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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 왜목, 그리고 나"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30여년 전 왜목, 그리고 나"

조지행 석문면 교로2리

석문면 교로2리 · 2005년 4월 당진시대 게재

고단한 일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돈벼락 맞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하루 아침에 유명인이 되어 스폿라이트를 받거나 하는 꿈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내 나이 서른하고도 다섯 되던 해, 왜목에서 어업으로 살아가던 나에게 정말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봄기운이 느껴지던 2월말 즈음이었다. 겨우내 무리지어 움츠리고 있던 숭어떼가 날이 풀리자 이동하던 중 내가 쳐 놓은 건간망에 걸려 들었던 것이다. 당시 내 그물에 걸려든 숭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동원되어 하루 종일 지어 날라도 못나를 정도였다. 집집마다 나눠준 것까지 합하면 7톤도 넘는 양이었다. 한마디로 ‘대박’을 맞은 것이다. 모 지방신문에도 화젯거리로 실렸던 기억이 난다. 첫 번째 사진은 바로 그 ‘대박’ 터진 날, 조카인 조선형(왜목 해돋이 축제 추진위원장)이 찍어 준 사진이다. 해변 바닥에 즐비하게 널려있는 것이 숭어이고 옆에선 동네 아낙들이 ‘다라이’에 어른 팔뚝만한 숭어를 담기 바쁘다. 그 당시 이 숭어를 팔아 6백만원을 벌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요새 화폐가치로 환산해보니 6억원을 하루아침에 벌어들인 셈이다. 그 돈으로  아버님의 빚을 모두 갚아 드렸고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때라 우리집 지붕을 개량했다.

"30여년 전 왜목, 그리고 나" —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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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사진은 20여년 전, 노를 저어 운행하는 전마선을 타고 ‘물 보러’ 가면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어민들의 유일한 운송수단이었던 전마선은 당진화력이 들어서면서 보상을 받고 폐선시켜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다.

세번째는 30여년 전 동네에서 어버이날 야유회를 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그때 왜목의 물은 정말 깨끗했다. 멀리 노적봉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속엔 이미 고인이 된 분도 있고 엄마 무릎에 올라 앉은 천진한 아이들은 지금 모두 30대 가장이 되어 있다.

불과 20~30년 사이에 내 고향 왜목은 참 많이도 변했다. 풍성했던 어장은 사라지고 위락시설들이 들어선 지금 왜목의 모습은 평생 물질만 하고 살아 온 나에겐 아직도 낯선 풍경이다. 허나 어쩌랴. 흘러간 세월은 돌이킬 수 없는 법. 하지만 풍성했던 시절의 추억은 나의 노후를 채워 줄 소중한 벗이 될테니 그리 아쉬워만 할 일도 아닌 듯 싶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

조지행 석문면 교로2리"30여년 전 왜목, 그리고 나" —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 당진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