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단한 일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돈벼락 맞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하루 아침에 유명인이 되어 스폿라이트를 받거나 하는 꿈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내 나이 서른하고도 다섯 되던 해, 왜목에서 어업으로 살아가던 나에게 정말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봄기운이 느껴지던 2월말 즈음이었다. 겨우내 무리지어 움츠리고 있던 숭어떼가 날이 풀리자 이동하던 중 내가 쳐 놓은 건간망에 걸려 들었던 것이다. 당시 내 그물에 걸려든 숭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동원되어 하루 종일 지어 날라도 못나를 정도였다. 집집마다 나눠준 것까지 합하면 7톤도 넘는 양이었다. 한마디로 ‘대박’을 맞은 것이다. 모 지방신문에도 화젯거리로 실렸던 기억이 난다. 첫 번째 사진은 바로 그 ‘대박’ 터진 날, 조카인 조선형(왜목 해돋이 축제 추진위원장)이 찍어 준 사진이다. 해변 바닥에 즐비하게 널려있는 것이 숭어이고 옆에선 동네 아낙들이 ‘다라이’에 어른 팔뚝만한 숭어를 담기 바쁘다. 그 당시 이 숭어를 팔아 6백만원을 벌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요새 화폐가치로 환산해보니 6억원을 하루아침에 벌어들인 셈이다. 그 돈으로 아버님의 빚을 모두 갚아 드렸고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때라 우리집 지붕을 개량했다.
두번째 사진은 20여년 전, 노를 저어 운행하는 전마선을 타고 ‘물 보러’ 가면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어민들의 유일한 운송수단이었던 전마선은 당진화력이 들어서면서 보상을 받고 폐선시켜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다.
세번째는 30여년 전 동네에서 어버이날 야유회를 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그때 왜목의 물은 정말 깨끗했다. 멀리 노적봉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속엔 이미 고인이 된 분도 있고 엄마 무릎에 올라 앉은 천진한 아이들은 지금 모두 30대 가장이 되어 있다.
불과 20~30년 사이에 내 고향 왜목은 참 많이도 변했다. 풍성했던 어장은 사라지고 위락시설들이 들어선 지금 왜목의 모습은 평생 물질만 하고 살아 온 나에겐 아직도 낯선 풍경이다. 허나 어쩌랴. 흘러간 세월은 돌이킬 수 없는 법. 하지만 풍성했던 시절의 추억은 나의 노후를 채워 줄 소중한 벗이 될테니 그리 아쉬워만 할 일도 아닌 듯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