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 타임라인
마을과 이웃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에 실린 이야기 가운데 ‘마을과 이웃’ 장면만 모아 세월 순서로 엮었습니다. 장마다 그 사진을 꺼내 준 주민의 말을 그대로 옮겼고, 아래 링크로 그 사람의 앨범 전체를 펼쳐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57명 — 이름을 누르면 그 사람의 첫 장면으로
1932년
김기정송악읍 기지시리 이장
6.25 참전용사 자랑스러운 ‘아버지’
두 번째 사진은 기지시감리교회 종탑 옆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뒷줄에서 맨 오른쪽에 있는 아이가 나다. 같이 찍은 아이들은 교회학교 5~6학년 친구, 후배들이다. 사진 속 아이들 중에는 목사가 2명이나 있다. 현재 타 지역에서 살고 있다. 이 사진은 교회학교 교사이자 세종사진관을 운영하던 한승교 선생님이 찍어주신 사진이다.
외할머니는 송산감리교회 권사셨고, 어머니도 권사였다. 이때 교회학교 친구들은 200명 정도로 예배당이 꽉 차있었다. 여름성경학교를 할 때면 교회학교 선생님들이 직접 만든 인형극을 보여주고 함께 찬양하곤 했다. 내가 다니고 있는 기지시감리교회는 1932년에 설립돼 올해로 85주년을 맞이했다.
1958년
마을성극에 참여한 60년 전 막내시절
첫 번째 사진은 1958년 마을에서 성극했을 때 찍은 단체사진이다.
생각해보니 60년 전이다. 당시엔 TV도 없었고 마을에 구경거리도 없었다. 그래서 인천고 출신의 김달환 선배가 중심이 돼 마을 학생들이 성극을 진행했다. 추석기념으로 <대야성의 최후>라는 성극을 만들었는데, 주민들의 호응이 좋아 시장에서도 다시 한 번 극을 선보이기도 했다. 함께 성극을 했던 최인성, 유의근, 양영호, 김동습, 이영호, 임종억, 손오승 등은 지금도 마을에서 자주 보는 선배와 친구들이다.
1962년
구본환면천감리교회 목사
“충남에서 최초로 설립된 교회”
두 번째 사진은 1962년 면천교회 부흥회 때 사진이다. 당시 당진에는 4개의 큰 교회가 있었는데 면천교회가 그 중 하나였다. 면천지방은 역사적 유적지와 오래된 학교, 교회 등 오랜 전통을 간직한 곳이다.
1970년
강근묵고대면 당진포 2리
고참이 서리한 꿀맛 사과
다섯 번째 사진은 고대면농촌지도자회 회원들과 찍은 사진이다. 어느덧 그들과 이어온 우정이 30년이다. 1970년대에 교통수단은 오직 오토바이였다. 열댓 명이 비포장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선 먼지를 날리며 달리기도 했다.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회원들과 앞으로도 희노애락을 함게 나누며 즐거운 시간 보내고 싶다. 그리고 건강이 최고이니 회원들이 항상 건강하길 바란다.
1972년
우연히 발견한 거산2리의 옛 흔적들
첫 번째 사진은 아버지 故 이철홍 전 거산2리 이장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1972년에 이장직을 내려놓으셨는데, 내 기억엔 1960년대 초반부터 10여 년 동안 이장을 맡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1972년
우연히 발견한 거산2리의 옛 흔적들
네 번째 사진은 1972년 11월 새마을 단합대회를 서정초등학교 강당에서 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거산2리에서는 새마을 사업으로 농로 포장, 변소 개량 사업 등을 실시하고, 농협 하나로마트의 전신인 농협 구판장을 운영했다. 특히 밥을 지을 때 쌀 한 숟가락을 따로 담아 모으는 절미운동도 진행했는데, 이 운동으로 거산새마을금고(현 당진동부새마을금고)가 만들어졌다.
1972년
한익상당진2동 용연2통 노인회장
마을 이장부터 노인회장까지
나는 지난 1972년부터 1983년까지 10여 년 동안 용연리 이장을 맡았다. 그리고 2004년부터 현재까지 용연2통 노인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장이든 노인회장이든 장기로 집권한 셈이다. 올해는 젊은 노인에게 회장직을 맡기고자 한다.
내가 이장을 봤을 때에는 육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이장을 중심으로 지역민들과 자갈을 이용해 길을 직접 포장했고, 집집마다 세금고지서를 전달하고, 세금을 받아오기도 했다.
토박이가 봤을 땐 용연리는 부락형태와 가옥, 도로만 바뀌었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현재 우리 마을은 김범석 통장이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고, 주민들도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용연2통은 한마디로 화합이 잘 되는 마을이다.
>>한익상 회장은
·1933년 용연리 출생(현 86세)
·당진초·당진중·당진상고 졸업
·용연리 이장(1972년~1983년)
·용연2통 노인회장(2004년~)
1980년
우연히 발견한 거산2리의 옛 흔적들
마지막 사진은 1980년 취락구조 개선사업 입주식 때 찍은 사진이다. 거산감리교회 앞 사거리에 마을회관과 집들이 있었다. 그때 취락구조 개선사업이라고 해서 5곳의 집을 일괄적으로 똑같이 지어 분양을 했다.
1975년부터 4년간 거산2리 이장을 역임한 이영문 대한노인회 신평면분회장은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취락구조 개선사업을 실시했다”며 “당시 거산2리는 새마을 선진마을로 전국적으로 인정받은 동네였다”고 전했다. 이어 “옛날에는 주민들이 땅을 사서 도로공사를 직접 했다”며 “거산삼거리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1984년
윤용만법무사
"JC와 함께한 내 인생의 황금기"
첫 번째 사진은 1984년도에 합덕JC 창립 기념행사를 치르고 대전·충남 롬 회장들과 솔뫼성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솔뫼성지를 방문한 만큼 이 사진을 가장 먼저 꼽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만해도 솔뫼성지에 교황이 방문할 거라는 생각은 아무도 못했을 것이다.
1984년
“베풀 때 가장 행복해요”
첫 번째 사진은 1984년에 대통령 훈장을 받은 사진이다.
나는 1962년 통정2리 부녀회장을 시작으로 석문면 부녀회장, 당진군 부녀회장까지 맡았다. 새마을사업을 통해 국가사회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새마을 훈장을 받았을 때 매우 감격스러웠다. 지금은 훈장을 액자에 넣어 잘 보관하고 있다. 이외에 새마을여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4년
윤용만법무사
"JC와 함께한 내 인생의 황금기"
다섯 번째 사진은 1984년 당시 중앙회장을 지낸 문희상 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문희상 회장은 이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등 정계에서도 많은 활동을 펼쳤다.
1985년
구본환면천감리교회 목사
“충남에서 최초로 설립된 교회”
첫 번째 사진은 면천교회 초대 목사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유 제 면천군수는 어려운 백성을 도와 군수에 오른 후 교회를 설립하고 면천초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다. 1985년 교회가 설립된 후 신학공동체로 운영되다 1917년 이상만 목사(가운데)가 오게 된다. 이상만 목사는 이후 지역 독립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하다 1919년 이후 중국 상해 임시정부에서 김구 선생(왼쪽)과 독립운동에 전념하신 분이다.
1985년
이임영전 당진군유도회장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계기가”
세번째 사진은 당시 국민학교 도서관에서 새마을 문고 활동을 하던 모습이다.
1985년 순성면 봉소3리에 1500여권의 서적을 들여 놓고 방학 동안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충효특별학교 강사로 활동했었다.
당시의 아이들이 이제는 성인이 됐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월이 빠르게 지났다.
1986년
“새삼 새로운 지난 시간들”
첫 번째 사진은 1986년 예산에 있는 청석수련원에서 새마을 지도자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찍은 단체 사진이다. 나는 맨 아랫줄 왼쪽 세 번째에 있다. 이 때 이곳에는 전국의 새마을 지도자들이 모여서 행정교육을 받았다. 나는 도곡리 이장 직을 맡게 되면서 새마을 지도자 자리는 맡지는 못했지만, 이때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1988년
김평자·김기원송악읍 기지시리 부부
인생 풍파, 아내 때문에 견뎌
세 번째 사진은 송악라이온스클럽에서 활동하면서, 공로패 받을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송악라이온스클럽에서 1988년부터 20년 간 활동했다.
1989년
한만우LG컴퓨터/21세기 컴퓨터 대표
“부모님 설득해준 은사님 못 잊어”
세 번째 사진은 당진시 자율방범연합대에서 활동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1989년부터 1995년까지 당진시 자율방범연합대에서 12개 읍면 연합대 임원들과 함께 봉사했다. 은퇴한 뒤에는 인우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는 각 지대장들과, 연합대를 총괄하던 대장들이 소속돼 있다. 그 시절 우리는 뜻이 참 잘 맞았고 일도 열심히 했다. 내가 봉사를 처음 시작한 것은 고3때다. 여름방학에 난지도에 있는 난지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던 것이 봉사에 대한 첫 기억이다.
1990년
잔치음식 줄여 차리기 운동
1990년대 중반 적십자에서는 ‘잔치음식 줄여 차리기’ 운동을 벌였다. 이 사진은 당시에 부녀상담소장의 딸 결혼식을 도왔을 때 찍은 사진이다. 한국인 정서상 푸짐하게 음식을 내놓다 보니 너무 많은 음식이 버려지는 게 안타까워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함께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990년
박선영송악읍 고대어촌계장
“23살의 나와 아내의 모습”
네 번째 사진은 고대1리 마을회관이기도 한 안성풍어당굿 전수회관에서 경로잔치를 열고 찍은 사진. 마을 임원들이 모두 있다. 안섬풍어당굿은 다들 알다시피 마을의 전통을 이어가자는 취지로 1990년대 중반부터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준비해 행사를 해왔었다. 대제를 3년마다 한번씩 치렀었는데 내가 준비위원장을 2번이나 했었다. 어느 행사든 인원동원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는데 대제를 치를 때 집집마다 다니며 설득하고 참여를 호소했던 일이 생각난다.
1990년
“여성 이장에서 시의원 되기까지”
네 번째 사진은 1990년 당진군여성단체협의회장으로 활동하며 여성개발원에서 여성지도자 연수를 받던 모습이다. 언제부터였는지 여성의 사회참여를 위해 지역의 많은 여성들이 함께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고, 그 중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여성단체협의회다. 앞으로도 여성친화도시 당진에서 여성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며 거듭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1993년
성대용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당진군지회장
“유공자 유족에 대한 지원 전무해”
두 번째 사진은 1993년 4월11일 백문화 1~2대 당진지회장의 장례식 때 모습이다. 신평 매산리가 고향인 백 전 지회장은 육군 소령 출신이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장례문화를 간소화 함에 따라 예전에 비해 약식으로 치러졌다. 당시는 집에서 장례를 치뤘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죽은 이의 넋을 위로했다. 상복은 입은 사람 중 제일 왼쪽에 있는 큰 상주가 지금 서해중앙신협 이사장으로 있는 백미 씨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회원들은 좌측에서 거수경레를 하고 있다.
1994년
“새삼 새로운 지난 시간들”
두 번째 사진은 1994년 도곡리 사무소가 막 지어졌을 때다. 이 사무소는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무소는 지난해 리모델링으로 약간 변했지만 저 간판만은 그대로 사무소를 지키고 있다. 나는 1994년부터 2006년까지 도곡리 이장을 맡았었다. 12년 간 물론 어려운 점이 있기도 했지만, 주민들에게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해나갔다.
1997년
김은하신평면 상오리 전 부녀회장
“기억은 흐릿하지만 추억은 생생해”
세 번째 사진은 상오리 부녀회장으로 1997년부터 2003년까지 활동하던 때 찍은 사진이다.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서림복지회관에 각종 봉사물품을 전달하고 찍은 기념사진이다. 특히 현 최백식 생활안전협의회 회장과 이은수 전 새마을지도자, 전금순 전 부녀회장 등의 모습이 보인다.
1998년
김형태당진생활음악협회 사무국장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역사의 순간”
두 번째 사진은 1998년경 내가 일하던 설악가든 옥상에서 택지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던 읍내지구를 촬영한 것이다. 대부분 논이었던 이곳이 지금은 먹자골목과 상가, 원룸촌으로 변해 버렸다.
1998년
박권병당진군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장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 보내야겠다”
세 번째 사진은 1998년 당진 JC회원 자격으로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열렸던 3.1운동 관련 행사에 참여했었다. 횃불행렬을 재현한 행사였다. 1996년 당진JC회장을 지냈던 나는 1986년 JC에 가입해 활동했었다. 횃불행렬을 보니 최근 대호지면과 정미면에서 열리는 4.4독립만세운동 기념식이 생각나는데 당진에서 한 행사도 참여하지 못한 내가 천안까지 가서 횃불을 들었다니... 옛 사진을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다.
1999년
강인경당진시 여성단체협의회 전 회장
네 번째 사진은
1999년 당진군 여성단체협의회 회장으로 있을 때 찍은 사진이다. 가운데 스카프를 매고 앉아있는 게 나다. 이 당시에 우리나라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기여로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부터 국민훈장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많은 활동을 했던 것 같다. 사진 속에 한 명, 한 명을 보니 그 때 생각이나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사진을 동창과 언니들이 보면 좋아할 것 같아 꼭 신문에 싣고 싶었다.
2000년
이재상율곡어린이집 원장
"사진, 내 삶의 자취"
세 번째 사진은 2000년도에 ‘동화 읽는 어른 모임’ 회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현재의 ‘어린이책 시민연대’의 전신인 이 단체는 지역 내 문화컨텐츠가 부족할 당시 지역 내 독서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송사모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슬라이드를 구입해 전달하기도 했다. 이들은 지역 어린이에게 전래동요 및 동화를 뮤지컬 공연으로 선보이는 봉사활동을 벌였다.
2001년
김형태당진생활음악협회 사무국장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역사의 순간”
세 번째 사진은 청계천의 모습이다. 난 역사를 기록하고 싶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풍경과 모습이 10년 뒤, 아니 20년 뒤 세상에 없을 지도 모른다. 난 그것을 기록하고 남기고 싶다. 청계천의 모습도 그런 의미에서 촬영한 것이다. 2001년과 2002년 몇차례 청계천을 방문해 사진으로 남겼다.
2001년
김근화SK텔레콤 당진중앙대리점 대표
“봉사를 기쁨으로 여겨”
네 번째 사진은 2001년 당진 와이즈멘 충남북 지방장 취임식 때 찍은 사진이다. 1994년도부터 국제봉사클럽인 와이즈멘에서 봉사를 시작해 당진YMCA 2대 이사장을 맡고 2001년엔 당진 와이즈맨 지방장이 됐다. 봉사를 시작한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나는 봉사를 기쁨으로 여겼다. 새벽청소, 연탄봉사, 장학금 지급 등 여러 봉사자들과 일하면서 지역사회를 밝게 만들어 온 것에 보람을 느낀다.
2003년
안홍섭송악e편한세상 아파트 관리소장
"주택관리사라는 자부심"
두 번째 사진은 자유총연맹 청년회장으로 취임할 당시의 사진이다. 내 오른쪽에는 오수권 직전회장이다. 2003년부터 자유총연맹 활동을 해온 나는 이 것을 의미 있는 활동 중에 하나로 손꼽고 있다.
2003년
김용대새마을지도자 합덕읍협의회장
지현아, 동진아! 보고싶다!
마지막 사진은 2003년 합덕로타리클럽 회장을 맡을 당시 강원도 삼척에 위치한 도계에 방문했을 때다. 당시 도계에 큰 태풍이 지나갔다. 이에 합덕로타리클럽은 도계를 방문해 300만 원 상당의 물품 등을 지원했다. 합덕로타리클럽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다.
>>김용대 회장은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 출생 ·신촌초·서야중·서야고 졸업 ·현 상신마트 운영 ·전 합덕로타리클럽 회장 ·현 새마을지도자 합덕읍협의회장
70여 년 전
70년 전 합덕시가 모습과 빵집풍경
첫번째 사진은 지금으로부터 70여년전 합덕시가지의 모습이다. 알아보기 힘들 정도지만 왼쪽에 초가지붕의 상가와 오른쪽엔 판자집에 일본어로 쓰인 듯한 간판이 보인다. 초가지붕의 상가 바로 앞엔 나뭇짐이 보이고 가운데 거리엔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와 등짐을 진 상인들의 모습도 보이는 듯 하다. 이 사진은 합덕 형제사진관 대표 이완구씨가 모인이 갖고 있던 사진을 재촬영한 것이라고 한다. 정면에 보이는 산은 지금 소들공원이 조성돼 있는 서낭댕이산 같다고 이씨는 추정했다.
두번째와 세번째 사진은 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반 합덕중심가에 있던 합덕제빵집의 외부와 내부 작업 장면이다. 한국일보 합덕지국을 운영한 김태수씨가 소유하고 있던 것으로 합덕읍지(1997)에 실린 사진이기도 하다. 읍지 편집위원장을 맡았던 이택수 전 합덕읍장과 김태수씨에 따르면 당시 이 빵집은 6.25 때 남하한 피난민이 설립한 가게로 미군의 밀가루 원조 등으로 원재료가 흔한 반면 쌀은 귀해 이러한 밀가루 빵집이 성행했었다고 한다. 당시 이 집에서는 나막꼬시라는 과자를 만들었는데 값도 싸서 학생들이 주로 사먹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호빵을 비롯, ‘센뻬이’, ‘오꼬시’도 만들어 팔았다. 사진에 나온 작업장면은 카스테라를 만드는 모습인데 카스테라는 계란이 많이 들어가 꽤 비싼 빵에 속해 학생들은 사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사진제공 : 형제사진관, 합덕읍지(1997년)
2007년
임긍순송악읍 반촌1리장
‘반촌1리 새마을지도자부터 이장까지 32년’
두 번째 사진은 기지시줄다리기 집행위원회 임원들과 2007년 압록강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아는 얼굴들이 많으리라 여긴다. 며칠전 송악농협 비상임이사 선거에서 신임이사로 당선됐다. 홍보물에 쓸 이력을 쓰는데 이장단협의회장, 바르게살기 등 내가 거쳤던 단체장이 수십가지더라. 돌아보면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2008년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네 번째 사진은 마을총무를 봤을 때 지역 어르신들을 모시고 중국에 갔을 때의 모습이다. 사진 속 노부부는 나의 부모님이다. 2008년 경 마을 어르신 60명을 모시고 동해에서 배를 타고 블라 디보스톡을 거쳐, 중국 연길의 민들레 마을을 방문했다. 당시 우리 마을 어르신들은 민들레 마을 주민들과 화합을 다지며 잔치를 열기도 했다. 이후 백두산을 방문했다.
2009년
"인심 좋고 공기 맑은 삼웅2리가 최고여~"
두 번째 사진은 2009년에 수덕사 인근 식당에서 마을 사람들과 잔치를 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2009년 당진군 군민모범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개인적으로 모범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모두 마을 주민들의 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축하해 주고 기뻐해 주셔서 수덕사로 함께 놀러 가서 식사를 했었다. 모든 마을 주민들이 웃으며 살 수 있는 마을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함께 도우며 살았으면 좋겠다.
2009년
지운기안섬풍어당굿 예능보유자
늦은 나이에 입은 턱시도와 드레스
두 번째 사진은 2009년 안섬풍어당굿 당집 준공식을 할 때 마을사람들과 찍은 사진이다. 당집은 안섬풍어당굿의 보존과 계승에 큰 도움이 되어 많이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1994~5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안섬풍어당굿은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받았다. 이후 2001년도에 안섬풍어당굿이 문화제로 지정됐고 약 1년 뒤 나는 예능보유자가 됐다. 현재도 안섬풍어당굿이 열리면 장승 제작과 배치기, 선소리를 도맡고 있다.
2010년
<마을 노인들의 사랑방>
고대면 성산1리에는 경로당이 두 곳이 있다. 보통 마을에 하나씩 있는데 성산1리는 지난 2010년 기존 경로당과 별도로 ‘속사경로당’이 지어졌다. 기존의 마을 경로당은 1·2반 노인들이 이용하기에 쉽지 않았기 때문에 2km가 넘는 거리에 위치해 있고, 가운데 들판이 있어 먼 길을 둘러가야 했다. 눈, 비가 오면 1·2반 노인들은 전혀 경로당을 이용할 수 없었다.
이 같은 불편이 계속되면서 2010년 1·2반 노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경로당이 마련됐다. 어느덧 속사경로당이 문을 연 지도 10년이 지났다. 여전히 속사경로당은 마을 노인들의 보금자리로 잘 활용되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어르신들은 윷을 놀기도 하고, 식사도 함께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하면서 마을 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속사경로당의 첫 회장은 이병직 고대노인대학장이 맡았다. 속사경로당이 문을 열고 처음으로 기를 올렸을 때 사진이 남아 있다. 이 전 회장은 “경로당 건립은 마을 노인들의 오랜 숙원이었다”며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당시 민종기 전 군수가 많이 도와줬다”고 말했다.
“10년 전에 비해 사람들이 많이 줄었지. 20여 명이 돌아가셨고, 5명은 요양원에 가 있어. 지금은 속사경로당을 이용하는 노인들이 30명 남짓이여.”
2010년
“전신주에 올라 걸었던 현수막”
네 번째 사진은 2010년 이장단협의회장들과 함께 중국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찍은 사진이다. 각 마을에서 바쁘게 활동하고 있어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여행을 통해 함께 할 수 있어 좋은 경험이었다. 다들 나보다 경험이 많고 연륜 있는 분들인데 내가 의견을 내면 항상 잘 들어주셔서 늘 감사하다. 사진 속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겐 정말 소중하다.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
지난해
“결혼식 다음날 내린 다복스런 눈”
세 번째 사진은 지난해 당진향교 석전대제에서 행사를 치르는 모습이다. 당진향교에서 총무장의를 맡고 있는 나는 석전대제마다 제례관들을 사당 안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알짜’를 맡는다.
2010년 이야기
내 인생의 열정을 한데 모은 사진
세 번째 사진은 소리나눔 시절 당진사랑시민모임에서 파도리로 단합대회를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 당진사랑시민모임에는 소리나눔 외에도 다양한 분과모임이 있었고 학생모임만 해도 50~60명이 있었던 시기다. 독서토론반, 봉사활동분과는 물론 성서연구분과도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내가 어디 끼어있는지 모르겠다. 분명 엎드려 있는 사람 중 하나일 텐데...
정리 김기연
2011년 이야기
강홍준자연보호 당진군협의회장
“자연보호가 내 삶의 큰 기둥이었다”
첫 번째 사진은 제26회 당진군민체육대회에서 당진읍이 우승을 할 때 찍은 사진. 왼쪽에서 북을 들고 있는 사람이 나다. 내 옆이 장준섭 당시 당진읍장이다. 장준섭씨 모습도 참 젊다.(웃음).
지난해 어버이날
"인심 좋고 공기 맑은 삼웅2리가 최고여~"
첫 번째 사진은 지난해 어버이날을 맞아 당진에 사는 독거노인들에게 과일을 전달하며 찍은 기념사진이다. 삼웅2리 노인회에서는 매년 노인들을 위한 봉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때는 군에서 추천한 독거노인 12명에게 과일을 한 상자씩 전달했다. 나와 함께 상자를 들고 있는 사람은 유재건 전 노인회장이다.
지난 6월
정덕순송악로타리클럽 회장
[정덕순 송악로타리클럽 회장] 4-H와 송악로타리클럽 활동
세 번째 사진은 지난 6월 송악로타리클럽 이취임식 모습이다. 제13대 회장인 나는 송악로타리클럽의 창립멤버로 활동하면서 3대 총무, 5대 총무를 맡았다. 3대 때는 지구 우수클럽, 5대 때는 지구 최우수클럽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나도 개인적으로 지구 최우수총무 표창을 받기도 했다. 송악로타리클럽이 초창기 자리를 잡는데 나름대로 큰 기여를 한 것 같아 뿌듯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송악로타리클럽이 클럽사무실로 쓰던 송악복지회관이 송악도시개발지구에 편입돼 철거되면서 클럽사무실을 더 작은 장소로 옮겨야 했다는 것이다. 소방대와 도서관은 인근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 옮겨가지만 민간단체인 송악로타리클럽은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애를 먹었다. 회장 취임 전에 나름대로 준비를 하며 대처를 했는데 많이 미흡한 것 같다. 그렇지만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위한 활동은 멈출 수 없기에 여러 회원들과 함께 힘을 모아 지역봉사활동은 꾸준히 벌일 것이다.
15년 전
"인심 좋고 공기 맑은 삼웅2리가 최고여~"
세 번째 사진은 15년 전에 면천면개발위원회에서 공동경비구역으로 견학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에 나는 면천농협 이사를 맡고 있었다. 오른쪽부터 면천농협 이사였던 윤희복 씨, 나, 면천면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김수해 사장, 한 씨 종친회장을 맡았던 한정우 씨다. 태어나서 줄곧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덕에 면천면개발위원회를 비롯해 면천농협 이사 등 직책을 맡게 됐다.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주위 선후배들이 도와줘서 탈 없이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지난해 노인회장 임기를 다해 자리를 내놓으려고 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한 번 더 맡아 달라고 하여 재임을 하게 됐다. 앞으로도 물심양면으로 마을 일에 협조할 생각이다. 화합하고 단결해 살기 좋고 인심 좋은 마을이 되길 바란다. 노인회에서는 내년에 80세가 넘은 마을 어르신들에게 설 선물을 전달해 드릴 계획을 갖고 있다.
2011년 이야기
구관회송악읍 석포리 전 이장
“한미 FTA 통과로 농촌 미래 걱정”
세 번째 사진은 고대리 사람들과 함께 내도리 야산에 야유회를 갔다가 찍은 사진이다. 베트남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캐논 카메라로 찍은 사진인데 당시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이라 군복 다려 입고 카메라 들고 나서면 꽤나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었다. 가운데 군인들의 모습도 보이는데 당시에는 초소가 있어 방위들이 근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을 사람들이 단합이 잘돼 재밌게 지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12년
“가족같이 지낸 사관리 주민들”
네 번째 사진은 가뭄이 극심했던 2012년도 여름에 당진의 군부대를 방문해 위문품을 전달하던 사진이다. 가뭄이 들자 논과 밭에 물을 대느라 당시에 많은 농민들이 고생했다. 군부대에서도 장병들이 지원 나와 일손을 거들었다.
더위에 지치고 힘들었을 테지만 묵묵히 봉사해준 병사들에게 너무도 고마워 진행하게된 위문방문이었다.
2012년
최병부당진시행정동우회 감사
"잊지 못할 ‘당진’의 추억"
다섯 번째 사진은 2012년 12월에 당진아동센터 어린이들과 후원회 회원들이 행사 후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명환 전 당진군청 산림축산과장의 소개로 후원회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현재는 당진시아동센터후원회 이사다. 2010년부터 활동을 했고 매월 10일에는 후원회 모임에 빠지는 날 없이 참석한다. 어린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1953년 충남 태안군 출생
·<한국공무원문학>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수필집 <하늘엔 청운이>, 자서전 <인생60 공직30> 출간
·현 당진시행정동우회 감사
·현 당진문화원 대의원
·현 당진아동센터 후원회 이사
·현 한국공무원 문학협회 이사
·현 (사)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 사무국장
·현 서산시 석남동 주민자치위원장
2012년 이야기
송영우당진유리 대표
“옛 당진 시가지, 지금은 상상도 못해”
첫 번째 사진은 옛 차부의 윗편 동산이다.
나를 중심으로 사진 좌측편에는 초가집도 보인다. 우측으로는 농협창고도 보이고 있다. 약 42년 전 당진의 시가지 모습이라면 지금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2012년 이야기
송진섭아날도바시니 당진점 대표
“학교에서 제식훈련, 지금은 상상 못해”
두 번째 사진은 청년 시절 청년회 모임을 가진 회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한국 천주교의 베들레헴으로 순교 신앙의 못자리인 솔뫼성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배경으로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보인다. 김대건 신부의 동상은 변함없이 지금도 솔뫼성지에 서 있지만 사진 속의 우리들은 세월에 물들어 버렸다.
2012년 이야기
최장룡신평면새마을지도자협의회 회장
“선글라스에 장발로 멋 부린 시절”
두 번째 사진은 개심사에서 찍은 사진이다. 왼쪽부터 신송2구 이주완 이장과 나, 제주도에 사는 박영철, 서울에 사는 최현우가 함께 여행가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시간이 흘러 네명 모두 모습이 많이 변했다. 지금이야 모든 경제활동이 현금으로 이뤄지기에 어느 가정이나 어느 정도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당시 농촌에서는 현금이 필요할 때마다 장에 쌀을 내다 팔아 현금을 마련했다. 철 없던 우리도 여행을 가기 위해 현금이 필요할 때면 서로가 돌아가며 각자의 집에 쌓아 놓은 쌀을 장에 내다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 친구들과 여행은 가고 싶고 돈은 없던 시절 꾸며낸 계획이다.
2012년 이야기
신현국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 당진3동 위원장
“평생을 함께한 시곡동 선·후배들”
두 번째 사진은 동네 후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우리 모두 시곡동에서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해 왔다. 사진 좌측부터 나, 김민영, 심경택 이다. 모두 시곡동에서 살며 이제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인생의 좋은 동반자는 배후자일지 모르지만 형제처럼 친구처럼 지내온 동네 선·후배 사이도 그에 못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다.
2012년 이야기
최경숙고대 슬항2리
“슬항리에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
두 번째 사진은 현재 오도교 부근에서 가족들과 함께 야유회를 가서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오도교 주변에 대부분 논이 자리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바닷물이 들어오던 때였다. 사진 속 뒤편으로 보이는 우측 작은 섬이 오도다. 슬항리에서 우두리를 가기 위해서는 나룻배를 타고 오도로 넘어가 한참을 걸어야 했다.
오도를 주변으로 슬항리 방향 해안가에서는 망둥어 낚시질도 하고 꽃게도 잡고 굴도 땄다. 지금은 석문방조제가 막히면서 바닷물이 들어오던 지역은 모두 논으로 바뀌었고 다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어 버렸다.
2012년 이야기
최재원원당동 한울인테리어지업사 대표
“지나간 추억을 감사히 여기며”
세 번째 사진은 당진시자율방범연합대 송산면지대장으로 취임하던 당시의 사진이다. 지역의 안전과 범죄예방, 발전을 위해 활동하기로 다짐했던 초심을 상기할 수 있었다.
방범 부주의로 인해 사고가 발생해 주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보다 주변의 이웃들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과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2012년 이야기
이진섭석문면 교로2리
“바다는 삶의 터전”
두 번째 사진은 석문면 교로2리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하던 당시의 사진이다.
회원들과 함께 평안마을을 찾아가 위문품을 전달했던 기억이다. 새마을지도자로서 지역에 봉사하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고통을 분담할 수 있었다는 뿌듯함이 아직도 남아 있다.
2012년 이야기
“친구·모임·가족, 삶을 살아가는 행복”
두 번째 사진은 합덕FC 회장 이·취임식때 찍은 사진이다. 합덕FC에서 활동하며 회원들과 함께 친목을 다지고 건강을 지켜오고 있다.
하지만 지역 내 선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에 젊은이가 없다 보니 젊은 회원들이 적을뿐더러 교육과 직장 여건 등으로 그나마 있던 젊은이들이 당진읍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2012년 이야기
황순희새마을운동 당진시지회 우강면 부녀회 회장
“가족 같은 우강 창리 주민들”
세 번째 사진은 태안해수욕장 백사장에서 남편과 ‘형제친목회’ 회원인 이병상 씨가 씨름을 하다 서로 장난을 치는 사진이다. 남편은 고스란히 얼굴에 모래를 맞고 있는 재미있는 모습이다.
형제친목회는 우강면 창리 주민들의 친목모임이다. 벌써 33년도 넘게 활동해 가족과도 같은 분위기다. 특히 동네 주민들로 이뤄져 있어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가깝게 지내고 있다.
2012년 이야기
남준우당진산업가스 대표
“오토바이의 매력에 빠져 있던 젊은 시절”
네 번째 사진은 당진읍 새마을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던 때의 사진이다. 성남의 새마을연수원에서 당시 당진군새마을협의회 임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새마을협의회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 오면서 지역발전과 지역봉사의 구심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뜻있는 활동을 함께하면서 많은 도움을 줬던 회원들과 임원들에게 감사하다.
약 30년 전
오영환순성면개발위원회 위원장
“고된 농사일 끝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
네번째 사진은 약 30년 전 사진으로 기억되고 있다. 옥현리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마을 제초작업을 마치고 찍은 사진이다. 여름철 작업을 마치고 고된 땀을 흘리며 시원한 나무그늘 밑에서 마시는 막걸리 한잔은 하루의 피로를 풀기에 그만이었다.
지금은 농사에서부터 제초작업까지 사람의 손을 대신해 기계가 도맡아 하고 있어 이런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 상황이다.
2012년 이야기
황순희새마을운동 당진시지회 우강면 부녀회 회장
“가족 같은 우강 창리 주민들”
네 번째 사진은 형제친목회 여성회원들이 함께 모여 찍은 사진(우측 첫 번째)이다. 장소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수의 한 포구로 생각된다. 우리는 해외·국내의 다양한 장소로 여행을 다녀왔다. 농사일에 바쁜 시기를 마무리하고 나면 서로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여행도 다니고 쉽게는 이웃집에 자리 잡고 칼국수며 보리밥 등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여성회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된다.
2012년 이야기
이진섭석문면 교로2리
“바다는 삶의 터전”
네 번째 사진은 교로2리 장미자 부녀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새마을에서 오랜시간 활동했던 만큼 ’우리마을 사랑운동’ 최우수상을 함께 수상했던 기억이 난다.
새마을지도자를 하며 타 시·군에 강사로 초청돼 강의 및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나하나 과거를 돌아보면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통해 삶을 즐기고 보람을 찾았다.
당진에 정착하며
고마운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네 번째 사진은 당진에 정착해 좋은 인연을 맺고 있는 (사진 둘째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인덕식(한성건재), 이재선(영일목재), 나, 한경범(한일건재), 서길원(영칠PVC) 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당진에 정착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을 때 힘이되고 버팀목이 되어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서로 연관된 사업을 하며 형제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지내왔다.
2013년
김영자송악읍엄마순찰대장
짝사랑 때문에 시작한 육상
마지막 사진은 송악읍엄마순찰대 대장으로 취임하면서 찍은 단체사진이다.
나는 5년 째 송악읍엄마순찰대장을 맡고 있다. 내가 엄마순찰대에서 활동하게 된 것은 남편 때문이다. 남편이 당진시인명구조대원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을 당시, 우리가족은 남편의 봉사현장을 따라 8~9년 간 난지섬으로 여름휴가를 가곤 했다. 남편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엄마순찰대에 가입했다. 나는 열성적으로 엄마순찰대 활동을 해나갔다. 엄마순찰대 활동으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추억도 많다. 하지만 엄마순찰대의 여건이 열악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앞으로 엄마순찰대가 활성화되길 바란다.
한편 송악읍엄마순찰대 이외에도 다양한 봉사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봉사를 열심히 한 덕에 2013년 우수봉사자상도 수상하고, 2014년엔 당진시자원봉사센터 주관 해외봉사도 다녀왔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봉사를 하고 싶다. 내가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두 아들 또한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김영자 대장은
·1970년 경북 영덕 출신
·현 송악읍 한진2리 부녀회장
·현 송악읍엄마순찰대장
·현 당진시엄마순찰대 부대장
·현 송악읍주민자치위원, 송악사랑회원 활동
·현 아모레퍼시픽 당진특약점 근무(16년 간)
2013년 이야기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
첫 번째 사진은 합덕청년연합회에 소속되어 있는 푸른회(회장 강경원) 회원들과 함께 영월 동강에서 찍은 사진이다.
회원들과 함께 고기도 구워먹고 래프팅도 즐기고 청팀과 홍팀으로 나눠 서바이벌 게임도 벌였다. 1-1의 사진은 서바이벌을 준비하는 홍팀, 1-2는 내가 속한 청팀의 모습이다.
26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푸른회는 마치 가족과도 같은 친분을 자랑한다. 이날 회원 가족들도 함께 참여해 버스 한대가 가득 찼던 기억이다.
9년 전
“금슬 좋은 부부의 30년 결혼인생”
첫 번째 사진(남편 박상길)은 새마을지도자와 부녀회장들이 꽃길을 조성사업을 하는 모습이다. 이곳은 원당 삼거리 부근의 모습으로 사진 속에서 꽃길을 조성 중인 곳에 당진원당이안아파트가 들어섰다. 불과 9년 전의 모습이지만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놀랍다.
당진은 그만큼 급발전을 이뤘고 예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 곳들이 많다. 옛 추억을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그만큼 당진이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2013년 이야기
“어머니이자 아내로 고생한 아내”
첫 번째 사진은 마을 야유회에서 마을주민 최상익 씨와 찍은 사진이다. 새만금으로 마을 야유회를 떠났던 우리는 주민 간 화합을 다졌다. 주민들이 함께 야유회도 다니고 마을일에 참여할 때면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도 나누며 서로 웃고 격려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곤 했다.
2013년 이야기
“지역발전 위해 땀 흘린 옛 추억”
세 번째 사진은 당진시자연보호협의회에서 활동하던 당시의 사진이다. 추석을 맞아 지역 내 환경정화활동을하며 찍은 사진이다. 지역 내 사회단체에 소속돼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작은 힘이지만 지역을 위해 활동한다는데 의의를 두고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생활해 왔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지역현안에 대해 고민도 했고 지역 내 곳곳에 방치된 쓰레기며 폐기물을 치우며 회원들과 함께 땀 흘리기도 했다.
2년 전
“금슬 좋은 부부의 30년 결혼인생”
두 번째 사진(아내 김순애)은 마을 부녀회에서 봉사물품을 전달하는 사진이다. 마을 부녀회에서 활동 중인 나(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는 부녀회원들과 소망의 집을 방문해 금일봉과 봉사물품을 전달하고 빨래와 청소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펼쳤다. 바쁘게 살다보니 나나 남편은 마을과 각종 봉사단체에서 활동이 많이하지 못했다. 불과 2년 전부터 대한적십자사 당진지구협의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할 만큼 사회활동이 제한적이었다. 요즘에 들어서야 남편도 통장 일을 맡고 나도 부녀회장 일을 보면서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2013년 이야기
“여성 이장에서 시의원 되기까지”
두 번째 사진은 (당시) 당진읍 청룡리 이장을 할 때 찍은 사진이다. 내가 이장을 맡게 되면서 당진에서 최초로 여성 이장이 탄생했다는 의미 있는 기록이 남았다. 지금이야 여성들의 사회진출 기회가 확대돼 경제활동은 물론 봉사 및 단체에서 많은 참여가 이뤄지고 있지만 당시만해도 여성의 사회활동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릴 때
“그리운 우리마을의 옛모습”
두 번째 사진은 어릴 때 살던 집이다. 동네사람들 모두 “산 밑 첫 째 집”이라고 불렀다. 여름 즈음이면 개구리 우는 소리에 잠을 못 자 뒤척이곤 했다. 개발로 마을이 없어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흩어졌다. 마을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지금쯤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2013년 이야기
“지역발전 위해 땀 흘린 옛 추억”
네 번재 사진은 당진이 시 승격이 이뤄지기 전 활동한 당진군 내고장 주민등록갖기운동 추진위원회의 사진이다. 당시 당진에는 시 승격에 부족함 없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주민등록을 이전하지 않은 채 생활하는 미전입신고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당진의 여러 기업 및 산업체들을 방문해 주민등록 이전을 권고했고 시내권을 돌며 가가호호 방문해 홍보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시민들의 노력들이 모여 지금의 당진시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한중한의원 이사장일 무렵
김영애행정리 푸드뱅크 대표
“어머니에서 할머니가 되던 날”
세 번째 사진은 남편이 한중한의원 이사장일 무렵에 의료봉사를 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유치원을 오래 운영하다 보니 복지사업에도 관심이 생겼다. 남편은 한중한의원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지내며 봉사활동을 다녔는데 그때마다 함께하며 봉사를 다녔다. 한중한의원은 지금의 계성초 자리에 있었다.
지난해
“금슬 좋은 부부의 30년 결혼인생”
세 번째 사진(아내 김순애)은 지난해 당진여성문화제에 참석해 찍은 사진이다.
최근 적십자에서 사랑의 빵을 직접 만들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는 활동도 하고 각종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봉사에 대한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사진 속에는 나를 비롯해 원당1통 부녀회원들의 모습이다. (왼쪽부터) 이무형 회원, 최재연 총무, 나, 이성희 부녀회장이다.
2013년 이야기
“여성 이장에서 시의원 되기까지”
세 번째 사진은 제2회 상록아가씨 선발대회 뽑힌 미녀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열지 않는 행사이지만 당시 미스코리아에 뒤지지 않는 미녀들을 선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름다운 한복과 꽃이 어우러져 당시 선발된 상록아가씨들이 더욱 돋보인다.
2013년 이야기
“그리운 우리마을의 옛모습”
세 번째 사진에서 보이는 곳은 아마 이안 하늘채 아파트 쯤 일 것이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근처에 냇가가 있었는데 돌부리라고 수심이 깊던 곳이었다. 거기서 낚시도 하고 종종 수영도 했다. 만약 당진의 자연이 그대로 보존됐다면 경쟁력을 가진 도시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2013년 이야기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
네 번째 사진은 합덕청년연합회 임원들과 가야산 등산에서 찍은 사진이다. 단합이 잘돼는 우리 임원진을 비롯해 회원들은 지역을 이끌어갈 의식있는 청년들이 모여 활동 중이다. 지역 사랑과 발전, 지역을 이끌어갈 인재를 육성하는게 합덕청년연합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합덕읍이 앞으로도 발전을 이루고 발전에 따른 지역민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청년들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2013년 이야기
염윤상당진시임업후계자영농종합법인 총괄이사
“행복과 영광의 발자취”
네 번째 사진은 당진군이던 시절 충청남도 도민체육대회가 처음 당진에서 열렸던 때다. 나는 당진읍 체육회장의 추천으로 성화봉송 주자로 선발됐다. 당진에서 열리는 첫 도민체전이어서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당시만 생각하면 아직도 뿌듯하고 가슴이 벅차다.
※ 사진속으로 추억속으로에 참여하실 독자를 기다립니다. 전화 : 355-5440 / 010-9401-8410
2013년 이야기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한 지난 날”
네 번째 사진은 면천면 자율방범기동순찰대 대장 이·취임식 때 사진이다. 내가 10대 대장으로 취임한지 벌써 5년이다. 5년 동안 지역에서 대원들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대원들에게 항상 단합된 모습으로 지대를 잘 이끌어나가길 바란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10여년 전
“가족같이 지낸 사관리 주민들”
첫 번째 사진은 10여년 전 사관리 마을주민들과 계곡으로 놀러가서 찍은 사진이다. 사관리 주민들은 서로 정이 깊고 친분이 두터워 항상 가족같은 분위기 속에 지내왔다. 매년 여름이면 사관리에서 가까운 계곡들을 찾아가 더위도 식히고 음식도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2014년 이야기
최연례당진시 부녀회장
부자 중에 부자는 ‘자식부자’
두 번째 사진은 성구미 바닷가에서 교회운동회를 열었을 때 사진이다. 밀가루에 사탕을 숨겨 놓고 먹는 게임이었다. 아마 막내딸 같은데, 정확하진 않다. 손을 대지 않고 입으로만 먹는 것이어서 딸의 얼굴이 밀가루 범벅이다. 사진이 흔들려서 아쉽긴 하지만 재밌는 추억이기에 가지고 왔다.
청년회 활동 당시
이해성기지초등학교 운영위원장
“18년 만에 올린 웨딩마치”
두 번째 사진은 송악읍청년회 활동 당시 줄다리기축제에 지원 나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한 7~8년정도 된 사진이라 또렷하게 기억 나진 않는다. 나는 송악읍청년회 총무를 8년 정도 맡았다.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교통봉사 준비 등 많은 봉사를 했다. 지금은 청년회 활동을 하고 있진 않지만 열심히 봉사하며 지낸 즐거운 추억 중에 하나로 남아 있다.
2014년 이야기
“전신주에 올라 걸었던 현수막”
두 번째 사진은 제1회 면천진달래축제 행사에서 MC를 볼 때 찍은 사진이다. 첫 회는 마을주민들이 각자 주머니를 털어 행사비를 마련했다. 면천진달래축제는 내가 기획하고 진행한 행사라서 애착이 크다. 이 때 행사비를 아끼기 위해 직접 현수막을 당진 곳곳에 게시하러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전신주에 올라 현수막을 걸 때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면천진달래축제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는 것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크다.
2014년 이야기
윤용만법무사
"JC와 함께한 내 인생의 황금기"
두 번째 사진은 한국JC운영 효율화를 위한 특별 연수회에서 찍은 사진이다. JC는 숭고한 봉사단체다. JC는 젊은이들을 위한 단체이자 꼭 필요한 마음가짐을 두루 가르친다.
JC활동을 통해 젊은이들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했고 지역봉사는 물론 정치, 경제, 문화를 선도하는 지역의 리더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
10년 전
지춘우송악읍 중흥리 부녀회장
“변함 없는 우리 부부의 사랑”
두 번째 사진은 남편(가장 뒷줄 왼쪽 두번째)이 마을 반장을 맡았을 때 중흥리 반장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장소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어떤 교육을 받으러 가서 찍은 사진인 것 같다. 남편은 10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몸이 좋지 않다. 지금은 건강을 많이 회복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말도 잘하고 거동에도 큰 지장이 없다. 남편의 병환으로 집안일은 물론 농사일까지 도맡아야 했지만 불평불만 없이 살아왔다.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의 삶에 감사하며 만족하고 살고 있다. 다만 더 많이 마을 일에 기여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2014년 이야기
홍승남순성면 갈산리
“절인 배추 사업, 갈산리가 원조”
두 번째 사진은 생활안전협의회에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얼마전 순성면에 순성파출소가 개소하면서 순성면생활안전협의회가 구성됐지만 그 이전에는 합덕·순성·우강·신평을 관할하는 합덕지구대 소속 생활안전협의회로 활동해 왔다. 이 사진은 합덕생활안전협의회로 활동할 당시의 사진이다. 나는 지금 순성면생활안전협의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순성면민들의 안전과 치안안정을 위해 힘쓰고 있다.
당시만 해도 여러 지역들이 함께 활동하다보니 활동범위가 광범위해 어려움이 컸다. 지금은 지역 내 17개 리를 집중적으로 관리·활동할 수 있게 됐다.
몇 년 전
이해성기지초등학교 운영위원장
“18년 만에 올린 웨딩마치”
세 번째 사진은 몇년 전 기지시줄다리기 축제에 참여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축제준비위원회 활동을 통해 청년회 시절부터 행사에 쭉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근 10년 정도 축제와 함께한 셈이다. 이전에는 윤달이 낀 해에만 축제를 열었는데 요즘은 매년 축제가 이뤄지고 있다. 축제에 참가하면서 연예인들과 함께 사진도 많이 찍었다. 이번 축제에서는 ‘6시 내 고향’에서 취재를 나왔는데 아나운서가 말을 참 잘 했던 기억이 난다.
2014년 이야기
“전신주에 올라 걸었던 현수막”
세 번째 사진은 면천초등학교 100주년 행사에서 사회를 볼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연예인협회에 가입해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만큼 어떤 것을 진행하고 기획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이전엔 마을의 잔치마다 행사 진행을 도맡아 했다. 많게는 하루에 서너 개씩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요즘에도 가끔 어르신들을 만나면 그때 사회 보던 친구 아니냐고 반가움을 표현하는 분들도 계신다.
2014년 이야기
윤용만법무사
"JC와 함께한 내 인생의 황금기"
세 번째 사진은 63차 정기총회에 합덕JC 회장으로 자리한 당시 찍은 사진이다.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던 시기에 JC활동에 매진했던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인생을 뒤돌아볼 시기에 접어드니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2014년 이야기
지춘우송악읍 중흥리 부녀회장
“변함 없는 우리 부부의 사랑”
세 번째 사진은 중흥리 지태관 이장님이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할 당시 마을 부녀회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부녀회원들이 많이 참여해 지금도 활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회원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활발한 활동이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지역 내 개인봉사단체로 활동 중인 가족봉사단체 누리보듬이 항상 부녀회 일에 동참해줘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014년 이야기
홍승남순성면 갈산리
“절인 배추 사업, 갈산리가 원조”
세 번째 사진은 순성면 갈산리 주민들의 친목모임인 협신 친목회에서 환갑을 맞은 5명의 회원을 위해 합동 회갑연을 열었던 사진이다. 이날 회원들은 현수막은 물론 음식까지 손수 장만해 환갑을 맞은 회원들을 기쁘게 대접했다.
6년 전쯤
최연례당진시 부녀회장
부자 중에 부자는 ‘자식부자’
네 번째 사진은 내가 당진군 부녀회장으로 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아마 6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5년 전 서훈지도자 초청 만남의 날 행사에서 당진군지회의 사람들을 만나 볼 수있어 좋았다. 부녀회가 없으면 마을이 안돌아간다는 말이 있을 만큼 부녀회는 마을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이때 각 마을 부녀회장들이 잘 따라주고 협조도 잘해줘서 힘들지만 즐겁게 일했다.
2014년 이야기
이해성기지초등학교 운영위원장
“18년 만에 올린 웨딩마치”
네 번째 사진은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 줄다리기 시연행사를 나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이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시장이었을 때여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서울까지 가느라 고생했지만 우리 전통 문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뿌듯했다.
2014년 이야기
김홍수정미면 수당리 부녀회장·정재능 이장 부부
“물난리에서 건진 소중한 사진”
네 번째 사진은 수당리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생신잔치와 경로잔치를 열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수당리는 효자마을로 선정됐을 만큼 어르신들을 위한 행사를 많이 개최하는 편이다. 잔치를 준비하며 부녀회원들과 고생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몇일 전 중복을 맞아 마을잔치를 했을 때도 80세 이상 어르신 22분에게 지팡이를 선물하기도 했다. 부녀회장직이 힘들고 고생도 많이 하긴 하지만 그 뒤에 오는 보람이 있어 더욱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2014년 이야기
윤용만법무사
"JC와 함께한 내 인생의 황금기"
네 번째 사진은 대전·충남 롬 회장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같은 기수의 회장들이 모인데다 충청권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친분을 쌓아갈 수 있었다. 그만큼 JC를 통해 인생을 공부할 수 있었고 많은 인맥을 쌓을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2015년 이야기
박상념새마을지도자 당진2동 협의회장
“돈으로 살 수 없는 나눔의 기쁨”
세 번째 사진은 새마을협의회에서 김장을 담가 150여 상자 정도를 불우이웃에게 전달할 때 찍은 사진이다. 우리는 평안마을, 광명실버하우스 등 복지기관에 정기적으로 김치를 전달하고 있다. 매달 월례회가 끝나면 회원들과 모여 김치를 담근다. 여기에 쓰이는 자금은 꽃묘 사업, 하천·도로변 벌초 등 새마을 회원들이 직접 일해서 번 돈으로 지원한다. 채소 사업을 하고 있는 채운3통 김만수 지도자가 배추 기증도 많이 했고 협조도 잘 해준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2015년 이야기
박상념새마을지도자 당진2동 협의회장
“돈으로 살 수 없는 나눔의 기쁨”
네 번째 사진은 새마을협의회에서 다문화 가정들과 모여 고추장 담그기 행사를 한 사진이다. 이 행사를 통해 고추장을 담그는 전통 방법을 전수하고 예절교육과 식사시간도 가졌다. 지난해의 경우 30여 명의 다문화 가정들과 함께 고추장을 담그며 시간을 보냈다. 봉사하는 것은 참 뿌듯하다. 이 기쁨은 돈으로 살 수 없다.
2015년 이야기
박상념새마을지도자 당진2동 협의회장
“돈으로 살 수 없는 나눔의 기쁨”
마지막 사진은 다 쓴 현수막을 재활용해 가방으로 제작해서 추석이나 설에 시장 소비자들이나 상인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는 사진이다. 이 가방은 환경에도 좋고 실용적이라 일석이조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서 꾸준히 봉사할 계획이다.
2016년 이야기
한기창면천향교 전교
의동생 구형아, 보고싶다
세 번째 사진은 당진뉴스 창간 16주년 기념식 때 찍힌 사진이다. 이 때 나는 자랑스런 당진인상을 받았다. 당시 향교에서 청소년 충효교실을 운영하고 마을 학생들에게 한자를 알려주곤 했다. 그 때 지역을 위해 봉사한다고 자랑스런 당진인상을 받았다.
한편 지금은 당진시남부노인복지관에서 글사랑 교육을 마스터해 한자반 강의를 하고 있다.
2016년 이야기
편영범고대면농촌지도자회장
"한껏 멋 내던 젊은 시절"
세 번째 사진은 예비군 소대장 출신들이 전역한 다음 조직한 고대면 향우회 회원들과 찍은 사진이다. 이들과는 36년 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15명의 회원들이 활동을 하고 있고 매년 4회 부부동반으로 함께 여행을 가곤 한다. 이 사진은 20여 명의 회원들이 함께 뱃놀이를 갔다가 찍은 사진이다. 뱃놀이를 가는데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은 채 한껏 멋 낸 우리들의 모습이 참 재밌다.
2016년 이야기
황정옥대한적십자사 당진2동 봉사회 회장
"며느리와 함께한 첫 여행"
네 번째 사진은 영랑사에서 신도회 총무를 맡고 있던 당시의 사진이다. 시어머니를 따라 우연히 영랑사에 갔다 꾸준히 사찰을 다니게 됐고 총무까지 맡게 됐다. 이후 스님을 따라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10여 년간 활동했다. 이 당시에 했던 활동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봉사로 이어졌다.
당시 내 별명이 ‘파마스님’이었다. 도복을 입었으니 스님인 것 같긴 한데 머리는 풍성한 파마머리여서 파마스님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것 같다.
2016년 이야기
"딸 같은 둘째 아들 종희"
네 번째 사진은 신촌초등학교에서 아미산을 등반했을 때 아들 종희와 찍은 사진이다. 신촌초등학교는 종희가 재학중인 학교이기도 하지만 나의 모교이기도 하다. 현재 나는 3년째 신촌초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학교를 다녔을 때만해도 한 학년당 4반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2·3·4학년이 하나의 반으로 합반할 정도로 인원 수가 매우 적다.
주변의 학교들이 폐교되고, 신촌초 또한 폐교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호순철 합덕읍 이장단협의회장은
1963년생 합덕읍 대합덕리 대호 출신
현 신촌초등학교 운영위원회장
현(주)대호건설 대표이사
박다솜 인턴기자 ekttha@naver.com
올해
한기창면천향교 전교
의동생 구형아, 보고싶다
네 번째 사진은 올해 면천향교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유림총회에서 지난 2월 23일 피선돼 지난 3월 1일자로 취임했다. 유림생활은 1997년부터 했다. 나는 공자님의 인(仁) 사상과 선비정신을 본받아 선조들의 전통적인 삶을 살고자 향교를 찾았다. 면천향교에서 큰 책임을 맡은 만큼 앞으로 3년의 임기동안 면천향교의 발전을 위해 힘쓸 것이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유교가 종교라고 오해를 한다. 나는 천주교회를 다니고 있으며 모세라는 세레명도 갖고 있다. 유교는 현실주의에 입각한 학문이자 철학인데 사람들은 유교를 종교라고 생각한다. 이 점이 굉장이 아쉽다.
>> 한기창 면천향교 전교는
·1932년 순성면 봉소리 출생
·충북대학교 농학과 졸업
·충청도 산림과, 충주사방관리소,
증평사업소 주임
·금산고, 서산농고, 당진중, 면천중,
합덕농고에서 32년 5개월간 교직생활
·현 순성노인대학 학장
지난해
황정옥대한적십자사 당진2동 봉사회 회장
"며느리와 함께한 첫 여행"
다섯 번째 사진은 지난해 대한적십자 당진2동 봉사회의 회원들과 사랑의 빵나눔굼터 봉사를 끝내고 찍은 기념사진이다. 사랑의 빵나눔굼터 봉사는 14개 읍면동이 한 달에 한 번 씩 돌아가며 활동한다. 직접 빵을 만들고 전달하는 활동이라 힘들기도 하지만 빵을 선물받은 어르신들이 좋아하셔서 보람차다.
박희주 인턴기자 gmlwn3744@naver.com
>> 황정옥 회장은
·전 영랑사 신도회 총무
·전 한국자유총연맹 당진군회 총무
·전 사랑나눔회 당진군회장
·전 동문리 새마을 부녀회장
·현 대한적십자 당진2동 봉사회 회장
2017년
김낙출순성면 옥호2리 이장
“누에 먹고 쑥쑥 자란 키”
네 번째 사진은 순성면 옥호2리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옥호2리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했다. 지난해부터는 옥호2리 이장으로 선출돼 봉사하고 있다. 나는 베푸는 것이 기쁨이고 나누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로 인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 보람이다.
2017년 이야기
김문곤고대면 성산1리 노인회장
“세상 구경할 수 있어 행복”
첫 번째 사진은 고대면 성산1리 이장 임명장 수여식 때 찍은 사진이다.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나인데, 왼쪽에는 주영남 전 장항1리 이장, 오른쪽에는 이순길 전 당진포2리 이장이다. 내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는 사람은 박영호 전 면장이다.
내가 이장으로 활동할 적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KBS 고향노래방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우리마을이 나온 것이다. 그때 PD 등 방송국 직원들이 우리 마을에서 사흘간 영상을 찍고 갔다.
이장을 보면서 가장 보람있었을 때는 주민들에게 칭찬받았을 때다. 가끔 동네주민들이 “김 이장같은 이장이 또 있겠냐”며 칭찬해줄 때 가장 기뻤다. 이 자리를 빌려 성산1리 주민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2017년 이야기
동창에서 부부가 되기까지
네 번째 사진은 당진2동 적십자봉사회 회원들과 찍은 단체 사진이다. 당진2동 적십자봉사회는 이명주 전 전국이통장연합회 당진시지회장의 추천으로 가입하게 됐다. 봉사라는 것은 내게 큰 보람을 느끼게 한다. 당진2동 적십자봉사회 외에 코아루아파트 부녀회장, 당진2동 주민자치위원회 간사, 당진시보건소 멘토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봉사를 할 때마다 내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연락을 주시는 분들 덕분에 뿌듯하고 더 잘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17년 이야기
최주묵고대면 슬항2리 전 이장
보고싶은 은사님
네 번째 사진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제주도에서 환갑잔치를 할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 마을사람들과 제주도에서 함께 환갑잔치를 하게 됐다.
2017년 이야기
홍종옥보라세탁소
전라도 출신의 자상한 남편
네 번째 사진은 새마을부녀회 활동을 하며 상을 받았을 때 찍힌 사진이다.
당시 나는 운학리 부녀회장을 맡고 있었다. 이 상은 그동안 고생했다며 수여한 것으로, 시상하고 있는 사람은 민종기 전 당진군수다.
2017년 이야기
김평자·김기원송악읍 기지시리 부부
인생 풍파, 아내 때문에 견뎌
네 번째 사진은 당진축협 이사를 했을 때, 제주도로 선견지 견학을 가서 찍은 사진이다.
제주도 주상절리를 배경으로 호명길 이사, 김기원 당진축협 전 조합장, 유종덕 이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기원 전 조합장은 나와 이름이 같다.
2017년 이야기
김문곤고대면 성산1리 노인회장
“세상 구경할 수 있어 행복”
다섯 번째 사진은 동갑인 손윤영 전 진관1리 이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고대면 17개마을의 이장들 중 유일하게 동갑인 이장이었다. 나이가 같다 보니, 더욱 친하게 지냈다.
>>김문곤 회장은
·1942년 고대면 성산1리 출생
·석문초등학교 졸업
·고대면 성산1리 새마을지도자(5년)
·고대면 성산1리 이장(4년)
·현 고대면 성산1리 노인회장(2016년부터)
2017년 이야기
홍종옥보라세탁소
전라도 출신의 자상한 남편
마지막 사진은 지금의 당진문예의전당 자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10년 넘은 사진인 것 같다. 현재로는 전혀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당시엔 이곳에 유채꽃밭이 조성돼 있었다. 새마을부녀회장으로 활동했을 때인데, 이때 유채꽃 행사를 새마을지도자 당진읍협의회에서 주최했다. 사진으로 봐도 예쁘지만, 실제로 봤을 때는 더 예뻤다.
김예나 기자 yena0808@hanmail.net
2017년 이야기
박시양송악읍선거위원장
아내와 함께 산 60년
마지막 사진은 송악읍 이장들과 독립기념관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반가운 얼굴들이 많다. 현재도 지역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 박시양 송악읍선거위원장은
·1939년 송악읍 금곡리 출생
(현 79세)
·송악초 졸업
·전 송악읍중흥리새마을지도자
(1971~1797)
·전 송악읍 중흥리 이장
(1992~1998)
·현 성균관유도회 당진시지부
송악지회장
·현 송악읍선거위원장(2005~)
2018년 이야기
윤태분전 우강면 부녀회장
20년 간 마을 위해 봉사
두 번째 사진은 마을잔치 중 풍물놀이를 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우강농협 주부대학에서 풍물단원으로 활동했다. 내가 먼저 솔선수범이 돼 참여해야 부녀회원들도 함께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만해도 풍물단이 활성화됐었는데, 요즘 송산1리 풍물단 활동이 저조한 것 같아 아쉽다.
지난 5일
“가족들의 응원에 힘이 불끈”
두 번째 사진은 지난 5일 천안 유관순열사기념관에서 열린 적십자 자원봉사원 한마음대회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진 내 적십자봉사회 회장들이 모여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대회 입장시 당진의 송악감자, 면천두견주, 해나루쌀을 홍보했다.
한편 내가 이끌고 있는 고대면 적십자봉사회에서는 한국동서발전과 협력해 독거노인에게 반찬을 전달하기도 하고, 국수를 뽑는 기계를 사용해 농한기에 마을회관과 경로당, 요양원 등에 찾아가 지역 어르신들에게 칼국수를 대접하곤 했다. 이날 식사를 마친 지역민과 어르신들이 맛있다며 고맙다고 말씀해주실 때 보람과 뿌듯함을 느꼈다. 이 자리를 빌려 늘 적극적으로 봉사하는 고대면 적십자봉사회 회원들과 박종순 전 회장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지난 7월
합덕읍 발전, 나의 바람이자 소망
마지막 사진은 지난 7월 합덕읍개발위원장으로 취임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이형열 전 합덕읍개발위원장이다. 합덕읍개발위원회는 번영회를 시작으로, 발전협의회로 개칭됐다가 현재의 명칭이 자리잡았다. 역대 개발위원장들의 부단한 노력에 이어 막중한 역할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
현재 합덕읍개발위원회는 보조금을 받지 않는 민간단체로, 순수하게 회비로 운영되고 있다. 임기 내 사단법인으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야 지역에서 공공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합덕읍개발위원회가 발전하려면 재원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확립돼야 하는데, 이 또한 위원장 임기 내에 이루고 싶은 소망이다.
합덕읍은 올해로 읍 승격이 된 지 45주년을 맞았다. 과거 합덕읍은 약 2만 명이 살고 있는 지역이었지만 현재 인구는 1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합덕읍에는 공동주택 등 거주할 수 있는 주거시설이 부족하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확충돼야 한다. 합덕을 지나는 서해선복선전철 건설을 계기로 합덕읍이 발전했으면 한다.
2018년 이야기
“평생 뒷바라지한 아내, 늘 고마워”
두 번째 사진은 송악읍이장단협의회에서 중국으로 워크숍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군 제대 후 방장(리서기)역할을 해왔다. 당시 수세 등의 세금을 벼로 내곤 했는데 나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마을일을 도왔다.
12년 간 마을 이장으로 활동하면서 마음 고생한 적도 많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보람 있었던 일도 많았던 것 같다.
2018년 이야기
윤태분전 우강면 부녀회장
20년 간 마을 위해 봉사
세 번째 사진은 우강면 마을 부녀회장들이 태안 몽산포해수욕장으로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지금 생각하면 농사 지으면서 부녀회 활동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사진 속 회장들과는 지금도 자주 만난다. 취미생활도 함께하고 있다.
나와 함께 고생한 부녀회원들은 이 때가 가장 좋았다고 말한다. 늘 고마울 뿐이다. 고생한만큼 부녀회에서의 추억도 많다.
한편 나는 항상 사람들에게 우강면 송산1리는 우강면 17개 리 중 모범 마을이라고 말한다. 시장만 나가도 지역민들이 우리 마을이 부럽다고 한다. 그래서 부녀회원들에게 마을에 피해가 되지 않게 행동 하나하나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10년 전
김인상순성면 봉소2리 이장
인심 좋은 우리 동네 ‘봉소2리’
네 번째 사진은 10년 전에 순성면 봉소2리 청장년회 회원 부부동반으로 제주도 가서 찍은 사진이다. 이때 나는 청장년회에서 총무를 맡고 있었다.
2018년 이야기
윤태분전 우강면 부녀회장
20년 간 마을 위해 봉사
네 번째 사진은 마을 경로잔치 때의 모습이다.
이때만해도 경로잔치 때면 부녀회원들이 손수 음식을 해서 어르신들에게 대접했다. 더불어 농협이나 우강면 직원들이 퇴직했을 때도 직접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었다.
또한 마을일 하면서 찬조금이 들어올 때면 십시일반 모아 지역 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도했다. 작은 마을의 부녀회이지만 나름 마을 발전을 위해 부녀회원들과 노력했다.
2018년 이야기
“잘 자라준 6남매 보면 뿌듯”
마지막 사진은 시곡1통 상조회 마을 분들과 강화도로 야유회 가서 찍은 사진이다. 시곡1통 상조회는 올해로 32년을 맞았다. 나는 상조회에서 막내이며, 총무를 맡고 있다. 우리는 만남을 기록하고자 야유회에 가면 사진을 찍곤 하는데, 사진 속에서 한 분 한 분이 사라질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언젠가 헤어질 날이 오겠지만 막내로서, 총무로서 지역 어르신들을 잘 섬기고 싶다.
김성권
새마을지도자 당진3동협의회장
>>김성권 회장은(왼쪽)
- 1967년 송산면 상거리 출생
- 현 새마을지도자 당진3동협의회장
어버이주간
“가족들의 응원에 힘이 불끈”
네 번째 사진은 내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고산감리교회 어버이주간 행사 때 찍은 사진이다. 이날 어버이날을 맞이해 가족들이 함께 사진촬영을 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아들들이 타 지역에 있어 당진에 오지 못했다. 그래서 목사님, 교회 권사들과 함께 기념 삼아 사진을 찍었다. 가운데 남성이 지난 2016년 12월 우리교회 담임목사로 새롭게 부임한 최동근 목사님이다. 젊은 나이의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면서 교회가 더욱 부흥하고 있다. 기독교 신자인 나는 도보 성지순례를 하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교인들과 함께 매월 일정한 금액을 모아 함께 성지순례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17일
김인상순성면 봉소2리 이장
인심 좋은 우리 동네 ‘봉소2리’
마지막 사진은 지난해 4월 17일 봄나들이를 다녀와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지난해부터 봉소2리 이장을 맡게 됐다. 우리 마을은 주민들의 인심이 좋다. 또한 주민들 간 협동심이 좋다. 김동열 전 이장과 신영호 노인회장 등 마을주민들이 다양한 사업을 통해 노력해줬기에 지금의 봉소2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이어, 이장으로서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내가 열심히 활동해 봉소2리 마을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김인상 순성면 봉소2리 이장은
·1958년 인천 출생
·1986년 당진 귀농
·2017년 순성면 봉소2리 이장 맡음
2018년 이야기
윤태분전 우강면 부녀회장
20년 간 마을 위해 봉사
마지막 사진은 제5회 자랑스런 당진인상 시상식 때 찍은 사진이다.
부녀회장 직을 그만두고, 우강면 추천으로 이 상을 수상하게 됐다. 이날 내가 유일한 여성수상자였다. 자랑스런 당진인상을 받고 더 열심히 마을을 위해 봉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윤태분 회장은
·1948년 인천광역시 가정동 출신
·우강면 송산1리 전 부녀회장
·전 우강면 부녀회장
2019년 이야기
이한복공간목련아파트 관리소장
다양했던 사회활동모임
나는 졸업을 하진 못했지만 방송통신대학을 다녔었다. 방송통신대학에는 당진지역에서 공부하는 교우들이 모인 당진교우회가 있었다. 현재 방송통신대 당진학생회의 시초다. 3-1사진이 당진교우회 회원들과 함께 남산에 놀러갔을 때의 사진이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남산에 아무 것도 없었다. 3-2 사진은 송악로타리클럽 회장으로 취임할 때 모습이다. 이·취임식 행사 대신 한진 해안가에서 쓰레기 수거로 이·취임식을 대신했었다. 마지막 사진은 수목회 회원들의 모습이다.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해 개인적으로 1~2년 간 많이 힘들었다. 그 때 수목회 선배들이 힘을 많이 불어넣어 줬다. 덕분에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고 주택관리사 자격증까지 취득할 수 있었다. 나에겐 너무도 감사한 이들이다.
2019년 이야기
학교새마을협의회장으로 응원하던 때
이 사진은 학교새마을 당진군협의회장으로 재임할 당시 부산에서 열린 전국대회에서 응원하던 모습이다. 사진은 안승환 작가가 찍어준 것으로 기억난다. 우리가 응원하고 있을 때 당진에서는 비가 많이 왔다. 응원하러 간 사람 대부분이 농민으로 부산에서 시름이 깊었다. 당진에 오니 볏집이며 돼지며 넘치는 물에 떠다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난 2월
김향곤송산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회장
“청소년 위한 봉사하고파”
지난 2월 송산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 회장으로 취임할 때다. 다시 당진에 내려 와서 회사 생활을 할 때는 봉사단체가 막 태동할 때였고 회사생활로 인해 많은 봉사를 하지못했다. 그 후 송산의 사회·봉사단체에 속해 활동하고 있다. 송사모는 10년 전 입회했다. 여름에는 두드림캠프, 겨울에는 산타잔치를 이어오고 또 올해부터는 청소년쉼터를 운영 중에 있다. 앞으로도 우리 지역의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쉬면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지역의 공동체들과 함께 잘 만들어 나가고 싶다.
마을 이장을 했던 때
이장 보며 한문 가르쳐
세 번째 사진은 마을 이장을 했던 때다. 당시 영탑사 주지스님과 방학 동안 마을회관에서 국민학생들에게 한문을 가르쳤다. 한국일보에 저 일이 기사로 나갔는데 사우디에 사는 친구가 기사를 스크랩해 나한테 부쳐줬다. 왠지 모를 뿌듯함에 기분이 좋았다.
2020년 이야기
<네 번째 추억사진-최장옥>
장고항 촛대바위(노적봉)에서 찍은 사진이다. 개발로 인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풍경이 당시에는 지역 곳곳에 있었다.
2020년 이야기
김귀자노년학 박사
새마을운동 교육을 받다
이 사진은 새마을운동 당시 찍은 사진으로 사람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함께 교육을 받았다. 회의가 진행되는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나 혼자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2021년 이야기
우연히 발견한 거산2리의 옛 흔적들
두 번째 사진은 공동빨래터와 공동목욕탕을 조성하고 있는 사진이다. 공동빨래터와 목욕탕은 현재 거산목욕탕 근처에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때도 물이 많이 나오는 곳이었기 때문에 당시 빨래터와 목욕탕으로 쓰였고, 현재에 와서도 목욕탕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공동목욕탕은 지금의 목욕탕과 같이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초등학생 쯤 나이
우연히 발견한 거산2리의 옛 흔적들
세 번째 사진은 소년소녀회에서 조기 청소를 하는 사진이다. 나도 소년소녀회에 속해 있었다. 내 기억에는 초등학생 쯤 나이였을 것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그때 우리는 매주 1회 거산삼거리 일원을 청소했다. 현재 거산삼거리는 상권이 들어선 곳인데, 과거에도 버스정류장도 있고 나름대로 상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2021년 이야기
이충수상궁원리 이장
유명 패션 브랜드 본부장에서 벼농사 짓는 농부가 되다!
네 번째 사진은 합덕읍이장협의회 임원진들과 찍은 사진이다.
나는 고향에 내려오자마자 이장을 맡아 올해로 6년 차에 접어들었다. 나이가 젊어서 마을 주민들이 이장직을 맡겼다. 처음에는 마을 일이 낯설었지만, 지금은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에 흥미와 보람을 느낀다.
2021년 이야기
김낙출순성면 옥호2리 이장
“누에 먹고 쑥쑥 자란 키”
마지막 사진은 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 순성면분회가 대법원 앞에서 당진항 매립지 충청남도 귀속 판결 촉구를 위한 1인 피켓시위에 참여했을 때 찍힌 사진이다.
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 산하의 14개 읍·면·동 분회에서는 돌아가면서 대법원 앞에서 1인 피켓시위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지난달 4일 매립지 관할권 분쟁 관련 선고에서 대법원은 평택시의 손을 들어줬다. 당진시민으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 김낙출 순성면 옥호2리 이장은
- 1957년 순성면 옥호2리 출생
- 순성초·서야중·합덕농고 졸업
- 전 순성면 옥호리 새마을지도자
(2017~2019)
- 현 순성면 옥호2리 이장(2020~)
- 현 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
순성면분회장(2021~)
© 당진시대 · 사진과 이야기는 주민이 들려준 것입니다. 장면의 테마와 연도는 기사 글을 읽어 자동으로 분류했습니다.



























![[정덕순 송악로타리클럽 회장] 4-H와 송악로타리클럽 활동](https://cdn.djtimes.co.kr/news/photo/201109/44693_22599_756.jpg)
























































