사진은 첫 직장에서 만난 친구 명숙이와 찍은 사진이다.

    나는 18세에 제일모직의 신사복을 만드는 공장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사진 속 왼쪽이 나이고, 오른쪽이 명숙이다. 명숙이는 현재 울산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자주 연락을 주고 받는 친구이다. 우리는 일이 끝나면 나와 명숙이는 태권도장에서 운동을 했다.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태권도장 가는 시간이 자유의 시간이였다.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힘들었지만 가장 예뻤고 소중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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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 젊은 시절

    이충수상궁원리 이장

    유명 패션 브랜드 본부장에서 벼농사 짓는 농부가 되다!

    유명 패션 브랜드 본부장에서 벼농사 짓는 농부가 되다!

    첫 번째 사진은 패션 브랜드인 캘빈클라인(CK)에서 일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젊은 시절 나는 리바이스 등 20여 개의 브랜드가 속해 있는 ‘한주통산’이라는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캘빈클라인에서 20년 간 근무했고, 본부장으로 일하다 퇴직했다.

    1963년 합덕읍 상궁원리에서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상경해 40년 동안 서울에서 살았다. 서울에서 직장생활과 사업을 하면서 마음 한편에 공허함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2014년 봄, 소원이었던 귀농을 하게 됐다. 고향에서의 생활은 서울에서 살았을 때보다 훨씬 행복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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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 21~22살

    주옥순새마을 합덕읍 부녀회장

    앞머리에 넥타이까지…유행에 민감했던 소녀

    앞머리에 넥타이까지…유행에 민감했던 소녀

    두 번째 사진은 21~22살 때의 사진이다.

    회사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미아리(현 미아동)에서 첫 독립을 했는데, 집주인 아주머니가 기념으로 찍어주셨다. 사진을 보면 내가 넥타이를 하고 있는데, 그때 넥타이 메는 것과 앞머리 내리는 것이 엄청난 유행이었다. 월급 전부를 멋부리는데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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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 2021년 이야기

    천의초에 자리한 나무 미끄럼틀

    천의초에 자리한 나무 미끄럼틀

    두 번째 사진은 고대면 당진포리 해창둑이 공사되고 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촬영한 시기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당시 농경지를 조성하기 위해 뚝을 만드는 공사가 이뤄졌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똑딱선을 탈 수 있었다. 지금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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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 젊을 때

    북경에서 만난 태극기에 가슴 벅차

    북경에서 만난 태극기에 가슴 벅차

    세 번째 사진은 내가 공무원으로 근무했을 당시 박승선 군수에게 우수체육 공무원상을 받았을 때의 모습이다. 젊을 때에는 배구·테니스·씨름 등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스포츠 공무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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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 23살

    주옥순새마을 합덕읍 부녀회장

    앞머리에 넥타이까지…유행에 민감했던 소녀

    앞머리에 넥타이까지…유행에 민감했던 소녀

    세 번째 사진은 23살 때 나를 참 좋아하던 직장 친구와 찍은 사진이다.

    그 친구는 나를 너무나도 좋아했다.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사용했는데 늘 내 옆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었다. 한편 이 사진 속에서도 나의 멋부림은 계속된다. 바바리코트에 부츠...이때는 머리 기르는 게 또 유행이었다. 파마한 적이 한번도 없는데 저렇게 곱슬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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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 교직생활을 했을 때

    천의초에 자리한 나무 미끄럼틀

    천의초에 자리한 나무 미끄럼틀

    세 번째 사진은 정미초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했을 때 찍힌 사진이다.

    나는 1968년부터 2010년까지 42년 간 교직생활을 했다. 정미초를 시작으로 천의초, 조금초, 송전초, 도성초, 고대초를 지나 당진초에서 퇴임했다. 나는 당진지역에서만 교직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제자들과 수시로 연락하며 지낸다.

    한편 내가 정미초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만에도 한 반에 학생들이 82명이었다. 교실 안을 걸어다니지 못할 정도로 학생들이 많았다. 반면 요즘에는 읍·면지역 학교에 학생들이 없어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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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4. 당진군 위민실장과 당진군의회 전문위원으로 일했을 당시

    박원신우강면 송산리

    백두산 천지에서 물구나무 서다

    백두산 천지에서 물구나무 서다

    세 번째 사진은 당진군 위민실장과 당진군의회 전문위원으로 일했을 당시의 사진이다. 나는 1963년 합덕읍사무소(당시 합덕면)에서 첫 근무를 시작하게 됐다. 이후 우강면, 순성면, 신평면 등에서 부면장을 거쳐 1986년 11월부터 약 2년 동안 위민실장으로 일했다. 위민실은 군청에서 처음 생긴 부서로 김종호 내무부장관의 정책부서였다. 나는 민원인의 고충을 해결하는 업무를 맡아 일했다. 1991년 7월에는 당진군의회 전문위원으로 발령받았다. 당시 당진군의회의 첫 전문위원으로 업무를 맡으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책을 보면서 공부했고, 모르는 것은 국회 전문위원에게 문의해 처리하곤 했다. 그렇게 32년 간 공직생활을 마치고 1994년 명예퇴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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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5. 결혼 전

    “교복 입은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교복 입은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세 번째 사진은 남편이 결혼 전에 찍은 증명사진이다.

    남편은 군 제대 후 28살 때부터 한진항에서 소금을 검사해 등급을 나누는 일을 했었다. 당진 뿐만 아니라 서산, 태안에서도 이 업무를 맡아 27년 간 직장생활을 했다. 퇴직 후에는 염업조합 지부장을 맡아 활동했으며, 그 뒤로는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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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6. 20대 시절

    김병길당진원시가지 상가번영회장

    음악에 푹 빠졌던 학창시절

    음악에 푹 빠졌던 학창시절

    마지막 사진은 제주도 칼호텔에서 근무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제주도 이도1동에 칼호텔이 위치해 있다. 20대 시절 나는 3년간 제주도 칼호텔에서 음악 연예부 연주자로 일했다.

    >> 김병길 회장은

    - 1955년 원당리 출생

    - 계성초·호서중·호서고 졸업

    - 현 딸기개발 운영

    - 현 당진원시가지상가번영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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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7. 모내기 작업 중

    이충수상궁원리 이장

    유명 패션 브랜드 본부장에서 벼농사 짓는 농부가 되다!

    유명 패션 브랜드 본부장에서 벼농사 짓는 농부가 되다!

    마지막 사진은 모내기 작업 중에 찍힌 사진이다. 현재 상궁원리 1만5000평 규모의 논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 어릴 적 상경했어도 아버지가 농사를 지으셨기 때문에 모내기철이나 수확철이 되면 고향에 내려와 아버지를 도왔다. 그래서 농사일이 낯설진 않다. 농사는 마치 자식을 키우는 것과 같다. 모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 너무 기쁘고 애정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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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8. 40대 때

    조만형면천면 성상1리 노인회장

    트롯가수 장민호 닮은 그리운 큰아들

    트롯가수 장민호 닮은 그리운 큰아들

    두 번째 사진은 40대 때의 내 모습이다. 지금은 면천면 성상1리에 거주하고 있지만 내가 태어난 곳은 면천면 자개2리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형님과 셋이 살았다. 너무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14살 때부터 농사일을 하며 가정에 힘을 보탰고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형님과 교대로 군 생활을 하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재밌었던 시기를 꼽자면 40대였던 것 같다. 성실하게 농사지으며 일했더니 내 땅이 생겼고, 자식들을 열심히 뒷바라지해 둘째 아들을 서울의 명문대에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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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장면의 테마와 연도는 기사 글을 읽어 자동으로 분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