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이병훈 전 우강면이장단협의회장] 마을을 위해 봉사했던 지난날의 시간들
삼남매를 두었다. 큰 아들은 결혼해 듬직한 손자까지 안겨주었다. 아들 외에도 두 딸(영주, 유리)을 자랑은 하고 싶어도 함께 찍은 사진이 거의 없어 안타깝다. 우강면 공포리장을 10년간 맡아오다 올해 그 자리를 내놓았다.
![[이병훈 전 우강면이장단협의회장] 마을을 위해 봉사했던 지난날의 시간들 — 사진 1](https://cdn.djtimes.co.kr/news/photo/201108/44623_22523_7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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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진은 1997년 우강농협에서 주관해 선진농법을 배우러 일본 연수를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안경을 써도 잘 보이지 않으니 큰 문제다. 장소가 어딘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평생 농사만 지어온 나인데 일본의 건답직파 방식의 농법은 잘 모르던 것이었다. (맨 오른쪽이 나)
![[이병훈 전 우강면이장단협의회장] 마을을 위해 봉사했던 지난날의 시간들 — 사진 2](https://cdn.djtimes.co.kr/news/photo/201108/44623_22524_721.jpg)
#2
두 번째 사진은 아내(정해숙)와 함께 찍은 사진 중 잘 나온 것을 골라 보았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아내는 최근 문인화를 배우러 다니고 있는데 무척 재밌어 하는 것 같다. 아내와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족들 모두 몸 건강히 지금까지 함께해준 것이 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새마을지도자 4년, 공포리장 10년을 지냈고 지난 2년간은 이장단협의회장도 맡았는데 마을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나보다 더 열심히 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올해 초 이장과 이장단협의회장을 사임했다. 그동안 마을에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내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왔다. 마을이장이 무슨 권력을 가진 자리는 아니다. 마을을 위해 서로 조금씩 봉사를 한다면 마을이 더 발전하지 않을까 한다.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원본 사진에는 워터마크가 있습니다.
![[이병훈 전 우강면이장단협의회장] 마을을 위해 봉사했던 지난날의 시간들](https://cdn.djtimes.co.kr/news/photo/201108/44623_22522_71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